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생명 胎室]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스토리(5) 무참히 깨진 마지막 희망
- 이창남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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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11-30 | 발행일 2012-11-30 제11면 | 수정 2012-12-27
| 성주 선석산 세종대왕자태실로 올라가는 길. 돌계단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홍이는 갑이의 눈빛을 떠올렸다. 가슴 아래를 쳐다보던 남자의 시선. 천으로 꽉 싸매놓은 뱃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했던 그 눈길. 지금도 낯이 뜨거워졌다. 그것이 다시 한번 치욕스러운 기억을 불러내 몸이 떨렸다. 아이를 갖게 된 증오스러운 밤. 지난 겨울의 일이다. 그 무렵 송씨와 시녀들은 무뢰배에 온갖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궁에서 쫓겨난 뒤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여인들은 매일 긴장된 밤을 보냈다. 그날 송씨와 시녀들이 새벽예불을 드리러 간 사이, 홍이는 혼자 남아 아침을 지었다. 샘에서 물을 길어와 부엌으로 드는데 누가 홍이를 덮쳤다. 그 자리에서 홍이를 범했다. 결국 걱정했던 일이 홍이한테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얼마 뒤 아이가 들어선 것을 알게 된 홍이는 아이를 지우려 독초를 먹고 언덕에서 구르기도 많이 했다. 강물로 걸어 들어가다가 사람들 손에 끌려나온 일도 있었다. 송씨가 뒤늦게 알고 홍이를 설득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인생의 괴로움(고),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의 모임(집), 그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도)을 말한다)…. 나에게도 길이 보일까?’
그날 송씨가 홍이의 손을 붙잡고 주신 말씀. 송씨를 살아가게 하는 그 한 가지 말을 받들고 자기도 살아보리라 홍이는 결심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아, 상감마마의 태봉을 찾아 가고 있었지. 그런데 태봉을 부수어버렸다고 했으니 가봤자 헛일 아닌가. 아니야.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였지. 선석산에 우리 마마의 태가 있다고 해놓고 입을 다물었잖아. 그 사람은 왜 나한테 있지도 않은 말을 했을까?’
홍이는 성주목을 통과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법림산을 묻고 또 물었다. 지난번처럼 엉뚱한 데를 찾아가면 안 되었다.
읍을 벗어나니 해는 벌써 산에 걸렸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골랐다. 가야산을 보며 줄곧 가라고 했으니 이 길만 놓치지 않으면 되었다. 홍이는 땅거미가 지기 전에 가야산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길은 가야산을 보였다 숨겼다 하며 산과 들을 지나갔다. 그리고 곧 짙은 어둠이 큰 산도 길도 모두 지웠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고갯길을 홍이는 안간힘을 써서 넘어갔다. 발바닥이 까지고 발은 안 떨어졌다. 그래도 이따금 풀벌레가 튀어 오를 때면 홍이도 무서워 몇 발짝 뛰었다. 그렇게 자꾸 갔다.
고개를 넘어 여긴 어디쯤일까. 물어볼 사람은 없고. 홍이는 길섶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소리가 차분하게 변했을 때였다.
물소리가 들렸다. 서두르지 않는 물소리. 듣고 있자니 물이 몸속으로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난 어디에 가 닿으려나.’ 홍이는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생각했다. 다시 물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깊을까. 이내 한 몸이 잠길 만큼 깊을까.’ 슬픔에 잠긴 마음도 함빡 젖는 것 같았다.
“땅강 땅강.”
아,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홍이는 다리를 절며 그 소리를 따라갔다.
‘법림산 법림사(法林山 法林寺)!’
일주문에 적힌 절 이름을 보고 홍이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마침 요사채에서 나오는 스님이 있어 홍이는 태봉(胎封)을 물었다. 스님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어둠 속을 가리켰다. 그 어둠 속에 왕의 태봉이 있다고.
| 올초 성주군이 <재>대동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성주 태종·단종태실 문화재 정밀지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법림산 단종태실지에는 태실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물이 주변에 흩어져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는 민묘(民墓)의 비석 받침돌로 재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주군 제공> |
법림사의 종소리가 산과 계곡에 울려 퍼졌다. 아침을 부르는 소리였다. 홍이는 절 담벼락 밑에 웅크렸다. 그래도 몸을 파고드는 한기를 막을 순 없었다. 이를 덜덜 떨며 동이 터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안개 속에 잠겨 있는 태봉이 보였다. 작지만 곧장 하늘로 솟아오른 산이었다. 새 기운을 얻어 홍이는 산비탈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눈이 멀었으면, 내내 밤이었으면 못 봤을 걸 보고 말았다.
