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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도 종이 재활용

한문역사 2026. 1. 12. 14:00

신라 때도 종이 재활용…'세계 TOP 10' 종이대국 만든 힘

2026. 1. 10. 00:04
 

 
‘신라 촌락문서’ 앞면. 신라 시대의 행정 기록이 적혀있는 이 문서는 재미있게도 『화엄경론』이라는 책을 포장지처럼 감싸고 있었다.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신라 시대쯤 되는 옛날에 전체 인구 중에서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였을까. 가난한 보통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다행히 ‘신라 촌락문서’ 또는 ‘신라 민정문서’라고 부르는 문서 자료가 하나 남아 있기는 하다. 이 문서에는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 근처 마을 네 곳에 대해 신라 시대의 관청에서 조사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에 따르면 마을 네 곳의 전체 인구가 462명이었고 그중에 노비로 표시된 사람이 25명이었다. 그러니 적어도 신라 인구의 약 5% 정도는 노비였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자료다.
“조선 백추지, 천하에서 보물로 여겨” 기록
 
일본 왕실 보물 창고였던 쇼소인. 이곳에서 ‘신라 촌락문서’가 발견됐다.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재미난 점은 이 ‘신라 촌락문서’라는 귀중한 자료가 남아 있는 곳이 일본의 왕실 보물 창고였던 쇼소인(正倉院)이라는 점이다.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그곳의 유물들을 정리하다가 『화엄경론』이라는 책을 손질하게 되었는데 그 책을 감싼 일종의 포장지 역할을 하는 종이에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종이가 신라 시대 관청에서 사용하던 행정 문서였다. 추측하기에는 아마도 신라에서 일본으로 불교 서적을 수출하면서 이면지 재활용을 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신라 시대의 행정 기록이 종이에 적힌 서류 형태로 남아 있는 극히 드문 사례로 귀중한 역사 연구의 자료다. 그뿐만 아니라 그 종이 자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정보를 준다. 우선 신라에서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을 정도로 질이 좋은 종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고 그것을 사무용으로 흔히 사용하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해외에 보낼 좋은 물건의 포장으로 쓸 정도로 종이의 질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을 거라는 사실 또한 추측해 볼 수 있고, 그 옛날에도 종이 재활용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고대 이후로 한국은 질 좋은 종이를 잘 생산하는 나라라는 뚜렷한 전통을 갖고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백추지(白錘紙)’라고 하는 좋은 종이가 생산되고 있었는데 중국 송나라의 책인 『계림유사』에서 이런 종이를 고려의 특산품으로 언급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조선 시대에 이르면 종이 질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높아져서 『성호사설』에는 조선의 백추지를 “천하에서 보물로 여긴다”는 말이 실려 있을 정도다.

『조선왕조실록』 1437년 음력 10월 1일 기록 등을 보면 멀리 북방에서 오영응합(吾寧應哈) 등의 이민족들이 찾아와 예의를 표하며 토산품을 바치자 세종 임금이 선물로 종이를 내려 주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지금이야 중국 특사쯤 되는 사람이 한국 대통령을 찾아왔을 때 선물이라면서 A4 용지 한 박스를 준다면 농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600년 전인 그 옛날에 좋은 종이란 어지간한 기술이 없으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현대에도 종이를 가정집에서 뚝딱 만들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만큼 좋은 종이는 조선의 공업 기술을 자랑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그러면서도 칼이나 금은을 선물로 주는 것과 비교해 보자면 종이는 책과 지혜를 사랑하는 조선의 문화를 상징한다.

요즘 한국 종이 산업은 어떤 상황일까. 한국은 종이 생산량으로 세계 10위 권 안에 들어가는 종이 대국이다. 한국제지연합회 자료를 보면 한국은 매년 1100만t 이상의 종이를 생산하고 있어서 순위가 높을 때는 세계 7위, 8위 수준이 될 때도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은 종이를 만들 수 있는 나무를 많이 생산하는 편이 아닌데도 종이를 굉장히 많이 만든다는 점에서 종이 대국 중에서도 독특한 종이 대국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무엇보다도 종이의 재활용이 종이 산업을 밑바닥에서 받치고 있다. 제지 업계에서는 한국 종이 제품을 만드는 원료의 80% 이상이 폐지인 것으로 보고 있다. 흔히 나무를 잘라서 종이를 만든다고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버린 종이로 다시 새 종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기본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의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숫자다.

 

공교롭게도 조선 시대 때부터 한국은 종이 재활용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다. ‘휴지’라는 말 자체가 쉴 휴(休)자에 종이 지(紙)자를 써서 그냥 버리는 종이가 아니라 재활용되기 전까지 잠시 쉬고 있는 종이라는 어감을 갖고 있다. 이정 박사 같은 학자는 저서에서 “휴지라는 말은 한자어이지만 중국에는 없으며 예로부터 한국에서만 쓰던 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 1415년 음력 7월 25일 기록을 보면 당시에 발행했던 일종의 지폐라고 할 수 있는 ‘저화(楮貨)’라는 돈을 휴지를 재활용해서 만들기로 했다는 기록마저 실려 있다. 요즘 돈 가치가 떨어지면 흔히 돈이 휴지가 되었다고 말을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역으로 휴지가 돈이 될 정도로 종이 재활용에 공을 들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