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이 꿈 짓밟은 ’140초의 진실' 밝히려 수사, 수사, 또 수사했다

광주지검 김진희 검사 방에는 5월 달력이 걸려 있다.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다 귀가하던 여고생 이채원이 장윤기에게 무참히 살해된 날이 5월 5일. “이유도 모른 채 참혹하게 죽어간 채원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때까지” 그는 달력을 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검사는 우발적 범행으로 묻힐 뻔한 ‘장윤기 사건’을 성폭행을 목적으로 한 중대 범죄로 전환시킨 주임 검사다. 경찰이 단순 살인으로 송치한 사건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강간 등 살인’ 혐의로 변경해 기소했다. 김 검사가 지휘하는 광주지검 형사3부는 11차례 보완수사를 통해 성범죄 증거는 물론, 경찰의 사건 축소·은폐 단서까지 찾아냈다. 2차 공판일이던 7월 13일, 장윤기는 성폭행을 목적으로 한 범행임을 처음 시인했다.
◇ ‘자살하고 싶었다’는 거짓말
-사건 발생 두 달만에 장윤기가 성 범죄를 인정했다.
“경찰 유착 의혹까지 나오자 마지못해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 신문에서 사실대로 자백할지는 의문이다.”
-번복할 가능성이 있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자신에 유리하게 계산하며 말을 바꿔온 장윤기다.”
-단순 살인이 아닐 거라 의심한 계기는 뭔가?
“범죄 동기. ‘자살하고 싶은데 길동무가 필요했다’는 말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부모, 친구, 지인들도 장윤기로부터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당연히 자살 시도도 없었다. ‘자살하고 싶다’는 말에 유일하게 부합한 건, 집 앞 계단에 놓여 있던 번개탄뿐이었다.”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여성에게 일방으로 구애하다 거절당하자 그 분노가 채원 양에게 옮겨갔다는 분석도 있던데.
“그 여성이 장윤기에게 당한 스토킹·감금·성폭행 사실을 (5월 3일) 경찰에 신고한 뒤 사라지자, 분노감에 칼을 들고 서른 시간 동안 찾아다닌 건 맞다. 그렇다고 길 가던 여학생을 대안으로 삼아 분풀이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장윤기는 여성이라 죽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경찰 첫 조사에선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피우는데 하필 자기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채원이었다고 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도 못했다’더라. 거짓말이다. CCTV 영상을 보여주며 15분간 왜 채원이를 미행했느냐 묻자, 그제야 한발 물러섰다. ‘혼자 길을 걸어가는 여자’라서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계속되는 거짓말에 성 범죄를 의심한 건가?
“장윤기의 첫번째 반성문에 ‘꽃다운 나이인데 꽃을 꺾어 죄송하다’는 문구가 있다. 왜 그렇게 썼느냐 물었더니 ‘미성년자인 걸 알았다면 죽이지 않았을 거’라고 하더라. 그럼 혼자서 길 가는 할머니였어도 똑같이 범행했을 거냐고 묻자 ‘예’라고 한다. 손가락이 피가 날 정도로 뜯을 만큼 불안해하면서도, 장윤기는 수사팀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살펴가며 궤변을 이어갔다. 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느냐 추궁하자 ‘수사를 성적(性的)으로 몰아갈까봐’라고 하더라. 나는 그게 장윤기의 자백이라고 믿었다.”

◇ 흰색 불상 물체의 정체
-그러나 기소 전날까지도 성폭행을 뒷받침할 ‘직접 증거’는 없었다.
“가슴과 성기 부분이 심하게 훼손된 리얼돌(성인 인형), 여중생 다리를 불법 촬영한 사진, 여성들 이름 옆에 성적 행위를 묘사한 메모장, ‘인생 망하면 봉고차에 여고생을 납치해 강간하겠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는 지인들 증언이 모두 성 범죄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부분 정황 증거, 간접 증거 아닌가?
“기소 후, 범행 현장에 있었던 화물트럭 블랙박스 영상에서 핵심 증거를 찾아냈다. 장윤기가 차 쪽으로 가면 흰색의 물체가 희미하게 나타났다가 범행 후 사라지는데, 경찰은 이를 ‘판독 불가’로 판단했지만, 우리는 이 물체에 주목했다.”
-흰색 물체가 뭐였길래?
“영상을 보고 보고 또 보던 어느날 밤, 그것이 장윤기 차(흰색)의 조수석 뒷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채원이를 납치하기 위해 미리 열어놨다가, 계획이 실패하자 살인한 뒤 피 묻은 손으로 차 문을 닫은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설 아닌가?
“영상엔 장윤기의 발 동작도 보인다. 범행 후 바로 운전석으로 가지 않고 조수석 쪽으로 서너 걸음 갔다가 빠르게 돌아온다. 조수석 뒷문에 찍힌 핏자국과 연결하면, 미리 열어둔 문을 장윤기가 닫고 돌아오는 동작으로 설명된다. 문을 닫을 땐 손잡이를 안 잡아도 되니 문 한가운데만 혈흔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 목을 졸라 끌고 간 것도 성범죄 증거로 봤던데.
“과거 장윤기가 식당 동료 여성을 성폭행할 때와 똑 같은 수법이다. 단지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주머니에 든 칼부터 사용했을 것이다.”
-범행 후 장윤기가 ‘목 치면 기절’ ‘둔기’라는 단어를 검색했다더라.
“‘칼을 쓴 게 미안해서’, ‘둔기를 썼으면 어땠을까’ 싶어 검색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끔찍했다. 둔기로 정신만 잃게 했으면 비명을 지르거나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제3의 장소로 옮겨 성폭행할 수 있었다는 일종의 반추 행위였다.”
-또 다른 범행을 계획한 것이라고 보나?
“범행 후 장윤기가 빨래방에 들러 혈흔 묻은 외투를 세탁하고 나갈 때 손에 장갑 같은 것을 낀다. 직전 범행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추가 범행의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내 생각이다.”