그곳은 맹금이 욕심을 채우고 간 자리. 뱁새나 솔새 따위 힘없는 하나를 잡아채 그 살을 뜯어먹고 핏자국만 남은 자리였다. 깃털 뽑아놓은 듯 희끗희끗 널린 것들은 바로 태실 석물의 파편이었다. 세월이 가도 썩지 않는 굳센 돌들이 쇳덩이를 얻어맞고 깨져 있었다.
꽃잎이 져 시들고 있었다. 커다란 기대석에 새김한 하늘로 피어오른 연꽃과 지붕돌에 새김한 땅으로 벌어진 연꽃, 돌에 피었던 연의 꽃잎들이 땅에 처참하게 떨어져 있었다. 두 꽃부리가 머금고 있던 중동석은 수박을 가르듯 두 쪽을 내놓고, 태비는 엿가락처럼 톡톡 끊어놓았다. 지붕돌 위에 달려있던 젖꼭지 같은 보주(寶珠)도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톱밥처럼 뿌려진 저 돌가루가 어쩌면 왕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돌들이 신음했다. 삭은 나뭇가지가 밟혀 부서지듯 아직도 바삭바삭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장사들은 힘도 세다! 천년만년 끄떡없는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버리다니. 상감마마! 제가 그만 늦었습니다. 불쌍한 마마를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중전마마! 수양이 모조리 쳐 없애버렸습니다. 제가 안겨드릴 것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마마, 원통해서 어찌 삽니까?”
그때, 홍이의 글썽글썽한 눈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비쳤다. 그 남자였다. 그제는 공양간에서 할멈과 둘이 하는 말을 훔쳐 듣더니 여기까지 따라와서 이제 대놓고 보네.
“금수 같은 놈들아, 이 금수만도 못한 놈들아!”
홍이는 손을 훑어 돌멩이가 쥐이는 대로 두 번 세 번 남자를 향해 팔매질했다. 모두 빗나갔다. 남자가 달려들었다. 홍이는 흙을 한 움큼 긁어 그쪽에 뿌렸다. 남자가 홍이의 양팔을 붙들었다. 홍이는 남자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홍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둘은 성난 짐승들처럼 악을 쓰면서 뒤엉켜 싸웠다.
아침이 분명했지만 하늘빛은 갈수록 어두웠다. 무거워 주저앉을 것 같더니 마침내 차가운 빗줄기를 쏟아냈다.
젊은 남녀가 철거된 태봉을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궁금해, 법림사 스님은 안 보는 척하면서 자꾸 힐끔힐끔 내다보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 안 갈 거야?”
갑이는 홍이에게서 몇 발짝 떨어져 저를 따르는지 마는지 눈치를 살폈다. 겨우 끌고 내려왔더니 아예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홍이는 멍한 눈을 들어 길을 찾듯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어디에도 갈 이유가 없는데, 이 사람은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이상했다.
갑이가 홍이의 손목을 움켜잡고 먼저 걷기 시작했다.
길은 하염없이 위를 향하다가 아래로 기울어졌다. 밤에 넘어왔던 고개를 되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홍이는 알았다.
‘성주목 동헌으로 날 잡아가는구나. 나를 고발하고 이 사람은 무엇을 상으로 내려받을까. 감투 한 자리와 역적의 처자식을 노비로 얻고 그 집안에서 빼앗은 몇 결의 논밭을 차지할까.’
고갯마루에서 홍이는 법림산을 돌아보고 걱정을 남겼다.
‘돌이 젖겠다. 돌가루가 쓸려가겠다. 우리 마마 홀딱 젖으시겠다.’
고개를 내려섰을 때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머리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두꺼운 참나무 잎을 때리는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성주목에도 아직 반을 못 갔다. 밤이 오기 전에 선석사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갑이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젯밤 쉬지 않고 달려온 다리도 힘이 빠졌다.
능골을 지날 때였다. 갑이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는 재실(齋室)을 보고 거기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비는 가렸지만 이미 축축하게 젖은 두 사람의 몸은 오들오들 떨렸다. 홍이의 입술은 파랬다.
