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의성김씨 五子登科宅

한문역사 2025. 2. 9. 13:49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 金氏五龍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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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의성김씨 내앞파 고택은 

아들 5명이 모두 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오자등과댁입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조선 선비의 이상적 삶의 장소를 갖춘 곳이

경북 예안의 도산, 풍산의 하회, 안동의 내앞, 내성의 닭실 마을을

4대명당으로 꼽는데, 그중 가장 강렬한 선비정신이 어린 안동의

의성김씨 내앞파(川前派) 고택을 반변천위에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의성김씨 집성촌내에 축조한 배경을 보면,

중시조 청계(靑溪) 김 진이 한양의 사자암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중

한 관상가가 "지금 참판을 하는 것보다는 후일 판서가 되는 것이 났다"

는 말을 듣고, 귀향해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태백산과 소백산사이의

양백지간인 안동의 완사만월형(浣絲望月形) 즉, 경북 영양의 일월산

지맥이 동남방으로 내려오다 서방의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과 만나

환포하게 되어 자연스레 넓고 아름다운 모래밭을 형성해 밝은 달아래

귀인이 입는 옷을 세탁한다는 형국(形局)에, 보통의 양택은 입수맥(入首脈)

한가운데 자리하는 것이 맞는데 약간 비켜 고택을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지었는데, 그 이유는 기(氣)는  물을 만나면 멈춘다는 법수에 따라

집앞 연못을 정면에 두고 조성하여 조화된 음양의 생기를 충전시키기

위해서이며, 집앞 연못은 삼원불패지지(三垣不敗之地) 즉, 일원은

60년이니 180년간 성공된 삶을 구가하기 위한 고심의 결과물이고,

집앞을 감싸야할 청룡과 백호가 너무 넓어서 생기를 보전하기 어려워

반변천 모래밭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비보(裨補)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자라고 있습니다. 보은에도 이런 유형이 있는데, 보은엸영동간 국도

19호선 도로를 지나다 보면 보은읍 금굴1리 은사동 마을도 제방에

소나무를 심어 장풍(藏風) 및 설기(泄氣)방지를 했고, 현재 그 소나무가

보은군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내앞파 고택은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에 따라 땅의 기운이

가장좋은 곳에 산실(産室)을 배치해 비범한 후손 탄생을 기원했고,

그 고택에서 8남매를 낳은 청계 김 진은 관상가의 말대로 자신의

입신출세와 공명보다는 자식의 교육에 전념해 평소 자식들에게

"차라리 부서지는 옥이 될지언정 구차하게 기왓장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의 "영수옥쇄 불의와전(寧須玉碎 不宜瓦全)"라는 구절을 강조했으며,

克一, 守一, 明一, 誠一, 復一, 5자식을 모두 과거에 급제시켰고,

5자식 중 호가 학봉인 성일은 선조가 신하들에게 "나는 어떤 군주인가?"

라는 질문에 "임금님의 생각에 따라 성군인 요순이 될 수도 있고,

미치광이인 걸주도 될 수있습니다"라고 답변해 신하들은 감히 임금에게

저런 말을 할수 있는가 하며 어쩔줄 모르고 선조임금이 안색을 달리하며

노기가 충천할 때 서애 유성룡이 "전하를 위한 고언(苦言)입니다"라고

무마해 화를 모면한 일화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고,

일본 사신으로 다녀와 풍신수길은 눈이 쥐와 같아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아뢰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과 함께 진주대첩을

승전으로 이끈후 진주성에서 병으로 세상을 떴습니다.(1593년)

이중환의 택리지에 양택의 4요(4要)를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모두 갖춘 곳이 진정한 인간 삶의 거처라는 것인데,

지리(地理)는 4대국이 감싸 생기가 충만한 곳, 생리(生理)는 먹을 것이

풍부한 뜰, 인심(人心)은 이웃과 화목한 정을 나누는곳, 산수(山水)는

밝은 해. 달. 별아래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이 좋은 곳을 의미하며,

이 모든 여건을 충족한 곳이 시내라 하여 이 고택의 첫주인인 김 진도

호를 청계(淸溪)라 하였으며, 청계가 다섯자식을 동년배인 이 황에게

위탁교육을 시켜 국가의 동량이 되게한 이 황도 호가 퇴계(退溪)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