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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생명 胎室(2)세종대왕자 다섯왕자 태실 수난

한문역사 2026. 1. 8. 09:26

천년의 생명 胎室]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스토리(2) 다섯왕자 태실의 수난

  • 이창남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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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09   |  발행일 2012-11-09 제11면   |  수정 2012-12-27
 
“왕자들이라고 사람 목숨 다를 게 없구만” 퍽! 퍽! 돌 깨는 소리가 산을 때렸다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훼손된 왕자들의 태실. 왼쪽부터 안평대군,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태실. 윗부분은 아예 없어지고 네모난 모양의 대석만 남아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1458년 여름이 깊었다.

“퍽, 퍽, 퍽!”

돌 깨는 소리가 산울림이 되어 산을 때렸다. 산은 소리를 먹지 않고 튕겨냈다. 낮은 태실 봉우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선석산(禪石山)을 타넘지 못했다.

“대역죄인 이용(李瑢, 안평대군의 이름)의 태(胎)를 파내라.”

의금부도사가 외치자 역군들이 안평대군의 태실에 달라붙었다. 빗돌 주변의 땅을 곡괭이로 파내고 역군들이 밀어 넘어뜨렸다. 금성대군의 빗돌이 뒤이어 쓰러졌다. 돌이 땅에 드러누우면 징을 찍고 망치로 때렸다.

갑이는 돌과 망치 사이에서 불꽃이 튀고, 돌가루가 연기처럼 피었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역군들이 태실을 깨뜨리는 동안 태실 수호군사 갑이는 장우, 판석과 함께 태실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망을 보는 것처럼 갑이의 시선은 두리번거렸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늘어지게 한숨 자볼까 했더니 글렀구만.”

장우가 말했다.

“복날 더위에 같이 일하라는 말을 안 꺼내니 고맙지. 안 그래?”

판석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감나무 가지에 홍시, 참나무 가지에 도토리처럼 권세 밑에는 그걸 빨아먹는 목숨들이 주렁주렁 달렸지. 그래서 가지가 꺾이면 한 번씩 저런 난리가 나는 거야.”

“왕씨들 망하고 이씨들 흥하는 것처럼? 그런데 지금은 이씨들 세상에 됐는데 왜 저러는 거야?”

“이씨들 안에서도 이 이씨, 저 이씨 하는 것이지. 권세가 꿀 같은 것이야, 이 사람아.”

“그늘 밑에 쏙 들어가고 싶구만, 금부도사 무서워서 이거 꼼짝을 못하겠구만.”

어제 법림산(法林山)의 노산군(魯山君, 단종) 태봉을 철거한 역군들이 날이 밝자 이곳으로 몰려왔다. 비나 한 줄기 뿌렸으면 좋으련만,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고 금부도사의 출현이라니.

“역적 이전의 태를 파내라.”

그는 영풍군이다. 그리고 한남군, 화의군의 태실까지, 역군들의 망치소리는 선석산을 갈랐다.



안평대군이 모반을 꿈꾸다 잡혀 죽은 것은 몇 해 전 일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또 다른 역모가 있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몰랐는데, 여러 왕자들이 앞 다투어 사약을 받고 유배당한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폐위된 다음 강원도 영월로 쫓겨난 어린왕(단종)은 끝내 노산군에서 다시 강등되어 서인(庶人) 신세가 되었고, 마침내 열일곱 나이에 죽었다.

“으악!”

역군 중 한 명이 망치로 손을 찧었다. 피가 흐르는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선석사(禪石寺)로 내려갔다. 절에 가면 할멈이 있으니 급한 처치는 할 수 있으리라.

“괜히 생사람 잡는구만.”

판석이 혀를 찼다.

돌 깨는 소리가 멈춘 사이를 비집고 ‘쟁쟁’ 매미 우는 소리가 쏟아졌다. 역군들은 한숨을 돌리고 다시 돌을 두드렸다. 매미는 개의치 않고 무섭게 울어댔다.

“쟁쟁, 턱, 턱, 쟁쟁쟁, 턱, 턱.”