“직접 눈으로 봤으니 알겠지. 이제 내 말을 믿겠어?”
홍이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해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갑이는 심술이 났다.
“이를 어째? 그렇게 찾으려고 안달하던 역적의 태를 결국 못 구해서.”
법림산 태봉에서 울부짖던 홍이. 거짓말이 들통 나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대꾸가 없으니 갑이는 조금 더 골려 주고 싶었다.
“저길 봐. 농서군공( 西郡公, 성주이씨의 중흥시조)의 산소(山所)야. 묏자리를 잘 써서 후손이 성했다고들 하지. 아들 다섯이 고려 때 전부 높은 벼슬을 했대. 몇해 전 세상을 떠난 성원위(星原尉, 숙혜옹주와 결혼한 이정녕) 어른도 같은 핏줄이지. 태종대왕 사위 말이야. 그런데 원래부터 산소가 저기 있었던 게 아냐. 먼저는 선석산에 있었지.”
홍이는 갑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창백해진 얼굴에는 진땀이 흘렀다. 그것도 갑이 눈에는 머리에 스민 빗물이 타고 내리는 것으로 보였다. 홍이의 정신은 꺼져가는 중이었다.
“태실 코앞에 산소가 있으면 안 된다고 나라에서 옮기게 한 거야. 어때 대단하지? 우리 같은 사람은 명당인지 흉당인지 그냥 사는데, 귀한 분들은 천하명당 소문이 나면 그 땅을 꼭 쓰지 않고선 못 배기는가봐. 산 목숨이든 죽은 목숨이든 갖다놓으려는 걸 보면. 흐흐흐. 이봐, 자네는 태를 어떻게 했지? 알고 있어? 몰라? 우리 어미는 내 태를 어떻게 했을까. 물에 던졌을까, 불살랐을까, 아니면 개나 물어가라고 삽짝 앞에 뒀을까? 흐흐흐.”
벽에 기대놓은 보릿자루 같은 게 스르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갑이는 조금 쓸쓸해지는 기분을 날려버리고 싶어 낄낄댔다.
“역적의 태를 구해서 뭘 어쩌려는 거지? 그 말라비틀어진 걸 죽은 사람 배꼽에 갖다 붙이면 다시 살아난대?”
가벼운 것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는 온통 빗소리뿐 고요했다. 갑이가 돌아봤을 때 홍이는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글=조정일(작가·영남일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 Story Tip
태실 옮긴 후 왕위에… 단종의 태를 묻은 곳 ‘태봉’이라 불러야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왕자와 공주가 태어나면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임시로 설치해 관련 업무를 맡게 했다. 태를 묻을 길일(吉日)과 길지(吉地)가 정해지면 태실도감에서는 안태사(安胎使)를 보내어 태를 묻게 했다. 특히 태를 묻으러 가기 전에 궁에서는 태봉출(胎奉出) 의식을 성대하게 가졌는데, 안태사 행렬은 의식을 마친 후에 태실지로 출발했다고 한다. 행렬이 태실지에 도착하면 그곳의 지방관들은 태를 봉안하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지원했다.
태를 봉안할 때도 엄격한 격식과 절차를 거쳤다.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를 곧장 백자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길일을 택해 깨끗하게 태를 씻는다. 깨끗이 씻은 태는 다시 백자 항아리에 담아 봉한 다음, 더 큰 항아리에 담는다. 항아리와 항아리 사이의 공간은 솜으로 메우고 감당단편을 그 위에 놓고 연기로 녹여서 봉한 다음 다시 밀봉한다.
태실 관련 용어도 다양하다. ‘태실운영기’에 따르면, 왕자의 태를 석실에 넣어 산에 묻는 것을 ‘안태(安胎)라 하고, 태를 봉안한 곳을 태실(胎室)이라고 한다. 임금의 태를 묻은 곳은 태봉(胎封)으로 격상해 불렀다. 선석산에서 법림산으로 옮겨진 단종의 태실은 엄밀히 따지면 태봉(胎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법림산으로 옮긴 후 단종이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또 태를 묻은 산은 ‘태봉(胎峰)’이라고 한다. 태비는 태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태실 앞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태를 묻은 산에 불이 나거나 태실수호를 게을리하면 고을의 원이 바뀌거나 군수를 엄하게 다스린 사례도 ‘중종실록’과 ‘조선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태실을 소중히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공동기획 : 성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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