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생명 胎室]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스토리(4) 선석사에 머물다
- 이창남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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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11-23 | 발행일 2012-11-23 제11면 | 수정 2012-12-27
| 세종대왕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성주 선석사 전경. 신라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갑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문종 때 세자의 태(胎)를 법림산으로 옮겨가며 원래 있던 태비는 그 자리에 묻어두었던 것이다. 태실수호군사 중에서는 갑이 혼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갑이는 홍이에게 말한 것을 후회했다. 대역죄인 이홍위(단종)의 태비를 꺼내다니, 안될 말이다. 자기 목에는 칼날이 안 먹히는 것도 아니요, 땅벌이 득시글한 걸 알면서 바닥을 열어볼 까닭은 없지 않은가.
여자의 눈물과 호소하는 눈빛에 방심한 거였다. 금표를 넘어온 것만 해도 중벌이 내릴 일인데, 낮에 금부도사가 깨뜨린 석물가지를 손대기만 해도 대역죄를 묻는다는데, 그걸 파내다니. 큰일 날 소리다. 갑이는 홍이를 태실 밖으로 끌어냈다. 하지만 홍이는 태비있는 자리를 끈질기게 물으며 매달렸다. 갑이는 ‘기억이 안 난다’고, ‘그냥 해본 소리다’하고 제가 먼저 꺼낸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 어물쩍 넘어가는 눈빛을 순간적으로 보았기에 홍이는 단념하지 않았다.
홍이는 갑이가 일을 끝내길 기다렸다가 기어이 선석사(禪石寺)에까지 따라왔다. 갑이가 또 몰아대니 아예 절 마당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걸어왔던가. 홍이는 발병이 났다. 짚이 가닥가닥 풀어진 짚신은 꿰었다기보다는 겨우 발끝에 걸려있는 수준이었다. 누가 봐도 꾀병이 아니었으므로 갑이는 더 이상 박정하게 굴 수 없었다.
| 선석사 태실법당. 2009년 국내 최초로 세워진 법당으로, 보존처리한 태아의 태실을 봉안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
할멈이 홍이를 거두어 방으로 데려갔다. 할멈은 갑이가 선석산에 오기 전에, 지금의 주지스님이 절에 있기 전부터 선석사에 머물렀다는 공양주보살이었다. 할멈은 같은 여자라고 홍이를 반가워했다. 가끔 외출할 때나 신던 아끼는 미투리까지 홍이에게 내주었다.
갑이는 며칠 동안 홍이의 얼굴을 못 봤다. 마당을 지날 때 끙끙 앓는 소리만 가끔 들렸다. 그러더니 얼마 뒤부터 할멈 곁을 따라다니며 공양준비를 거들었다. 주로 끼니때마다 갑이와 마주쳤는데, 태비 묻힌 곳을 계속 물었다. 그때마다 갑이는 딴청을 부렸다.
장우와 판석을 처음 본 날에도, 홍이는 두 사람에게 단종의 태비가 묻혀 있는 곳을 물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처음 듣는 얘기라서 주워들은 말은 없었다. 그보다 둘은 산에서 젊은 여인을 보게 된 일을 신기해했다. 무료한 생활에 작은 즐거움을 느꼈다.
갑이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절 방을 얻어 먹고 자는 갑이는, 저녁이면 산 아래 처자식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장우와 판석이 부러웠다. 그런데 요 며칠은 그렇지가 않았다. 댓돌에 벗어놓은 미투리만 쳐다봐도 갑이에게 뿌듯한 기분이 생겼다.
그런 어느 날, 갑이는 몹시 허기져 집어먹을 것이라도 있나 하고 공양간으로 다가갔다. 마침 저녁공양을 준비하는지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안에서 새어 나왔다. 두런거리는 말소리도 들렸다. 갑이는 홍이의 목소리를 듣고 공양간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춰 섰다. 아침에 홍이와 다툰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정말 홍위의 태비가 있기는 한 것이오?”
홍이의 호소하던 눈빛은 어느 새 의혹을 품더니 오늘 아침에는 경멸하는 기색까지 비쳤다. 갑이는 홍이의 눈총이 마음에 걸려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색시, 나 혼자 할 수 있으니까 들어가 누워.”
할멈의 목소리였다.
“할머니, 저는 색시가 아니라니까요. 괜찮아요. 가만있으면 몸이 더 무거워지니까.”
“당연이 몸이 무겁겠지. 홑몸이 아니잖아?”
“누가요?”
“누구긴 색시 얘기지, 내가 애를 가졌겠어? 딱 티가 나는데 뭘 그래. 사내놈들은 몰라도 나는 첫눈에 알아봤지. 내가 새끼를 여섯이나 뱉었구만 그런 걸 모를까?”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벌써 달이 많이 찬 것 같은데.”
“…”
갑이는 얼어붙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무슨 말인가를 계속 했지만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홍이가 공양간에서 나왔다. 홍이는 갑이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덜컹했다. 갑이의 눈길이 홍이의 아랫배를 스쳐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다음 차례로 눈 둘 데를 찾았다.
갑이가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걸 알았기에 홍이는 더욱 민망했다. 둘 다 낯이 붉어졌다. 갑이는 둘러댈 말도 못 찾고 그냥 돌아섰다.
저녁밥을 먹고 자리에 누울 때까지 갑이는 홍이의 모습을 못 봤다. 할멈의 방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갑이는 밤새 뒤척였다. 눈이 감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도 홍이는 볼 수 없었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만 보았다. 말없이 놓여있는 미투리 두 쪽이 밉상이었다. 점심밥을 먹으러 내려왔을 때는 신발짝마저 눈에서 사라졌다. 그때만 해도 갑이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밥상을 내려놓는 할멈에게 장우가 물었다.