역군들은 땡볕 아래에서 쉼 없이 돌을 내리쳤다. 눈이 땀 맛이라도 본 걸까, 돌가루가 눈을 찌를까 봐 겁내는 걸까. 모두 눈을 잔뜩 찌푸리고 망치를 휘둘렀다. 지붕돌인 개첨석은 비교적 쉽게 부셨지만, 단지처럼 둥글게 깎은 중동석과 땅에 심은 기대석은 나무를 패듯이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깨진 돌덩이들은 산비탈로 굴렸다. 땅을 할퀴고 잡목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구르다가 큰 나무를 찧는 소리도 들렸다. 등 뒤로 돌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갑이는 문득 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군들은 태항아리를 빼내어 태를 꺼냈다. 땅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몹시 궁금했기에 갑이와 수호군들은 아예 몸을 돌려 구경했다. 땅 위에 서 있던 석물들이 사라진 곳에는 뚜껑돌이 있었고, 그것을 열면 석함 속에서 커다란 태항아리가 나왔다. 항아리 속에는 또 조그만 항아리가 들어 있고, 그 안에 태가 있었다. 껍데기를 벌리고 씨앗을 꺼내듯이, 항아리 속에 든 다섯 왕자의 태를 빼내어 한쪽에 피워 둔 모닥불에 던졌다.

태항아리가 들어있던 구덩이를 흙을 채워 메우는 것으로 역군들의 일은 끝이 났다. 태를 불사른 구덩이도 흙을 덮어 다졌다. 들쑤셔진 흙 빛깔이 다른 것만 빼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아무런 것이 없던 것처럼 땅은 무표정했다.

“석물 부스러기라도 집어가는 자들은 대역죄로 다스릴 것이다. 감시를 철저히 하라.”

의금부도사는 수호군에게 엄포를 놓고 산을 내려갔다. 의금부도사가 말에 오르고 역군들이 처진 어깨를 하고 뒤따랐다. 그들 무리가 산 아래로 멀리 돌아가는 것을 보고서야 장우가 말을 꺼냈다.

“깼으면 저희가 가져갈 것이지. 산 아래 버린 것들까지 우리더러 지키라고?”

가지런히 줄지어 있던 왕자들의 자리가 군데군데 비었다. 열여덟 왕자 중에서 ‘역적’들이 사라졌다. 곁에 있던 안평대군과 앞을 지키던 화의군의 태실이 사라지면서 수양대군의 태실은 훌쩍 너른 자리를 차지했다.

“왕자들이라고 사람 목숨 다를 게 없구만….”

그렇게 말하는 판석의 표정이 쓸쓸해 보였다. 장우는 태실이 없어진 자리로 가서 괜히 서성이고 있었다.

“판석이, 오늘 같은 날 내려가서 독한 술로 목이나 축이자구. 목구멍에 낀 돌가루나 씻어야지.”

“우리가 힘썼나? 일은 딴 놈이 하고 술은 우리가 먹자고?”

“있던 게 없어지니까 속에서 뭐가 빠져나간 것처럼 기분이 안 좋아.”

“나도 그래. 마음이 축축하구만.”

“갑이, 뭐하나? 어서 가자고.”

“형님들이나 가시우, 난 여기 누워서 구름 떠가는 것이나 구경해야겠소.”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좀 듣게 같이 가.”

“관심없어요. 난.”

“그럼 명당이나 잘 지켜.”



장우와 판석이 짝지어 비탈길을 내려갔다. 갑이는 기울기 전에 마지막으로 열 올리는 햇살을 피해 소나무 그늘로 들어갔다.

‘명당? 그래, 명당은 명당이겠구나. 왕을 둘이나 만들었으니까. 두고 봐야지. 아직 여럿 살았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앞으로도 왕이 몇이나 나올지 몰라.’

갑이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마음이 어두웠다. 자신에게도 패족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자신이 살아보지도 못했던 고려를 그리워하는 아버지처럼….

할아버지는 정몽주를 가까이 모시던 무장이었다고 들었다. 그 뒤 왕자의 난에서 어느 편에 섰다가 죽었다는데. 그것뿐, 아버지는 자세한 것도 모르면서 이씨에게 원한을 품었다. 꼭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어떨 때는 세상이 온통 원한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갑이의 심성은 그런 것에서 떨어져 살기를 원했다. 험한 산지의 나무나 돌멩이처럼 박혀서 세상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고 싶었다.

