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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피를 부른 난정서

한문역사 2026. 7. 16. 17:00

신복룡의 신 영웅전] 피를 부른 난정서

2026. 7. 16. 00:06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왕희지(王羲之·307~365?·사진)가 집에 난정(蘭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준공하던 날 몇몇 친구들을 모아 자축하고 술에 취한 김에 난정을 짓게 된 경위를 글로 썼다. 330여자의 글씨를 쓰고 난 왕희지가 자기가 보기에도 글씨가 명필이기에 이를 가보로 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난정서는 왕씨 가문의 가보로 내려오다가 당대(唐代)에 이르러 그것을 비장하고 있던 8대손 지영(智永)이 중이 되어 후손이 끊기게 되자 변재(辨才)라는 상좌승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 변재는 수도승으로 살지 못하고 환속하였다.

문화재를 좋아했던 당태종은 그 난정서를 갖고 싶었다. 그리하여 난정서의 소재를 추적한 결과 변재의 집에 비장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애당초 당태종은 그것을 빼앗을 수도 있었지만, 난정서를 내놓지 않으려고 숨기다가 혹 그것을 파손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그 고을의 현감에게 그것을 훔쳐 오도록 했다.

칙령을 받은 현감은 골동품 장사꾼으로 가장하여 어느 날 변재의 집을 찾아갔다. 현감은 골동품에 관한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가 “나에게 난정서 진품이 있다”면서 눈치를 살펴보니, 변재가 별 실없는 사람 다 보았다는 듯이 쓴웃음을 흘렸다. 그날 밤 변재는 미심한 생각이 들어 대들보에 구멍을 뚫고 보관해오던 난정서를 꺼내 보며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튿날 변재가 이웃 마을로 출타한 틈을 타서 현감은 난정서를 훔쳐 황제에게 바쳤다. 황제는 친히 변재에게 편지를 내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가 난정서를 가져갔으니 그리 알라고 일렀다. 편지를 받은 변재는 너무도 원통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당태종은 글씨를 사랑한 나머지 자기가 죽은 후에 그 난정서를 가슴에 품어 묻어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 진품은 영원히 사라졌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난정서는 그 당시 유명한 서예가였던 저수량(褚遂良)이 남긴 임서(臨書)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