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사의재(康津 四宜齋)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 ~ 1836)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다산은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사의재는 '생각·용모·말·행동, 네가지를 올바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진군은 고증을 거쳐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2007년에 복원하였다. 현재는 동문매반가(주막)와 한옥체험관을 운영 중에 있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와서 첫 4년을 머물렀던 사의재를 처음으로 찾았다. 사의재 마당에 서서 나 자신의 '생각·용모·말·행동, 네가지'를 잠시 되돌아보았다.

△ 강진 사의재 전경. 사의재를 방문했던 날 하늘은 잔뜩 찌렸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 사의재(四宜齋)
▷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 ☎ 061) 433-3223
▷ 이용시간; 09:00 ~ 18:00 / 연중무휴
▷ 이용/주차 요금; 무료

△ 울타리 밖에서 바라본 사의재

▲ 강진 사의재, <사진; 강진군청>
사의재(四宜齋)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가지를 올바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가지를 바로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언어)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다. 사려깊은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얘기에 자신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었다. 다산은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2007년에 복원하였다. 현재는 동문매반가(주막)와 한옥체험관을 운영중에 있다. <출처; 강진군청>

▲ 사의재, 고증을 거쳐 2007년에 복원하였다.

▶ 사의재 안내문(왼쪽)과 사의재기(四宜齋記, 오른쪽)
그대(정약용) 밖에 없다.
문장에서도 그대 능가할 자 없고, 100년 만의 재상 재목 그대 밖에 없다.
조선 정조

▲ 사의재 정면

▲ 주막 처마 아래에서 바라본 사의재

▲ 사의재 앞 주막 전경

▲ 사의재 주모상(像, 주모와 외동딸)과 소망 주병 안내문(오른쪽 사진)

▲ 사의재 주막

▲ 정호승 시인의 '다산주막' 시비
홀로 술을 들고 싶거든 다산주막으로 가라
…
눈물은 기러기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시인 정호승

▲ 사의재 해우소

▲ 사의재 주막 외관

▲ 사의재 옆길

▲ 사의재 옆 연못

▲ 사의재 동쪽 동천정(東泉亭, 왼쪽)과 동문샘[동문정 東門井, 오른쪽 사진]

▲ 사의재가 있는 마을 입구에 세워진 청조루(聽潮樓)

▲ 사의재 종합안내도

▲ 사의재가 있는 마을 전경

▲ 조선을 만난 시간(조만간) 안내도

2023년 5월 27일(土),
강진 사의재을 난생 처음으로 답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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