깊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사람이나 절을 찾아든 사람을 간간이 볼 뿐, 이곳은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았다. 이백 보 밖에 서있는 금표(禁標)를 무시하고 소에게 꼴을 먹이고 나무를 베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갑이에게 깊은 골짜기의 산봉우리를 지키는 태실수호군은 흡족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지금 쓸쓸해짐도 같은 이유였다.

역군들이 태실을 부순다고 떠들썩했던 것이 모처럼 장터 구경을 나선 것처럼 흥청흥청한 기분을 줬다. 그들이 돌아가고 장우와 판석까지 주막으로 떠나고 나니 이번엔 풀이 죽었다. 못하는 술이라도 한 잔 할 걸 그랬다고 후회됐다.

꺼이꺼이.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일까, 갑이는 소리가 난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꺼이꺼이.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사람이 몸을 떨며 울음을 쏟아내는 소리였다. 갑이는 창을 쳐들고 태실이 있는 봉우리로 달렸다. 대체 언제 어느 길로 들어온 것일까.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초립을 쓴 사람이 태가 파헤쳐진 자리에 꿇어앉아 있었다. 가슴에 흙을 끼얹으며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역적을 애도하는 광경은 웬일인지 께름칙했다.

“이놈, 누구냐. 함부로 들지 말라는 금표를 못 봤느냐?”

몇 번을 소리쳐도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귀머거리인가? 갑이는 창끝을 내세워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니 성질이 뻗쳤다. 하는 수 없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고 뒤흔들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와, 응?”

갑이는 초립 아래로 천천히 떠오르는 얼굴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뜨거운 눈물이, 눌어붙은 먼지와 마른 땟물자국을 지우며 흐르고 있었다. 두 줄기 눈물이 지나간 자리에 여리고 흰 살갗이 비쳤다. 여자였다. <다음회에 계속>

글=조정일(작가·영남일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도움말=박재관 성주군 학예연구사
공동기획 : 성주군


◆ Story Tip

‘왕위 찬탈’ 세조, 반기 든 다섯 동생 태실 파헤치고 자신의 태실엔 가봉비 세워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에 있는 세조가봉비.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즉위 이후 자신의 태실에 특별히 귀부를 마련해 가봉비를 세웠다. 손동욱기자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섯 왕자의 태실은 윗부분이 훼손돼 네모난 모양의 대석만 남아있다. 누구의 태인지를 알리는 빗돌(장태비)도 없거나 파손돼 있다. 계유정난 때 죽은 안평대군을 비롯해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의 태실이다. 이들의 태실이 훼손된 이유는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3개월만에 죽자 그의 아들 단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다. 이때부터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등 원로대신과 집현전 학사 출신인 성삼문, 박팽년 등이 어린 왕을 보필한다. 하지만 단종의 작은 아버지였던 수양대군은 어린 왕의 심복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1453년 10월10일 계유정난을 일으킨다. 이때 안평대군은 ‘황보인, 김종서 등과 결탁해 집권하려 한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강화도로 유배된 후 죽게 된다. 자신의 형인 수양대군의 음모 때문이었다. 계유정난 이후 권력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1455년 왕위에 오른다. 바로 세조다. 동시에 단종은 이름뿐인 상왕(上王)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1456년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처형된다.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은 이 때문에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강원도 영월(寧越)에 유배된다. 이러한 가운데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경상도 순흥(順興)에서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사사(賜死)된다. 끝내 단종은 노산군에서 다시 강등되어 서인(庶人) 신세가 되었고 1457년(세조 3) 10월24일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혼란속에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역시 단종복위에 가담했다는 죄명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세조는 1458년 7월 역모를 꾀한 왕자들의 태실마저 처참하게 훼손한다. 문종때 법림산으로 옮긴 단종의 태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태실과 빗돌을 모두 파헤쳐 산 아래로 던져버린 것을 1977년에 다시 찾아내 지금 상태로 복원했다. 하지만 석물이 완전히 남아있지 않아 윗부분이 파손된 채 대석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즉위 후 자신의 태실에 특별히 귀부를 마련해 가봉비(加封碑)를 세웠다. 하지만 훗날 세조가 저지른 잘못을 미워한 백성들이 이 빗돌에다가 오물을 붓고, 돌로 찧고 갈아서 망가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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