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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香氣품은 번안시조

한문역사 2025. 9. 13. 11:34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41)
가을철에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
  • 2024. 02.27(화) 19:48
 
與錦峯伯夜唫(여금봉백야금) / 만해 한용운
詩酒相逢天一方 蕭蕭夜色思何長(시주상봉천일방 소소야색사하장)
黃花明月若無夢 古寺荒秋亦故鄕(황화명월약무몽 고사황추역고향)
시와 술 서로 만나서도 하늘의 한 모서리인데
쓸쓸한 이 한밤에 생각 아니 무궁하겠네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꿈 없었다네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아니리.

향수는 밤이면 더한다. 깊은 회한도 마찬가지 이를 달래는 방법은 지인을 만나 정담을 나누거나 녹차 한 잔에 정을 싣기도 했다. 개울물 소리 내는 냇가에 앉아서 곡차 한 잔은 시름이나마 달랠 수는 있었으리. 향수를 달래는 마음은 수도승이나 범인들도 마찬 가지다. 금봉선사와 더불어 시심으로 답했던 반가운 시간이었으리라. ‘시와 술이 서로 만나 즐기나 천리처럼 타향인데, 쓸쓸한 이 한밤에 생각 아니 무궁하겠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가을철에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與錦峯伯夜唫)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으로 승려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다. 유독 ‘세계’에 대한 관심이 깊은 나머지 블라디보스토크 등 시베리아와 만주 등을 순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05년 27세 때 다시 입산해 설악산 백담사에서 연곡 스님을 은사로 해 정식으로 득도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와 술이 서로 만나 즐기나 천리처럼 타향인데 / 쓸쓸한 이 한밤에 생각 아니 무궁하겠네 //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꿈들 없었으니 / 가을철에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금봉선사 백야와 같이 읊다’로 번역된다. 친한 동료선사를 만나 곡주(穀酒) 한 잔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시를 짓고 잔술을 돌려가면서 읊었던 시가 진취적인 생각이 되고, 수도정진에 대한 덕담이 되기도 하며, 따라서 반야사상 대승불교의 한 축을 논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탕 시에서는 그런 언급이 조금도 없다.

시인은 동료 금봉선사와 시를 교환하고 술을 마시면서 잠시 동안 외로움을 잊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와 술은 서로 만나 오늘을 즐기고 보니 천리 타향인데도 타향 같지 않고 쓸쓸한 이 한밤에 정겨운 생각은 무궁하겠는가라는 시상으로 출발한다. 동료와 만나는 이 시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시인의 간곡한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화자는 자연을 감상하며 마신 이 술잔이 가장 흐뭇했다는 정감을 시상 얼개에 빚어놓았다. 달 밝고 국화 피어 애틋한 이런 꿈이 없었다 하더라도 가을철 옛 절이기로 어디인들 고향 아니랴 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했다. 시와 술로 감상적 마음을 채우는 마음을 담아 정감 넘치는 가을을 생각한다는 시상에 공감하게 된다.<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詩酒: 시와 술. 相逢: 서로 만나다. 天一方: 천리다. 은유적인 표현임. 蕭蕭: 쓸쓸하다. 소소하다. 夜色: 밤의 빛깔. 思: 생각. 何長: 어찌 길지 아니하랴. // 黃花: 누런 국화. 明月: 밝은 달. 若: 만약. 無夢: 꿈이 없다. 古寺: 옛 절. 荒秋: 황량한 가을. 亦: 또한. 故鄕: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