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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家

한문역사 2025. 9. 4. 10:44
오다 노부나가
織田 信長
 
▲ 오다 노부나가의 초상화.[1]
출생
오와리국 아이치군 쇼바타성
(현 아이치현 이나자와시)
사망
1582년 6월 21일 (향년 47세)
재임기간
제4대 오다 단조노추 당주
우대신
서명
 
 

1. 개요2. 가문 배경
2.1. 선조2.2. 가족과의 관계
3. 생애4. 평가5. 여담6. 참고 서적7. 대중매체에서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 센고쿠 시대 다이묘(大名), 오와리국 오다 단주노초 가문의 당주, 우대신 겸 우근위대장, 천하인(天下人). 무로마치 막부를 종결시키고 센고쿠 시대의 양상을 완전히 변화시켰기에 이 인물을 빼고 센고쿠 시대의 역사를 논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일본이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한복판에 서 있었던 사람이며 당대에 많은 파격을 불러왔지만 일본 통일을 눈 앞에 두었을 때 혼노지의 변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죽은 점 등으로 인해 후대의 작가들에게 매우 사랑받고 있으며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가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주군이기도 했다. 한국식 독음은 직전신장으로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라는 게임이 신장의 야망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졌다.[3]

2. 가문 배경[편집]

織お田だ氏し
오다씨
 
오다 가문의 가몬
오다 외꽃
織田瓜
본성
간무 헤이시(桓武平氏) 스케모리류(資盛流)(자칭)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 토시히토류(利仁流)?
인베씨(忌部氏)?
가조
타이라노 치카자네(平親真)
종별
무가(武家)
화족(華族)(자작)
출신지
에치젠국 오다 장원
(越前国織田庄)
근거지
오와리국 키요스 성
미노국 기후 성
오미국 아즈치 성
지류
분가
츠다씨(津田氏)

2.1. 선조[편집]

가족 관계
이름
생년
몰년
6대조
오다 히사나가
(織田久長)
불명
불명
5대조
오다 토시사다
(織田敏定)
1452년
1495년
고조부
오다 토시노부
(織田敏信)
1466년
1517년
증조부
오다 요시노부
(織田良信)
불명
불명
조부
오다 노부사다
(織田信定)
불명
1538년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
(織田信秀)
1511년
1551년 4월 8일

2.2. 가족과의 관계[편집]

  자세한 내용은 오다 노부나가/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편집]

센고쿠 시대의 맹활약으로 일본사의 큰 전환점이 된 인물이며, 이에 걸맞게 현대까지도 현대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위인 중 1명으로, 드라마나 게임 등 일본사를 다루는 여러 매체에서 빼놓을 수 없이 나온다.

그가 센고쿠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던 이유는 그 누구보다도 센고쿠 다이묘로서 실력과 명성을 떨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의 시작점은 비슷한 유명세를 지닌 타 다이묘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노부나가 물려받은 '오와리'는 땅이 비옥해 쌀 산출량이 많았고[17] 당시 수도였던 교토와도 매우 가깝다는 분명한 이점은 있었지만 그만큼 수도를 노리는 다른 제후들에게 그대로 짓밟힐 수 있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었다. 애초에 노부나가의 선조부터가 방계 출신인데, 명분을 가지고 가문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하극상을 일으켜 기존의 다이묘 가문을 숙청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신하 가문 출신, 심지어 그런 역적 가문에서도 방계였기에 노부나가의 정치적 정통성과 외교 관계는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그 와중에 노부나가는 형제끼리 계승권을 두고 내분까지 일으켰을 정도이니 오와리가 가지는 몇몇 장점은 노부나가의 초기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18]

엄청난 카리스마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엄밀히 말해 현장 지휘관으로서 노부나가의 용병술은 용병술 하나로 상황을 극복할 정도로 뛰어나진 못했다.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일선에 서며 사기를 돋구고 직접 적을 참살하며 승리를 거두는등 확실한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긴 했으나, 현대 역사학자들 입장에선 동세대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던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에 비하면 확실히 몇 수 아래로 평가된다. 실제로 오다군은 지리적, 정치적 입장상 전반적인 병사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면도 있었지만 그대신 병졸 숫자가 많았고 부유했기에 장비의 수준도 좋았으나[19][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나가 공기>나 <갑양군감> 같이 노부나가에 우호적인 사료 중 신뢰도가 있는 역사적 사료의 경우, 노부나가 본인이 직접 친정한 전투에서마저 (주로 다케다군에게) 수차례 패퇴한 적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렇듯 하나의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술의 관점에서 보면 당대 최고라 말하기 힘들었지만, 전국적인 판도를 읽어내는 전략적 안목과 정치력 면에서는 가히 당대 최고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다.[21] 노부나가는 도쿠가와를 우방으로 두고도[22][23] 수차례의 전쟁 끝에 다케다 신겐이 직접 이끄는 본대를 상대로 전면전에서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최대한 신겐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외교적 방책으로 시간을 끌었다. 이후 신겐이 죽고 그 후계자인 다케다 카츠요리가 가문을 이어받자 오다 가문의 역량을 총동원해 나가시노 전투를 일으켰고 대승을 거두어 설욕을 이뤄냈다. 그러고도 다케다 가문이 자체적으로 재흥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보고 일부러 다케다 가문을 방치해[24] 그들이 제 꾀에 넘어지도록 만들었고,[25] 그 사이 주변 세력들을 차분히 공략하며[26] 나가시노 전투 종전 후 7년 만에 다케다를 완벽히 공략할 수 있는 완벽한 판도를 짜내는데 성공했다.[27][28]

또한 다이묘들 간의 외교 외에도 노부나가의 정치력은 다방면으로 빼어났으며, 이 중 대표적인 일화가 라쿠이치라쿠자(樂市樂座)<a style="color: #0275d8;" href="https://namu.wiki/w/%EC%98%A4%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