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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생명 태실(3) 단종의 태실 찾아나선 侍女

한문역사 2026. 1. 8. 09:29

천년의 생명 胎室]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스토리(3) 단종의 태를 찾아나선 시녀

  • 이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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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16   |  발행일 2012-11-16 제11면   |  수정 2012-12-27
 
“상감마마의 태는 어디 있소?” 홍이는 여차하면 창끝에 목을 갖다대버릴 작정이었다
 
항공촬영한 가야산 자락 법림산의 단종 태실지. 단종의 태실은 처음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세종대왕자태실에 있었지만 문종이 즉위하면서 법림산으로 옮겨졌다. 숙부들과 같이 있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성주군 제공>

홍이는 대전(大殿)의 시녀였다. 어린 왕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다시 금성대군의 집으로 쫓겨나고, 끝내 영월로 귀양을 가는 길에까지 홍이는 줄곧 따랐다. 한 해 전 이맘때도 영월에 있었다.

유월에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은 여름에 큰 홍수가 나자 거처를 영월 동헌으로 옮겼다. 서강(西江)에 둘러싸여 갑갑증을 겪다가 영월로 나오니 일단은 단종도 시종들도 모두 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월에 금부도사가 사약을 들고 나타났다. 영월로 귀양 온 지 넉 달을 못 채운 때였다.

세조(世祖)는 두려웠던 것이다. 사육신이 주도했던 역모사건을 잠재웠다 싶으니 동생 금성대군의 역모계획이 드러났다. 그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조카가 살아있는 한 악몽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동헌 뜰에서 울부짖다 밖으로 쫓겨난 시종들은 얼마 뒤 단종이 운명한 것을 직감했다. 모두 대성통곡을 하며 문을 두드렸지만 동헌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시종들은 목숨 버릴 곳을 찾았다. 주인이 저승길을 홀로 가버리기 전에 하나같이 주인의 뒤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동강(東江)이 아찔하게 내려다 뵈는 절벽으로 달려가 차례차례 몸을 던졌다. 그러나 홍이는 살아났다.

서리 깔린 길을 밟으며 홍이는 영월을 벗어났다. 그리고 폐위된 왕비 송씨(宋氏·숙종 때 단종과 함께 정순왕후로 복위된다)의 처소를 찾아갔다. 송씨는 중궁전(中宮殿)에서 따라 나온 시녀 몇을 데리고, 동대문 밖에 초라한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흰옷을 입고, 죽은 사람들처럼 지내고 있었다.

왕이 죽어 동강에 버려졌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시종들이 그 뒤를 따른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송씨는 눈물을 지었다.

“불쌍하고 갸륵하구나. 의로운 사람들이 상감마마를 따라 물고기 밥이 되었다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았겠구나.”

하지만 홍이도 몰랐다. 자신이 동강에서 살아나온 그날 밤, 영월의 호장(戶長) 엄홍도(嚴興道)가 강물에 던져진 왕의 시신을 거두어 엄씨 선산에 묻었다는 사실을. 이 일은 훗날 중종 때 가서 밝혀진다.

“중전마마, 저 혼자 살아남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홍이가 자결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자 송씨가 위로했다.

“난 네가 돌아와 기쁘다. 홍이야,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송씨와 홍이는 얼싸안고 마음껏 울었다.

시녀들이 주변 민가에 사정하여 쌀과 고기를 구해왔다. 그날 저녁은 누구도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차가운 강물에 투신한 시종들에게 제를 올리고 밤 깊도록 추모했다. 영월에서 마지막까지 서로 의지하였던 사람들이 떠올라 홍이는 애가 끓어올랐다.

홍이는 송씨를 모시고 몇 달을 함께 보냈다. 부모와 형제들 곁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봄이 왔고, 그날도 단종에게 제를 올리고 난 저녁이었다. 송씨가 조용히 말했다.

“왕이 마지막 가시는 길도 보질 못하고, 아끼시던 물건 하나 지니지 못하고, 나에게는 왕을 기억할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구나. 이제 꿈에서나 만나보길 빌어야겠다.”

송씨는 살아서 더는 만나보질 못할 사람의 한 가닥 자취를 붙잡고 싶어했다. 시녀들은 서로가 눈치채지 못하게 한숨을 지었다. 그러다 한 시녀가 말했다.

“마마, 경상도 성주에 상감마마의 태(胎)가 묻혀 있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상감마마의 태를 씻어 항아리에 넣었던 의녀가 그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송씨 부인의 얼굴은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그래,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구나. 하지만 어쩌겠느냐. 분명 숙부는 그마저 없애버릴 것이다.”

한 방에 있던 사람들은 또 하나의 불상사를 예견하고 다시금 슬퍼했다.

홍이는 며칠을 생각했다. ‘수양대군은 못하는 짓이 없는 사람이야. 중전마마가 걱정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거야.’ 그리하여 홍이는 단종의 태를 거두어 송씨에게 전하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을 다잡은 홍이는 즉시 처소를 빠져나왔다.

송씨에게 허락을 얻지는 않았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잡히기라도 하면 송씨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 되면 좋은 일이요, 못 돼도 혼자 감수하면 되리라. 홍이는 그렇게 도성을 떠나 물어물어 성주목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단종의 태가 묻힌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가 수상했다. 일을 그르친 것일까. 그리고 지금 갑이의 창끝이 홍이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넌 누구냐?”

