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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살롱 1518

한문역사 2025. 11. 17. 19:18

조용헌 살롱] [1518] 서화선(書畫船) 유람

입력 2025.11.16. 23:33업데이트 2025.11.1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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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동양학의 공부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다. 책 많이 읽고 광범위한 여행을 다니는 것이 가장 확실한 공부법이다. 처음에는 이게 돈도 안 되는 길이고 따라지 인생 같아서 고시 합격한 판검사의 길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법조계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X판’ 같다. 강호(江湖)를 돌아다녔던 내 팔자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독만행만(讀萬行萬)의 강호학 개념을 정립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중국 명말청초의 동기창(董其昌·1555~1636)이다. 그림을 보는 안목을 설명한 책인 ‘화안(畵眼)’이 그의 명저다. 그림은 기운생동의 기운이 있어야 하고, 이 신기(神氣)를 후천적으로 개발하는 방법은 ‘독만권서와 행만리로’라고 주장했다.

화가 동기창의 1607년작 ‘산수화첩(山水畵帖)’의 한 작품. 종이에 먹. 사진 오른쪽은 여집의 1813년작 ‘사녀도(仕女圖)’. 비단에 채색.

그렇다면 동기창은 정말 강호를 돌아다녀 보고 이런 말을 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해보지도 않고 말로만 그런 것인가? 중국의 고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이동천(李東泉·60) 선생에게 이 부분을 물어보았다. 그는 베이징에서 이 분야의 대가였던 양런카이(1915~2008), 펑치융(1924~2017) 밑에서 9년간 사사를 했기 때문에 이 분야에 빠삭하다. “동기창은 중국 강남 지역에서 서화선(書畫船)을 타고 다니며 그림을 사고파는 삶을 살았다. 아마 벼슬을 그만둔 50대부터 죽기 직전까지 30년 가까이 강호를 돌아다녔을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화선은 그림·글씨·청동그릇 등을 싣고 동네를 다니며 사고파는 배다. 중국 강남의 진강(鎭江)에서 항주까지는 그물코처럼 수로가 발달돼 있다. 베네치아의 수로를 연상하면 된다. 배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이었다. 동기창은 자신의 배를 화방(畵舫·그림 그리는 배)이라고 불렀다. 배의 길이는 약 7m. 배 안에는 술과 차도 있고, 안주거리로 육포도 있었다. 이야기가 통하는 손님이 동네 집 앞에서 바로 배로 올라타면 술도 마시고 육포도 먹었다. 배에서 잠도 자고 밥도 해 먹었다. 그러니까 쌀도 한두 가마 싣고 서화도 몇 상자를 실을 수 있었다. 배에 탄 사람은 하인 2~3명. 그리고 동기창의 절친이자 동업자, 일류 미술품 감식가이던 진계유(陳繼儒·1558~1639)도 같이 다녔다.

하인들은 노를 젓고 밥을 짓고 손님 접대도 했다. 동기창보다 500년 앞선 미불(米芾·1051~1107)은 ‘온 배에 서화가 가득하고, 밝은 달이 함께한다’는 서화선의 유람을 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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