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학식이 뛰어난 기녀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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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조선 중기(16세기)인 중종·명종 때의 기생이다. 정확하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삶을 마감했는지는 알 수 없다. 40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진이는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자신을 송도3절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녀는 이매창 김부용과 함께 조선 3대 기녀로 꼽힌다. 황진이는 기생이었지만 시인이자 작가였으며 서예가, 음악가, 무용가였다. 황진이의 대표적인 시조 작품으로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 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기생을 결심
황진이는 조선 중기(16세기)인 중종·명종 때의 기생이다. 정확하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삶을 마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황진이는 황진사와 황진사의 부인이 결혼할 때 데리고 온 여종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황진사의 부인이 자식이 없었던 관계로 황진이를 외동딸로 키웠다. 자신이 황진사 부인의 딸이 아닌 여종의 딸임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윤승지댁 아들과의 혼담이 깨지면서 황진사의 부인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기생이 되고자 결심한다. 당시 정식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서자, 서녀라고 하였는데, 양반의 서녀의 경우 양반의 첩이 되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황진이는 이러한 일반적이고 보다 안정적인 삶을 거부하고 기녀가 된 것이다. 진이라는 이름 외에 진랑이라는 이름도 있었으며 기생 이름으로는 명월을 썼다.
예술적 재능과 학식이 뛰어난 팔방미인
황진이가 살던 당시의 여성들, 특히 양반가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학문에 정진했던 것과 달리 남편과 시어른을 잘 섬기는 법, 첩을 거느리는 법, 자식을 잘 기르는 법 등 양육과 가사의 일만을 교육받았었다. 이에 반해 기생은 가장 신분이 낮은 천민이었지만 양반 사대부 남성들과 어울려 학문, 시, 시조를 창작하고 논할 수 있었으며 춤과 노래를 즐길 수 있었다. 황진이는 뛰어난 미모뿐만 아니라 뛰어난 예술적 재능으로 인해 당시 이름이 높았던 기생이었다.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뛰어난 시인이자 작가였으며 서예가이자 음악가였으며 무용가였다. 당시 학식이 높았던 양반 사대부들과 견주어 학문을 논하고 시조를 나누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시조를 지어 마음을 전하다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일생을 살면서 많은 남자들을 만났지만 그 중에서도 기생이 되면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 주었던 황진사댁의 종이었던 놈이, 당대 최고의 군자였던 벽계수와 이사종이 있었다. 벽계수는 당시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던 학자였지만 황진이의 유혹에 결국 넘어가게 된다. 이사종은 황진이와 조선 팔도를 6년간 유람하며 사랑을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조선 당대의 신분질서에서 둘은 이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6년의 유람을 끝으로 남포에서 헤어지게 된다. 황진이는 벽계수를 유혹할 때도 이사종과 사랑을 키워갈 때도 모두 시조를 지어 마음을 전했다. 벽계수를 유혹할 때 지었던 것으로 「청산리 벽계수야」가 있고, 이사종과의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은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황진이를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이라고 하고, 이매창 김부용과 함께 조선 3대 기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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