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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살 淸 乾隆帝의 長壽秘訣은 :웰빙:

한문역사 2025. 9. 1. 13:41

89살 건륭제의 장수비결은 ‘웰빙’

중국 335명 황제들 평균수명 41살 그쳐
하루 2끼 먹고 제비집 요리 즐긴 건륭제
절제된 생활·식습관 담긴 양생법 배울만

김영훈기자
  • 수정 2019-10-20 17:20
  •  
 
그림/ 김영훈 기자

<건륭 황제의 인생 경영>시앙쓰 지음·남경사범대학 중한문화연구중심 편역. 세종서적·1만3천원

조선 왕의 평균수명은 47살이었다. 구중궁궐에서 산해진미를 맛보며 어의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은 임금의 목숨으로는 너무 짧다. 조선 시대 최장수 임금은 82살까지 산 영조다. 적게 먹고 식사시간을 잘 지켰다. 쌀밥 대신 잡곡을 즐겼으며 밤참은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보다 훨씬 큰 땅을 호령했던 중국에서는 모두 335명의 황제가 보위에 올랐다. 그들의 평균수명은 41살에 그쳤다. 60살 넘게 산 황제는 고작 36명뿐이었지만 청나라 건륭제는 89살까지 누렸다. 여염의 張三李四처럼 대부분의 황제들에게도 ‘부귀영화는 뜬구름’이었다. 아침엔 삼단 같은 머리채, 저녁이면 흰서리. 힘이 빠진 머리카락은 금비녀조차 이기지 못하니. 신선을 꿈꾸던 진시황이나 불멸을 꿈꾼 한무제가 아무리 간절히 원하더라도 젊음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불로장생 약을 찾아 떠난 術師들은 변심한 애인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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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6대 황제 건륭은 할아버지 강희제가 이룩한 태평성세에 일찌감치 황위 계승자로 결정됐고,

아버지 옹정제의 뒤를 이어 25살에 등극했다. 건륭제의 장수 비결은 뭘까.

우선 4만여 수의 시를 남긴 시인이었다는 점은 그가 반성적 인간임을 보여준다.

하루 두 끼를 고집했을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수많은 후궁을 거느렸지만 중용을 지켰다는 말은 크게 믿고 싶지 않다.

결론적으로 그는 주관을 가지고 풍류를 즐기며, 절제된 생활과 식습관을 통해

당대의 참살이(웰빙)를 추구한 인물이었다.

지은이 시앙쓰는 베이징 고궁박물관 부연구원으로 일하며 중국 황실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지은이의 안내로 그의 식습관과 복식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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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합리적 음식 구성은 오곡이 섞이고 육류와 채소가 배합되는 것. 건륭제가 주로 든 음식은 주식 47종, 부식 47종, 더운 요리 59종, 탕류 7종 등이라 한다. 오리와 제비집을 즐겼고 아침저녁으로 열탕면과 죽을 함께 먹었다. 끼니 때마다 콩류와 산나물을 거르지 않았다.

제비집은 황제가 가장 즐겨 먹던 음식. 새의 침으로 만든 건축자재인 제비집은, 침이 모자랄 때 피까지 섞어 만든 음식 재료였다. 새의 모든 정력이 투입된 그것은 천하일품의 맛뿐 아니라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또 늙은 수오리를 큰 솥에 끓여낸 뒤 24종의 조미료를 넣어 도자기 약탕관에 달인다. 과일나무 등 땔감으로 사흘간 계속 찐다. 오리는 부드러워져 입에 살살 녹는다. 권두채(拳頭菜)라고도 하는 고사리도 자주 먹었다. 당송 시대 문인들은 고사리를 맛보고 너나없이 찬양해서 황실의 미식 대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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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옷은 명황색, 금황색 위주인데, 황색은 황제 전용 색상으로 다른 이들은 쓸 수 없었다. 단 황제가 하사한 옷은 예외다. 하늘에 제사 지낼 때는 남색, 태양에 제를 올릴 때는 붉은색, 달에 기원할 때는 흰색 옷을 입었다. 윗옷에는 해, 달, 성신, 산, 용, 꿩 등 여섯 장을 수놓았다. 곤룡포에는 금룡을 넣었다. 황제의 침상은 용상이라 하는데 내실 뒤 칸에 놓는다. 나무 온돌로 겉은 자목단의 속을 파내고 꼭대기 부분까지 꽃을 새겼다. 틀 안에는 비단 휘장이 쳐졌으며 정자와 누각 등 상서로운 무늬를 수놓았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웰빙형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적당한 금전과 여유 있는 직업을 가진데다, 가정이 화목하고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다. 마음이 편치 않다. 건강과 행복을 얘기할 때 계급적 적대감이 슬며시 끼어드는 건 장삼이사의 뒤틀린 심사일까. 그러나 양생법에도 어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으랴. 소박한 밥상의 무병장수를 도처에서 본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89살 건륭제의 장수비결은 ‘웰빙’

