연애는 위험한 투자, 결혼은 가계 위협, 출산은 사치"
[벌어진 격차, 멀어진 세대 <2부>]
<3> 경제적 부담에 결혼 포기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29)씨는 남자 친구와 5년째 교제 중이지만 아직 결혼 계획은 없다. 서울 강북의 20평대 이하 소형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5억원에 육박하지만 모은 돈은 1억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김씨의 월세 75만원, 남자 친구의 월세 80만원. 합치면 155만원인데 전셋집을 구하면 대출 이자만 월 200만원이 넘는다. 김씨는 “애까지 낳으면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파산”이라며 “차라리 각자 살면서 주말만 만나는 게 낫다”고 했다.
전국 20·30대 45%는 결혼이 가계에 위협을 줄 정도로 경제적 부담이 크고 출산은 아예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와 KB금융 청년 플랫폼 KB 유스 클럽(KB Youth Club)이 지난 3월 전국 남녀 1만2362명을 상대로 실시한 ‘청년 실태·인식 정밀 설문조사’ 결과, 기혼 남녀를 포함한 응답자의 45.4%가 ‘결혼은 경제적 부담의 시작이며 가계 안정에 큰 위협이 된다’고 했다. ‘별 부담이 안 된다’는 응답은 26.2%에 그쳤다. 미혼 청년 가운데 ’결혼할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절반을 조금 웃도는 52.3%에 그쳤다. 16.1%는 결혼 계획이 없다고 했다. 결혼 계획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벅차다’(55.9%)였고, 이어 ‘개인의 희생’(15.4%), ‘주거비 등 부담’(10.3%) 등의 순이었다.
◇”연애는 위험한 투자”
저출산이 한국 경제의 근심거리로 떠오른 가운데,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청년들의 부정적 인식은 이전 세대보다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3명 중 2명꼴인 67.2%는 ‘부모 세대에 비해 우리 세대가 가족을 형성하기 훨씬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했다. 연간 70만명 넘게 태어난 2차 에코붐 세대(1991~1995년생) 효과로 최근 결혼이 느는 추세지만, 이 효과가 사라지면 다시 결혼, 출산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연애부터 주저하는 청년이 많다. 생활비 대기도 빠듯한데 데이트 비용 부담으로 연애를 줄이거나 꺼리는 것이다. 대기업 과장 김모(34)씨는 “요즘 또래들은 연애를 ‘결혼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비용을 치르는 일종의 ‘위험한 투자’로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출산을 꺼리는 인식도 뚜렷했다. 응답자 45%는 ‘아이를 낳는 것은 현재 경제 상황에서 사치에 가깝다’고 했다. 향후 출산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절반을 밑도는 49.2%에 그쳤다. 23.3%는 아예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출산 계획이 없다는 남성 응답자는 ‘경제적 환경의 대물림이 우려된다’(36.5%)를, 여성은 ‘내 삶의 자유와 성취가 더 중요하다’(25%)를 가장 큰 이유로 댔다. 저성장 등의 여파로 월급을 모아서는 집값 상승세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계층·세대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가정보다 일에 무게를 두는 고학력 여성이 늘어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다는 교대생 이모(22)씨는 “교사가 된 후 유학 갈 계획이 있는데, 아이를 낳으면 모든 계획이 틀어진다”고 했다.
◇”결혼·출산은 옵션”
요즘 청년들에게 결혼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해야 하는 ‘기본값’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인 ‘옵션’이 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와 신자은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50년간 대졸 여성의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저출생 상황을 분석한 저서 ’결혼 옵션 세대’에서 “저출생은 부모 세대의 삶을 지켜본 청년 세대가 내린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며 “결혼과 출산이 더 이상 당연한 삶의 경로가 아니라 위험과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선택지가 됐다”고 분석했다.
극심해진 젠더 갈등도 20·30대가 연애와 결혼을 꺼리는 변수다. 과거의 가부장적 문화를 거부하는 여성들과 내 집 마련 등 경제적 책임 부담에 결혼에 반기를 든 남성들 사이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사 남성 직원 배모(38)씨는 “과거의 아내·엄마상을 본인은 거부하면서 남성들에게는 내 집 마련과 경제적 책임, 육아·살림 분담 등 모든 것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아 연애 과정에서 결혼을 접은 적이 많다”고 했다. 여성 직장인 권모(28)씨는 “연애는 타협할 수 있어도 가부장적인 남성과의 결혼은 불가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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