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退溪先生 제16대 宗孫 故 李根必 翁 他界談(2024-4-1)

한문역사 2025. 5. 25. 09:26

퇴계선생 제 16대 宗孫 李根必(1932.4.10~2024.3.7) 翁께서 지난

2024년 3월 7일 영남대병원에서 향년 92세에 숙환으로 타계하여 고향

안동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운영하고 3월11일 家族葬으로 도산의 종택

인근   先山에 葬事하였다. 故人의 字는 聖幼이고 號는 靑霞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제물포高 한문교사를  재직하다가 고향 안동의 도산초등학교에

전임하여 교장으로 퇴임한 후 종가를 지키며 막중한 종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진력했으며 국립공주사대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李致億 차종손 등 1남3녀를 두었다.

고인은 生前에 歲拜오는 사람들에게 퇴계선생의 영정이 도안된 1,000원 신권지폐를

세배 기념으로  나누어 주고, 종택을 방문하는 남녀노소  손님들에게 자필 휘호

造福(뜻:스스로 복을 만들자 )을 방문 기념으로 나누어 주는 등 누구에게나 소탈하게

정감을 나누고 親切과 謙遜이 체질화되어 있다는  世評을 받아왔다.

특히 不遷位 宗家를 중심으로  하는 儒家의 전통의례를 간소화하는데 솔선수범을 

보이고 ,퇴계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퇴계선생의 선비정신을 전승하기 위하여

2001년 11월 종택의 인근에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

2019년 4월 부터 隱惡揚善運動(뜻: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점은 널리 알리기)

캠패인을 主唱하여 儒林의 큰 호응과 성원을 받기도 하였다. 

이근필 옹의 訃告를 接한 孔子 제79대 嫡長孫  孔垂長 선생은 조문을 보내왔으며

빈소와 종택 및 장지에는 수많은 弔花 , 輓詞,輓狀,永訣文과 追慕의 글이 답지하고

장례절차에 따른 分定表, 와 文爬錄이 게첨되고 宗宅에는 여막(廬幕)이 설치되었다.

종택 앞에서부터   안동상여소리보존회가 마련한  喪輿(상여)로 運柩(운구)하면서 ,

종택과   도산선비문화수련원에서 노제(路祭)를 행하고,상여를 선도한  先소리꾼의

故人의 一生과 遺德을 기리고 ,遺志와 遺訓을 깨우치며,인생의 喜怒哀樂을  함축한

先소리에 모처럼 유가의 전통장사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지역 儒林의 일부에서는  :한국 유림의 상징적 인물인 퇴계종손 이근필 옹의 장례는

先代 故 李 東恩 宗孫과 같이  儒林葬(유림장)으로 했어야 마땅했다:라고 아쉬움을 

吐露하기도 하였으나  문중의 한 인사는 :고인께서 생전에 검소하고 겸손한 생활과

儒家儀禮의  간소화를 수범으로 실천한 사레를 본받아 가족장을 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삼가  고 이 근필  퇴계선생  제16대 종손의 명복을 빕니다.

 

-공자 제79대 적장손 孔垂長 선생께서 보내오신 조문-

李致億先生:

哀聞令尊李根必先生之00  垂長不勝其慟

根必先生遙承退溪儒脈 恪守宗法傳統  以禮奉身.....

孔子七十九代嫡長孫 大成至聖先師奉祀官 至聖孔子基金會會長

孔垂長 (西元 二O二四年三月八日)

 

追記):퇴계선생의 平生   學而終身의 삶에 힘쓰면서 종가문화 개혁에도

힘썼다.  2011년 종손의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고 210명으로 이뤄진 

문중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종가 의결 과정을 민주화햇다.

종손께선 :제사가 간소화  되지 않으면 종가의 미래는 없다:는 신념으로 

2014년에: 퇴계종가의 不遷位 祭祀(불천위 제사)를 현대 사회에 맞춰 

초저녁에  지내는 案: 을 통과시켰다.

또한 도산선비문화수련원을 설립하고 교원,공무원, 학생,학부모등을

대상으로 선비문화체험을 통한 사회윤리 함양에 앞장서는 수련원에는

지난해 까지 누적 인원  135만여명이 거쳐 갔다.

이 과정에서 4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출입을 가능하게 해서 전국서원

다수가  여성에게도 書院祠堂을 개방하는 풍토를 일궈냈다.-끝- 본훈 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