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聞官軍收河南河北

한문역사 2025. 4. 23. 11:29
 

 

당시삼백수 권4 칠언율시
185.聞官軍收河南河北(문관군수하남하북) - 杜甫(두보)
관군(官軍)이 하남 하북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聞官軍收河南河北

(문관군수하남하북)

杜甫(두보)

 

劍外忽傳收薊北(검외홀전수계북)初聞涕淚滿衣裳(초문체루만의상)

卻看妻子愁何在(각간처자수하재)漫卷詩書喜欲狂(만권시서희욕광)

白日放歌須縱酒(백일방가수종주)青春作伴好還鄉(청춘작반호환향)

即從巴峽穿巫峽(즉종파협천무협)便下襄陽向洛陽(변하양양향낙양)

 

 

<원문출처> 聞官軍收河南河北/ 作者杜甫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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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劍門) 밖으로 갑자기 계북(薊北)의 수복 소식 전해오니

처음 듣고는 눈물이 옷에 가득하였네

 

아내와 아이들 돌아보니 수심은 어디로 갔을까?

책들을 대강 챙기는데 기뻐 미칠 듯하다

 

대낮에 맘껏 노래하고 마냥 술 마시며

푸른 봄날 짝하여 기쁘게 고향으로 돌아가리

 

즉시 파협(巴峽)에서 쏜살같이 무협(巫峽)을 지나

곧장 양양(襄陽)으로 내려가 낙양(洛陽)으로 향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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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관군(官軍)이 하북(河北)을 수복했다는 소식이 검문(劍門) 밖에 있는 내게 갑자기 전해져 왔다.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놀라고 기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옷을 다 적셨다. 고개 돌려 아내와 아이들을 돌아보니, 수심에 찬 얼굴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닥치는 대로 책들을 대충대충 챙겨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정말 기뻐서 미칠 것만 같다. 이렇게 좋은 날엔 대낮이라도 마음껏 큰 소리로 노래하고 실컷 술을 마셔야 한다. 아름다운 봄날에 좋은 경치를 벗 삼아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떠나야겠다. 파협(巴峽)에서 출발하여 무협(巫峽)을 지나 곧장 양양(襄陽)으로 내려가서 다시 고향인 낙양(洛陽)을 향해 떠날 것이다.

 

 

[解題] () 대종(代宗) 보응(寶應) 원년(元年:762)에 두보(杜甫)는 성도(成都)의 병란(兵亂)으로 인하여 식구들을 이끌고 재주(梓州)로 옮겨갔다. 이듬해(763) 봄 당()의 관군이 하남·하북을 수복하였고 8년이나 계속되었던 안록산(安祿山사사명(史思明)의 반란은 마침내 평정되었다. 시인은 그곳에서 승리의 소식을 들은 후 미칠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붓을 달려 이 시를 쓴 것이다.

시 전체는 서사체로 되어 있다. 시 곳곳에서 그는 환희의 탄성을 지르고, 전체 시의 중심은 喜欲狂(희욕광)’의 묘사에 치우쳐 있다. 시에서 특히 일곱 개의 양운(陽韻)을 쓴 것은 이 시의 기쁨과 즐거움의 정서를 잘 드러내준다. 이렇듯 환희에 찬 마음으로 쓴 시는 두보(杜甫)의 시작(詩作)들 가운데 흔치 않다. 이 때문에 그의 평생에 가장 통쾌한 시[生平第一首快詩]’라는 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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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官軍收河南河北(관군수하남하북) : 하남(河南)은 황하(黃河) 이남의 낙양(洛陽), 상주(相州), 정주(鄭州) 일대를 가리킨다. 하북(河北)은 황하 이북인데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북부이다. () 대종(代宗) 보응(寶應) 원년(元年:762) 10월에 당군(唐軍)이 낙양, 정주 등의 땅을 수복하였고, 이어서 황하 이북으로 진군하였다. 이듬해 정월 사조의(史朝義)는 군대가 패하자 자살하였고, 그의 부장(部將)이었던 전승사(田承嗣), 이회선(李懷仙) 등은 흩어져서 투항하여 8년간 끌어오던 안사(安史)의 난은 비로소 끝을 보게 되었다.

 

 劍外(검외) : 사천성(四川省) 북부에 검문(劍門)이 있다. ‘劍外(검외)’는 검문(劍門) 이남의 지역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사천(四川)을 지칭한다.

 

 薊北(계북) : 당대(唐代)의 계주(薊州), 유주(幽州) 일대로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동북부이다. 안사의 난 당시 반군(叛軍)이 주둔해 있던 근거지였다.

 

 涕淚(체루) : 울어서 흐르는 눈물

 

 卻看(각간) : 머리를 돌려서 본다는 뜻이다.

 

 漫卷(만권) : 대충 수습한다는 뜻이다. ‘ 과 같다.

 

 縱酒(종주) :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흠뻑 마심

 

 作伴(작반) : 길을 가는 데 동무를 삼음.

 

 卽從巴峽穿巫峽(즉종파협천무협) : 즉각 파협(巴峽)에서 출발하여 무협(巫峽)을 뚫고 지나갈 것이라는 의미이다. ‘파협은 중경(重慶) 도만현(到萬縣)과 봉절현(奉節縣) 일대 큰 강의 협구(峽口)를 두루 가리켜 말한 것이고, 무협(巫峽)은 삼협(三峽)의 하나로 사천성(四川省) 무산현(巫山縣) 동쪽에 있다.

 

 便下襄陽向洛陽(변하양양향낙양) : 파협(巴峽)을 나와 양양(襄陽)에 도착한 후에 다시 낙양(洛陽)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양양은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이다. 원주(原注) 나의 전원(田園)이 동경(東京)에 있다.[余田園在東京]” 하였는데, 동경은 곧 낙양이다. 두보(杜甫)의 고향은 공현(鞏縣)에 있는데 낙양의 동쪽이다. ‘便()’   변으로 읽는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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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사의 난(安史之亂)은 755년 12월 16일부터 763년 2월 17일에 걸쳐 당나라의 절도사인 안록산과 그 부하인 사사명과 그 자녀들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 반란이다.

○ 두보(杜甫, 712년 ~ 770년) :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중국 고대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시성(詩聖)이라 부르며, 그의 작품은 시사(詩史)라 부른다. 이백과 함께 이두(李杜)라고도 일컬으며, 정의가 없는 경제구조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시로 묘사한 민중시인이다.
755년, 당 왕조를 거의 멸망시킬 만큼 파급력이 대단했던 안사의 난이 발발한다. 이때 당의 현종이 양귀비와의 사랑에 빠져 정치를 게을리하여 국운이 쇠퇴했는데, 이런 나라의 형편을 읊은 장편 시 《영회》는 걸작으로 유명하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은 촉으로 피하고 숙종이 즉위하였다. 두보는 잠시 장안 근처 부주(鄜州)에 맡겨둔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요절한 사실을 알고 참담한 마음으로 장편시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며 회포를 읊어(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를 남겼다. 벼슬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민중들의 궁핍한 처지를 그렸으며 총체적인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위키백과에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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