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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 심초석 아래서 만난 천년의 기록

한문역사 2026. 6. 18. 16:39

강시일 전문기자의 관람기] 경주 황룡사 심초석 아래서 만난 천년의 기록

강시일 기자2026. 6. 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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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12일부터 10월11일까지
황룡사 목탑 심초석 출토 유물 117건 322점 전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강시일 기자
강시일 기자

국립경주박물관을 자주 찾는다. 지난 13일. 황룡사 목탑에서 출토된 유물 322점을 공개하는 특별전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신화나 전설로 접하고 있던 1천300년 전의 이야기를 사실적 기록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정보에 유난히 설렜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벽면 위에 떠오른 네 글자였다. '황룡봉불(皇龍奉佛).' 황룡사가 부처를 받들었다는 뜻이다.

익숙한 이름이다. 경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황룡사지를 찾는다. 거대한 절터를 거닐며 신라 최대의 사찰을 상상한다. 나 역시 수없이 그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넓은 터와 주춧돌뿐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황룡사 9층 목탑은 이미 사라졌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과 전설 속 이야기로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특별전은 달랐다. 전시장을 걷는 내내 신화와 전설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실제 유물과 기록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황룡봉불'이 오는 10월1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는 황룡사 목탑 심초석과 사리공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117건 322점이 전시되고 있다.
특별전시관에 들어서면 대형 화면에 나타나는 황룡사 9층 목탑과 황룡 영상. 강시일 기자

◆전설이 유물이 되는 순간

전시장 첫 구역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놀랍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신라를 이야기할 때 흔히 『삼국유사』를 예로 든다. 자장의 입당 이야기, 황룡사 9층 목탑 창건 이야기,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는 이야기를 역사와 전설의 경계에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야기가 유물로 나타나 역사가 된다. 1천300년 전 사람들이 실제로 만들고 사용했던 금동 사리함과 사리기, 은제판과 장엄구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산화된 청동의 녹색 표면 위에는 세월이 남긴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유물들은 말없이 묻는다. 지금도 이것이 전설이라고만 생각하는가.

역사는 문자로만 남지 않는다. 금속에 새겨지고, 돌에 새겨지고, 의식 속에 남는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신라인들이 남긴 기록이 얼마나 치밀하고 구체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에 묻었던 찰주본기 금동판을 펼쳐놓은 전시. 강시일 기자

◆심초석 아래 숨겨진 또 하나의 세계

이번 전시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황룡사 목탑 심초석 아래의 이야기였다. 황룡사지를 찾을 때마다 나는 거대한 심초석을 바라보곤 했다. 신라 최대의 목탑을 떠받치던 돌. 하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전시는 그 막연함을 깨뜨렸다. 1978년 조사에서 심초석 아래에서는 수천 점의 장엄구가 발견됐다. 유리구슬, 곱은옥, 청동그릇, 팔찌, 방울, 금속 장식품 등 다양한 유물이 층위를 이루며 묻혀 있었다.

 

진열장 앞에서 한참 발걸음을 멈췄다. 왜 이렇게 많은 물건을 땅속에 묻었을까. 신라인들은 단순히 탑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탑을 세우는 과정 자체를 거대한 의식으로 만들었다.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불법의 영속을 바라고, 왕실의 번영을 염원하는 마음을 하나하나의 물건에 담아 심초석 아래 봉안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리공 전체가 금동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선덕여왕 당시의 사리함 안에 또 다른 사리함, 찰주본기를 넣었다는 것이다. 사리를 담은 함만 신성한 것이 아니었다. 사리가 놓인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사리함처럼 꾸몄다. 1천300년 전 신라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웅장했다.

 

금동판으로 제작된 찰주본기 뚜껑. 강시일 기자

◆자장의 전설이 기록으로 살아나다

전시의 절정은 단연 '황룡사 찰주본기'였다. 872년 경문왕 때 목탑을 중수하면서 금동 사리함에 새긴 장문의 기록이다. 무려 900여 자에 이르는 이 명문은 황룡사 목탑의 창건과 중수, 봉안 과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어쩌면 이번 전시의 핵심은 이 유물 하나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기록 속에는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자장이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이 선덕여왕에게 9층 목탑 건립을 건의했다는 이야기. 그동안 우리는 이를 삼국유사의 기록으로만 읽어왔다. 그러나 찰주본기는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해 준다. 신화나 전설처럼 들리던 이야기가 실제 금동 사리함 위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전설은 역사가 된다. 문헌 속 이야기와 유물이 서로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찰주본기 아래 심초석 하부에 묻혀있던 장엄구. 강시일 기자

◆김유신이라는 이름이 나타났을 때

그러나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에 전시된 '중화 3년(883년)' 명문 금동 사리기였다.

작은 금속 원통에 새겨진 글자는 천년의 시간을 건너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기록 속에는 뜻밖에도 김유신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유신 각간의 위업을 기리며 대석탑을 조성했다는 내용이다.

삼국 통일의 일등공신으로 알려진 김유신은 역사책 속에서만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통일신라 후대 사람들은 그를 국가를 지켜낸 영웅으로 기억했고, 그 공적을 기리는 불사를 이어갔다. 그 대석탑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1천300년 전 사람들이 김유신을 어떻게 기억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기억을 기록으로 남겼고, 다시 황룡사 목탑 심초석 아래 봉안했다.

흥덕왕이 김유신의 공을 높이 기려 '흥무대왕'으로 추서했던 것처럼 김유신의 공을 그냥 묻어두지 않았다. 대석탑에 봉안했던 사리기를 다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 아래 봉안했다. 그 사실 자체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가 아니다. 한 시대가 다음 시대에 남긴 기억의 계승이다.
김유신 장군의 업적의 위대함을 기려 조성한 대석탑에 봉안됐다가 다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 아래 봉안된 금동 사리기. 강시일 기자

◆천년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시장을 나설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황룡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유적이다. 50년 동안 발굴이 이어졌고, 지금도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특별전 역시 발굴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황룡사 목탑은 사라졌지만, 목탑을 세웠던 사람들의 마음은 남아 있다. 사리를 봉안한 이유도, 기록을 남긴 이유도, 이름을 새긴 이유도 결국 후대에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을 걸으며 나는 신라를 새롭게 만났다. 전설로만 알던 이야기가 기록이 됐고, 기록은 다시 유물이 돼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황룡사지에서 우리가 발굴하는 것은 단지 금속과 돌이 아니다. 그 속에는 1천300년 동안 이어져 온 신라인들의 믿음과 꿈, 그리고 역사를 기억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묻혀 있었다는 사실을.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