중국 335명 황제들 평균수명 41살 그쳐
하루 2끼 먹고 제비집 요리 즐긴 건륭제
절제된 생활·식습관 담긴 양생법 배울만

김영훈기자
  • 수정 2019-10-20 17:20
  • 등록 2007-06-15 20:19
 
그림/ 김영훈 기자

<건륭 황제의 인생 경영>시앙쓰 지음·남경사범대학 중한문화연구중심 편역. 세종서적·1만3천원

조선 왕의 평균수명은 47살이었다. 구중궁궐에서 산해진미를 맛보며 어의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은 임금의 목숨으로는 너무 짧다. 조선 시대 최장수 임금은 82살까지 산 영조다. 적게 먹고 식사시간을 잘 지켰다. 쌀밥 대신 잡곡을 즐겼으며 밤참은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보다 훨씬 큰 땅을 호령했던 중국에서는 모두 335명의 황제가 보위에 올랐다. 그들의 평균수명은 41살에 그쳤다. 60살 넘게 산 황제는 고작 36명뿐이었지만 청나라 건륭제는 89살까지 누렸다. 여염의 장삼이사처럼 대부분의 황제들에게도 ‘부귀영화는 뜬구름’이었다. 아침엔 삼단 같은 머리채, 저녁이면 흰서리. 힘이 빠진 머리카락은 금비녀조차 이기지 못하니. 신선을 꿈꾸던 진시황이나 불멸을 꿈꾼 한무제가 아무리 간절히 원하더라도 젊음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불로장생 약을 찾아 떠난 술사들은 변심한 애인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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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6대 황제 건륭은 할아버지 강희제가 이룩한 태평성세에 일찌감치 황위 계승자로 결정됐고, 아버지 옹정제의 뒤를 이어 25살에 등극했다. 건륭제의 장수 비결은 뭘까. 우선 4만여 수의 시를 남긴 시인이었다는 점은 그가 반성적 인간임을 보여준다. 하루 두 끼를 고집했을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수많은 후궁을 거느렸지만 중용을 지켰다는 말은 크게 믿고 싶지 않다. 결론적으로 그는 주관을 가지고 풍류를 즐기며, 절제된 생활과 식습관을 통해 당대의 참살이(웰빙)를 추구한 인물이었다. 지은이 시앙쓰는 베이징 고궁박물관 부연구원으로 일하며 중국 황실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지은이의 안내로 그의 식습관과 복식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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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합리적 음식 구성은 오곡이 섞이고 육류와 채소가 배합되는 것. 건륭제가 주로 든 음식은 주식 47종, 부식 47종, 더운 요리 59종, 탕류 7종 등이라 한다. 오리와 제비집을 즐겼고 아침저녁으로 열탕면과 죽을 함께 먹었다. 끼니 때마다 콩류와 산나물을 거르지 않았다.

제비집은 황제가 가장 즐겨 먹던 음식. 새의 침으로 만든 건축자재인 제비집은, 침이 모자랄 때 피까지 섞어 만든 음식 재료였다. 새의 모든 정력이 투입된 그것은 천하일품의 맛뿐 아니라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또 늙은 수오리를 큰 솥에 끓여낸 뒤 24종의 조미료를 넣어 도자기 약탕관에 달인다. 과일나무 등 땔감으로 사흘간 계속 찐다. 오리는 부드러워져 입에 살살 녹는다. 권두채(拳頭菜)라고도 하는 고사리도 자주 먹었다. 당송 시대 문인들은 고사리를 맛보고 너나없이 찬양해서 황실의 미식 대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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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옷은 명황색, 금황색 위주인데, 황색은 황제 전용 색상으로 다른 이들은 쓸 수 없었다. 단 황제가 하사한 옷은 예외다. 하늘에 제사 지낼 때는 남색, 태양에 제를 올릴 때는 붉은색, 달에 기원할 때는 흰색 옷을 입었다. 윗옷에는 해, 달, 성신, 산, 용, 꿩 등 여섯 장을 수놓았다. 곤룡포에는 금룡을 넣었다. 황제의 침상은 용상이라 하는데 내실 뒤 칸에 놓는다. 나무 온돌로 겉은 자목단의 속을 파내고 꼭대기 부분까지 꽃을 새겼다. 틀 안에는 비단 휘장이 쳐졌으며 정자와 누각 등 상서로운 무늬를 수놓았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웰빙형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적당한 금전과 여유 있는 직업을 가진데다, 가정이 화목하고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다. 마음이 편치 않다. 건강과 행복을 얘기할 때 계급적 적대감이 슬며시 끼어드는 건 장삼이사의 뒤틀린 심사일까. 그러나 양생법에도 어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으랴. 소박한 밥상의 무병장수를 도처에서 본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