금표를 넘을 때만 하더라도 수호군사를 피할 일이 제일 걱정이었다. 태실에 닿을 동안 아무도 눈에 띄질 않기에 이상타 했더니 이렇게 호랑이처럼 나타난 것이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홍이는 넋이 나가 아무 말도 못했다. ‘난 누구지? 여긴, 어디지?’ 제 마음속에서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감마마의 태는 어디 있소?”

그것은 홍이가 아니라 또 다른 정신이 꺼내놓은 말 같았다. 왜냐하면 홍이도 그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기 때문이다. 제가 무심결에 한 말에 홍이는 정신이 돌아왔다.

“상감마마?”

갑이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왕을 뜻하는 말임을 느낌으로 알았고, 그토록 낯선 말을 쓰는 사람 앞에서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저기 앞에 서 있는 게 안 보이느냐?”

“수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오.”

“수양이라니?”

홍이는 아차 싶었다. 이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피바람이 불게 될까. 왕비 송씨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여차하면 창끝에 목을 갖다대버릴 작정이었다. 시퍼런 창날은 순식간에 숨을 끊어줄 것 같았다. 그러니 너무 쉬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죽으려고 했으면 벌써 열 번도 더 죽을 수 있었어. 청령포의 강물이 불었을 때, 동강 절벽을 뛰어내렸을 때, 그 뒤에 또…. 생각만 하면 혀를 깨물어버리고 싶어. 그런데 지금 난 살아있어. 중전마마의 말씀처럼, 아직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정말 있을지도 몰라.’

홍이는 이를 악물었다. 창날에 끌리던 눈길을 들어 올려 갑이를 보았다.

“나는 홍위(弘暐·단종의 이름)의 태 자리를 묻는 것이오.”

“홍위?”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대역죄인 말이오!”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홍이는 고통스러웠다. 두 눈이 부릅떠졌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하지만 그 점이 거짓말을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다. 갑이는 여자가 돌연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자 이유가 궁금했다.

 
법림산 단종태실은 수양대군(세조)이 왕위를 찬탈한 후 철저하게 훼손됐다. 단종태실지에는 태실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물이 아직도 남아있다. <성주군 제공>

“그건 여기 없지. 법림산에 있잖아.”

“법림산?”

허탈했다. 홍이는 단종의 태가 있는 산을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성주에 와서 태봉을 물을 때 만난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선석산을 가리켰던 것이다.

태종의 태가 조곡산에, 단종의 태가 법림산에, 그리고 세종의 왕자들 태가 이곳 선석산에 따로 묻혀 있는 것을 홍이는 몰랐다. 성주 땅 한 곳에 태봉이 그렇게나 많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법림산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시오. 내 당장 가야겠소.”

“뭣 때문에 금표를 넘어 와서 나한테 그런 말을 물어?”

“홍위를 옹립하려는 역적들 때문에 우리집안이 동티를 입어 멸문지화를 당했소. 내 그것이 한이 되어 그 원흉이 되는 홍위의 태를 파 없애버릴 각오로 왔소. 그래야 분을 풀 수 있을 테니 말이오.”

“잊어버려. 태는 벌써 재가 되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내 이 손으로 그 놈의 태를 없애버려야 살아갈 수 있겠다니까. 제발 도와주시오.”

홍이는 무릎을 질질 끌며 갑이에게 다가갔다. 갑이는 뒤로 물러나며 태비가 철거된 자리를 가리켰다.

“잘 봐, 여기가 태가 있던 자리야. 역모를 꾸몄던 왕자들의 태 말이야. 그런데 아까 금부도사가 와서 파내버렸지. 법림산에 있던 건 벌써 어제 없애버렸다구.”

잠깐 동안 기대를 품었던 홍이는 또다시 절망했다. 헛수고란 말인가. 홍이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남았단 말이오?”

“그래, 다 부수고 없어. 가봤자 지금 보는 것처럼 텅 비었을 거라구.”

홍이가 다시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갑이는 괜히 민망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의 태도가 저로 하여금 자꾸만 미안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굳이 그런 말까지 하게 된 것은.

“아직 남은 게 하나 있긴 하지. 그 홍위라는 자의 태비가 여기 있어.”

홍이가 떨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태비가 이곳에 있다고 말했소?”

갑이는 그 젖은 눈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글=조정일 (작가·영남일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도움말=박재관 성주군 학예연구사


◆ Story Tip

단종 태실이 문종 때 자태실서 법림산으로 옮겨진 이유는…

 
단종태실의 수호사찰인 법림사의 옛터. 주변에 석축과 기와, 토기, 도자기 등이 발견돼 법림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주군 제공>

단종의 태실은 그의 비극적인 삶만큼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처음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세종대왕자태실에 있었던 단종 태실은 훗날 문종이 즉위하면서 가야산 자락 법림산으로 옮겨진다. 조정에서 숙부들과 같이 있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세조)은 왕위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법림산으로 옮긴 단종의 태실까지 철저하게 훼손시킨다. 지금은 법림산 단종태실지에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 태실에 넣어둔 태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선석산 세종대왕자태실에 있는 현재의 단종 태실은 법림산으로 옮기면서 남겨두었던 석물을 복원한 것이다. 원래 태를 옮길때는 석물은 함께 옮기지 않고 땅에 묻어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법림산으로 태는 옮겨졌지만 최초의 태실을 조성했던 석물은 현재의 선석산에 남아있을 수 있었고, 이를 다시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실 내부에 실제 단종의 태는 없는 상태다.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탓에 단종의 태실은 숙부들의 태실과 달리 표면이 비교적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공동기획 : 성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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