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집

忠烈公 死六臣 朴彭年을 생각나게 하다

한문역사 2025. 4. 27. 10:35

사육신 중 유일하게 혈손을 둔 기막힌 事緣談

위의 병자년(1456) 禍 란 것은 바로 이 해에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서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여섯 단종충신과 그 집안

남자들은 모두 3族(본래는 父,子,孫을 뜻하는데,父系,母系,妻系를

統稱한다.)을 멸문하는 죽음을 당하고 

여성은 모두 官婢나 私婢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신분이 된다 .

박팽년의 둘째자부 성주이씨는 대구 사는 교동현감 이철근의 따님으로

박팽년家  부녀자들은 功臣에게 배분할 때  처음엔 外戚인

이조참판 具致寬에게

(세조때 신숙주를 뒤이어 영의정을 지내고 한명회에게 물려준다)

배분되었으나  이씨부인은 친정이 있는 대구 관비가 되길 自請하여

대구로 내려온다.이때  뜻밖의 기적이 일어난다.

사육신 중 유일하게  朴彭年家 만이 血孫을 잇게 되는데

둘째 자부가  친정이 있는 대구관아의 관비를 자청하여 대구친정에 오고

그때  임신 중인데,  天佑神助 인양  기적이 일어났다.

마침 친정집 여종도 임신하여 같은 달에 함께 출산을

하는데 박팽년의 둘째 자부는 遺腹子인 아들을 낳고

여종은 여아를 낳는데, 아이 낳기전에 친정집 여종이 먼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쇤네가 만약 마님과 똑같이 아들을 낳으면 제 자식으로 대신 죽음을 받겠습니다.

國法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죽이고, 여아를 낳으면 官婢로 삼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한 달에 解産하는데 성주이씨는 아들을 낳고 친정집 여종은 딸을 낳아

서로 바꿔서 몸종은 박비를 몰래 기른다..박팽년의 자부는 아이 이름을 朴婢

즉 박씨성을 가진 여자종,이라 하고 바꿔 키운다. 박비가  17세때 외가인

대구 하빈 묘골에서 당시 姨母夫되는 경상감사 李 克均(廣州李氏)이 처가로

와서 장인으로 부터 그간의  사정을 듣고 관가에 자수하라 일러주고,박비는

한양가서 자수하니 그 당시 성종이 아이의 죄를 사면하고 壹珊(일산)

뜻:넓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珊瑚같이 귀한 옥구슬) 이라 이름을

지어주고  이로부터 후손을 잇게 되는 기막힌 사연이 있었어라.

이때 부터  朴婢는 罪人 아닌 良民 朴壹珊 으로 다시 태어난다.

1대 혈손 壹珊(일산)이 獨子이고, 2대  連孫(연손)도 獨子이고,

3대에 와서 繼昌과 必鍾 형제를  낳아  후손이 번성을 하게 된다.

충절의 고장 대구 하빈 묘동에 六臣祠가 세워져있다.내 두 번 갔었다.

順天朴氏 忠烈公派 門中會館도 대구 달구벌대로 계명대역 인근에 있다.

내 이 자리에서 한번 써 본다 , 冊:사육신 박팽년과 묘골 :에서 인용하다.

 此史知後幾多鳴이라 題를 짓고

이 역사를 알고 난 뒤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하고 내 써 본다..

대구 달성 하빈면 묘골마을 가는 왼쪽 산자락엔 丙子被禍로 화를 입고

죽은  박팽년의 2子  박순의 衣冠과 부인 이씨가 합장된 묘가 있다.

묘비엔 進士順天朴公諱珣之墓라 새겨져 잇다.

박순의 衣冠을 함께 묻은 부인 이씨의 합장묘 아래엔 순의 아들이요 ,

박팽년의 손자인 묘골의 입향조가 되는 朴壹珊의 묘가 있다.

또 효종실록에 세조가 말하길

:朴彭年 등은 當代엔 亂臣이요, 後代엔 忠臣 이라:고 말했다고 쓰여있다.

                       2025.4.24.아침 6시 17분. 구 본훈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