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故 박동혁 병장과 쇳조각 3㎏의 증언
오늘이 제2연평해전 24주기
몸에서 총알과 포탄 파편 3㎏
대통령과 軍이 북한 눈치 보면
누가 또 국가의 방패가 되겠나

평택 해군 2함대에 있는 서해수호관에 갔다가 저울에 눈길이 붙잡혔다. 제2연평해전 전시실에서 고(故) 박동혁 병장 코너를 지날 때였다. 유리 진열장 안에 접시저울이 있는데, 그 위에 총알을 닮은 쇳조각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저울의 눈금은 3㎏을 가리키고 있었다. 견학 온 사람들을 안내하던 해군 장병은 “박동혁 병장의 시신을 화장한 뒤 뼛가루와 함께 포탄 파편과 총알 3㎏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3㎏은 어떤 중량인가. 갓난아기 무게와 비슷하다. 그런데 사람 몸에서 총알과 포탄 파편이 3㎏이나 나왔다니, 참담해서 한동안 그 저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당시 참수리 357호 의무병 박동혁은 스물한 살. 진열장에는 그의 앳된 얼굴 사진과 함께 어머니 이경진씨의 육필 편지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내 아들아!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니?’였다.
2002년 6월 우리가 월드컵 중계를 볼 때 서해 연평도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의 기습 도발로 교전이 있었다는 뉴스 속보 자막이 나왔다. 전사한 해군 6명 중 한 명이 박동혁 병장이다. 국민이 축구 열기에 취해 있던 그때,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제대로 애도받지 못했다. 10주기 추념식에야 대통령이 처음 참석할 만큼 국가의 예우도 미흡했다.
사람은 기억하는 데 서툴다. 글이나 그림, 영화는 망각에 맞서 사실이나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일 수 있다. 영화 ‘연평해전’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고 희생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제작비 부족과 촬영 중단으로 표류하던 ‘연평해전’은 6만명이 넘는 국민의 성금으로 2015년 개봉했다. 영화 담당 기자이던 당시 이경진씨가 들려준 말이다.

“이쪽에서는 초상 치르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대통령(당시 김대중)은 일본 축구장에서 빨간 넥타이를 매고 손뼉 치고 있었습니다.
국군수도병원 중환자 대기실에서 TV로 그 모습을 보는데 화가 났어요.
동혁이가 ‘엄마, 나 더 살고 싶어. 집에 갈 수 있어?’라고 글씨를 써 묻는데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84일간 생사를 헤매던 동혁이를 잃고
혼자 집에 돌아와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참 외로웠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져 위안이 됩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우리 아들들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유족들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오발이니 도발이니 패전이니 승전이니 해서 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오죽하면 ‘우리는 대통령에게 버려진 군인의 부모’라고 절규했을까.
서해수호관 외관은 거친 파도 형상이었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후
정치적 논란 속에 유족들이 겪은 풍파가 물성으로 다가왔다.
화장 후 남은 쇳조각 3㎏은 그 고통과 상처를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평화는 깨지기 쉽다. 군인의 숭고한 희생을 국가가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부는 6월 호국보훈의 달에 해 온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 행사’를
올해는 건너뛰어 “북한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나왔다.
6·25 기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점,
그리고 당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사실마저
우리 군이 발표하지 않은 의문 또한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제2연평해전 유족회장인 서영석(故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씨는
이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오찬 때 청와대가 준비한 이름표에 ‘특별초청대상자’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왜 ‘제2연평해전 유족’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서씨는 반문했다.
“버릴 수는 없고 챙기자니 기분 나쁘고 그런 것 아닙니까?”
오늘이 제2연평해전 24주기다.
국가가 그 희생을 기억하고 예우하지 않는다면 누가 다시 이 땅의 방패가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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