◇ “수사를 性的으로 몰아갈까봐”
-장윤기 아버지가 현직 경찰이란 사실은 언제 알았나?
“경찰 첫 조사 때 장윤기 본인이 아버지가 경찰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아들이 살인범이면 경찰 아버지 속은 오죽할까 생각했지, 아버지를 파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왜 아버지 휴대전화를 압수했나?
“장윤기 원룸을 조사하러 갔더니 건물 주인이 ‘아버지가 와서 이미 짐을 치웠다’고 하더라. 경찰도 ‘확인 다 끝났으니 짐을 빼게 해도 된다’고 하더란다. 실제로 아버지가 리얼돌을 대형 쓰레기봉지에 담아 떠나는 장면이 CCTV에 찍혀 있어, 장윤기 본가를 수색하고 가족 휴대폰을 압수했다. 아버지에게 왜 리얼돌을 폐기했느냐고 묻자, ‘아들의 범죄가 성적(性的)으로 가는 게 싫었다’고 했다. 장윤기 말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경찰 수사팀과의 통화 녹취도 검찰이 포렌식한 아버지 휴대전화에서 나왔다.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를 보러 가겠다’는 식으로 수사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작 경찰 수사 기록엔 블랙박스를 조사한 결과가 없더라. 경찰은 피 묻은 장윤기 차를 사건 다음날 아버지에게 넘겨주고도, 수사 보고서엔 기록하지 않았다.”
-검찰은 케이블 타이의 존재를 몰랐나?
“경찰 수사 기록에 케이블 타이는 없었다. 경찰은 범행 도구일 가능성이 있는 케이블 타이를 장윤기 차에서 발견하고도 압수하지 않았고, 7차례 피의자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장윤기에게 타이에 대한 질문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경찰의 윗선 개입이 어디까지 있었다고 보나?
“현재 수사 중이라 말할 수 없다.”
-경찰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나는 장윤기 사건이 검경간 갈등으로 보이길 원치 않는다. 초임 때 선배들이 경찰을 다 믿어선 안 된다고 충고할 때도 현장 수사하며 궂은 일 도맡아하는 경찰분들이 고마웠다. 수사 기록을 볼 때도 경찰이 뭘 숨기고 왜곡했을 거라는 의심이 아니라, 수사에서 놓친 점을 찾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협업했다. 대부분의 경찰과 검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일해왔다.”

◇ 채원이 마지막 피해자 돼야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폐 논란이 뜨겁다.
“보완수사란 말이 난 아직 어색하다. 예전부터 검사들은 경찰이 송치한 수사 기록을 검토해 확인이 필요하면 당사자 소환 조사, 추가 자료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일해왔다. 경찰 기록만 보고 깜깜이 상태에서 기소하면 무죄가 날 확률만 높아진다. 피의자를 위해서라도 보완 수사는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여당은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수시로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면담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고 한다.
“그게 검사가 하는 일이었다. 검사가 해주던 공공서비스를 앞으로는 개인이 변호사를 구해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여성계는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제2, 제3의 장윤기 사건이 나올 거라 우려한다.
“여성뿐 아니라 아동, 장애인 등 자기 변호에 취약한 사람들의 피해가 클 것이다. 장윤기 사건이 경찰이 송치한 대로 ‘단순 살인’으로 갔다면 케이블 타이의 존재도, 리얼돌 감정서도, 흰색 불상물체의 정체도 끝내 묻혀버렸을 것이다.”
-장윤기 사건으로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장윤기 사건뿐 아니라 모든 사건을 우리는 이렇게 수사해왔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여수 해든이 사건, 김창민 감독 사망 사건 등 모두 ‘여성 검사’가 보완수사로 실체를 밝혀냈더라.
“나는 젠더에 약해서 그런 것까진 모르겠다.”
-여성·아동 사건을 주로 다뤄왔다. 이번 수사에 도움이 됐나.
“다른 사건들과 똑같이 했다. 140초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간 채원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려고 했다. 살인을 하고도 카메라를 당당히 바라보던 장윤기를 보며 작은 증거 하나까지도 모조리 찾아내자고 수사팀을 독려했다. 어쩌면 검찰에서의 마지막 수사가 될 지도 모르니까.”
-장윤기에겐 사형을 구형하나?
“채원이가 마지막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장윤기는 법정 최고형을 받아야 한다. 나는 이 사건이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공방의 소재로만 주목받는 게 안타깝다.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 피해자 가족의 일상과 생업은 완전히 무너졌다. 경찰 은폐 의혹까지 나오면서 그분들은 아무도 믿지 못 한다. 채원이가 그 날 다른 길로 가서 장윤기의 계획이 실패했다면 또다른 누군가가 희생될 수 있었던 사건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봐주시면 좋겠다.”
☞김진희
1978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과학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38기로, 2009년 검사 생활을 시작해 광주지검, 제주지검, 중앙지검, 창원지검 등에서 근무했다. 순천지청 시절 일명 ‘여수 해든이 사건’으로 불리는 4개월 영아 살해 사건의 진실을 보완수사로 밝혀내, 2025년 대검찰청의 ‘형사부 우수 수사 사례’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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