“아가씨는 어디 갔지? 아까부터 안 보이네”
“왜 찾아. 나도 몰라.”
“할멈이 너무 부려먹어서 도망갔나?”
“헛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쯧쯧, 몸이 그 지경인데 대체 무슨 사연으로 떠도는지….”
“몸이 어떤 지경인데? 무슨 소리야, 할멈?”
판석이 물었다.
할멈은 대꾸를 않고 모른 척했다. 그러나 갑이는 알아들었다.
“절간에 여자가 들어와서 쳐다보고 시름 달래기 좋았는데 참 아쉽구만.”
“이놈아, 나는 여자로 안 보인단 말이냐”
“할멈 같이 낡아빠진 물건 말고 새파란 처자를 데려오란 말이야.”
“우리보다야 갑이가 제일 아쉽겠지.”
장우와 판석의 놀림에 갑이는 멋없이 웃으며 밥술만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할멈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계속 살폈다.
“정말 그 산을 찾아간 건가?”
갑이는 할멈이 혼자서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저녁을 먹을 때도 홍이는 없었다.
‘정말 가버렸구나!’
갑이는 입맛이 없었다. 물에 밥을 말아서는 물만 후루룩 마시고 말았다.
여느 때면 짚신을 삼으며 밤이 이슥하기를 기다렸을 텐데, 일찍 자리를 깔고 누웠다. 누워 바깥에 귀를 열었다. 할멈이 부지런히 공양간 정리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는 소리로 인기척은 끊기고 가끔 법당 처마에 달린 풍경이 달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불규칙한 소리를 세며 자는 둥 마는 둥, 잠에 빠져들지 못하니 온 몸이 배겨 갑이는 등을 일으켰다. 눈이 아직 말똥말똥했다.
갑이는 뒷간으로 가며 할멈의 방 쪽을 쳐다보았다. 캄캄했다. 바지춤을 내리고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줌이 마려운 것도 아니었다. 갑이는 방으로 돌아와 다시 누웠다. 여전히 신경은 바깥으로 기울었다. 가까이 풀벌레 소리와 먼데 산짐승들의 울음소리뿐.
“꺼억 꺼억.”
고라니 우는 소리가 산을 타내려왔다. 고라니가 지금 어느 골을 지나고 있는지, 바위를 돌아가고 개울을 건너는 중인지 눈을 감아도 선했다. 중턱에서부터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갑이는 숨소리를 죽이고 귀를 세웠다. 또 다시 꺼억 꺼억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소리가 끊겼던 곳에서 한참 멀어진 자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먼 곳에서 꺼억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소리. 또 주고받는 소리가 이어졌다. 갑이의 귀에서는 소리가 멀어졌지만 꺼억대는 두 음성은 서로 간격이 좁혀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이는 졸였던 가슴을 풀며 숨을 길게 토해냈다.
‘잘 가고 있을까. 그 여자는 겁도 없나. 이런 밤에 풀벌레 튀는 것만 봐도 안 무섭나.’
생각하면 할수록 홍이는 점점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안다고 믿었던 것도 거짓이 아닐까 의심됐다. 더구나 홑몸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미친놈, 근본도 모르는 계집을!’
갑이는 벌떡 일어났다. 툇마루를 우당탕 건너가서 할멈의 방문을 두드렸다.
“할멈, 할멈, 어서 나와 봐.”
할멈이 문을 열었다.
“야야, 무슨 일이야. 불이라도 났냐?”
“그 여자, 그 여자가 법림산 갔다고 했어?”
“자는 사람 깨워놓고 별 걸 다 묻네. 왜 이놈아, 빚이라도 줬냐?”
갑이는 제대로 된 대답도 듣지 않고 홱 돌아섰다. 이내 별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산길을 따라 달렸다.
백리(百里)가 조금 못되는 거리였다. 지금 가면 해 뜨기 전에 법림산에 닿을 수 있다. 어쩌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빠지기 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글=조정일(작가·영남일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도움말=박재관 성주군 학예연구사
공동기획 : 성주군
◆ Story Tip 선석사는
자태실 수호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 국내 첫 태실법당 세워
| 선석사 이전 당시 발견된 바위. 뒤편으로 경북도문화재자료 제113호인 대웅전이 보인다. 손동욱기자 |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선석사(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는 세종대왕자태실의 수호사찰이다. 신라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선석사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고려 공민왕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전 당시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해서 ‘터를 닦는다’는 의미로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선석사가 있는 산의 이름도 이때부터 선석산으로 불리고 있다. 사찰에는 경북도문화재자료 제113호인 대웅전과 경북도유형문화재 제357호인 괘불탱 등의 문화재가 있다. 특히 2009년에는 국내 최초로 태실법당을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석사 외에 성주에는 태실 수호사찰이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종태실의 수호사찰인 ‘태봉사’와 법림산으로 옮겨진 단종태실의 수호사찰인 ‘법림사’가 그것이다. 성주군이 올초 <재>대동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한 ‘성주 태종·단종태실 문화재 정밀지표조사’의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태종태실은 용암면 대봉리 조곡산에 자리하고 있다. 태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에는 현재 다수의 분묘가 조성되어 있고, 태실관련 석물이 주변에 흩어져 있거나 분묘의 체계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보고서는 태종의 태실은 가봉태실로, 태종이 조선을 개국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고향에 있던 태실을 성주 조곡산으로 옮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시 태실이 있던 조곡산에 태봉사가 있었다는 기록도 찾아냈는데, 태봉사가 태종태실의 안위와 수호를 맡았던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단종태실의 수호사찰인 법림사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의 옛터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추정되는 터 주변에서 석축과 기와, 토기, 도자기 등이 발견돼 법림사의 존재여부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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