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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運의 林慶業 將軍의 秋蓮刀와 龍泉劍 銘文 28字

한문역사 2025. 8. 23. 17:08

임경업 장군 - 추련도(秋蓮刀), 용천검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추련도(秋蓮刀)와 용천검(龍泉劍)

임경업 장군의 추련도. 이 추련도는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이 애용하였다고 전해지는 보검으로 역사적, 기술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큰 유품이며 보검의 상태 또한 양호하다.

추련도(秋蓮刀)

종 목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

명 칭 : 임경업 추련도 (林慶業 秋蓮刀)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금속공예/ 무구

수 량 : 1점

지 정 : 2009.04.10

소 재 :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385-1

시 대 : 조선시대

문 의 : 충청북도 충주시 문화예술과 043-850-5980~3

추련도는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이 애용하였다고 전해지는 보검으로 역사적, 기술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큰 유품이며 보검의 상태 또한 양호하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도신에는 명문이 있어 문화재로서 지정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크기 : 총길이 101.4cm/ 폭 6cm/ 칼날길이 86.7cm

임경업 추련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추련도는 임경업 장군의 보검으로 용천검과 추련도가 있었는데 용천검은 전쟁 시 직접 쓰던 검이었으나 6.25때 분실되었고 한다. 추련도가 남아 있는 단검이 유일한 유물로 평상시 보호용으로 애용한 보검으로 알려져 있으나 관련된 문헌은 남아있지 않다. 현재 충렬사 유물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칼과 칼집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도신은 철, 손잡이와 칼집은 목재, 목재를 고정시키는 장식은 황동과 동으로 되어 있다. 또한 칼 코 등을 얇은 철판으로 제작도어 있으며, 그 위에 주석·납으로 합금하여 도금하였다. 도신 좌우측면에 명문이 남아 있다. 보관함은 후대에 제작한 것이다. 秋蓮刀 라는 칼의 이름은 이 검에 새겨진 싯귀에서 따온 것이다.

秋蓮 즉 가을 연꽃은 다른 연꽃이 피지 않을 때 의연하게 핀 꽃 즉 지조가 있는 대장부를 상징한다고 본다. 2005년 7월 15일부터 동년 9월 9일까지 보존처리를 실시하여 보존상태가 양호한 장시도이다. 이 秋蓮刀 양날에는 다음과 같은 검명시(劒銘詩) 28자가 새겨져 있다.

時呼 時來 否在來     一生一死 都在筵

平生 丈夫 報國心     三尺 秋蓮 磨十年

시절이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 모두 여기 있도다.

대장부 한평생 조국을 위한 마음뿐이니

석자 추련도을 십년동안 갈고 갈았도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Key=21,03000000,33

임경업(林慶業) 장군

그는 너무도 억울하게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한다.

오랑캐의 말발굽에 조국이 유린되는 것을 분기탱천한 눈으로 지켜보던 장군은

제대로된 싸움한번 못하고 만고역적 김자점의 역모로 죽었다.

(金自點 이 者는  사육신 사건을 일으킨 배신자 김질의 5대손으로 김질 덕분에

음서로 관직을 얻어 벼슬아치가 된 자로 권력을 전횡하다가 역적으로 처형된 者이다.)

임경업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뭇내 아쉬워한 민중들은 그를 무속의 장군신으로 받든다.

지금도 연평도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연평도 대동굿’이 해마다 펼쳐지는데,

여기에 임경업 장군은 조기잡이의 신으로 모셔진다. 청나라에 조선이 항복한 뒤,

잡혀가던 임경업 장군은 탈출해서 연평도 부근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바다 가운데 식량이 없어 군사들이 동요하자 근처의 가시나무를 베어다가

바다에 꽂아 놓았는데 조기떼가 가시에 많이 걸려 반찬으로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을이 막 영글어가던 10월의 어느날 충주 임경업 사당을 찾았다.

난세를 살아냈던 강직한 얼굴이 무뚝뚝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의 청량한 느낌이 꾸밈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고독했던

무인의 마음처럼 둔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임경업 초상(상). 조선 후기 제작. 임경업의 강직한 이미지가 그대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조선제일의 용맹한 장군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병자호란 당시 임경업은 의주의 백마산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청나라는 임경업 장군을 피해 우회작전을 써서 한양을 공격했다. 임경업은 청나라 군대의 진로를 차단하고 일전을 기다렸으나, 조선은 항복을 선언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전을 경험했다. 그러나 임경업은 압록강에서 철군하는 청나라의 배후를 공격하여 적의 기병 약 300기를 섬멸하고 포로로 끌려가던 양민 100여 명을 구출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청나라는 조선을 압박하여 임경업을 체포하여 심양으로 압송을 요구했다. 1642년 임경업은 체포되어 압송되던중 중 심기원(沈器遠)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의 탈출로 대신 가족이 심양으로 압송되었으며 그의 처는 심양 감옥에서 자결했다.

임경업 장군은 승려로 위장하여 양주 회암사에 숨어 지내다 1643년 한강 마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명나라에 망명하였다. 하지만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함락시키자 명의 위세는 급격히 위축되어 결국 1645년 임경업 장군은 다시 생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고 말았다. 이 때 국내에서 좌의정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에 임경업 연루설이 나돌자 인조(仁祖)는 임경업 처단을 위해 청나라에 그의 송환을 요청하였고 고문끝에 김자점의 밀명을 받은 형리(刑吏)에게 장살(杖殺)되고 말았다. 임경업 사당에는 임경업 장군이 사용했던 ‘추련도’라는 칼이 한자루 소장되어 있었다.

이 칼은 칼날이 철, 손잡이와 칼집은 목재, 목재를 고정시키는 장식은 황동과 동으로 되어 있다. 코등이는 얇은 철판, 그 위는 주석·납이 합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었기 보다는 의전 혹은 호신용의 칼이었다. 칼에는 검명시(劒銘詩) 28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여기에서 추련도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였다.

時呼 時來 否在來 一生一死 都在筵

平生 丈夫 報國心 三尺 秋蓮 磨十年

시절이여! 시절이여! 다시 오지 않을 시절이여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 모두 여기 있도다.

대장부 한평생 조국을 위한 마음뿐이니

석자 추련도를 갈고 닦은지 10년

가져온 곳 : http://wisdomgate.tistory.com/entry/혜문스님의-칼-이야기-임경업의-추련도

추련도의 X-Rey 사진

용천검(龍泉劍)

임경업(林慶業)은 광해군 10년(1618년), 25세가 되던 해에 무과에 급제하여 삼수의 방위를 위해 소농보권관이 되었다. 어느날 큰 못가를 거닐다 한 마리 용이 입에 물고 나온 단검을 얻게 되었는데, 이 칼을 기념하고자 즉석에서 '용천검(龍泉劍)'이라는 시를 읊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일제시대 일본인이 훔쳐갔다고 전해진다.

용천검 명문

三 尺 龍 泉 萬 卷 書

석자의 용천검은 만권의 서적과 같다

皇 天 生 我 意 何 如

하늘이 나를 냄은 어인 뜻인가

山 東 宰 相 山 西 將

산동에 재상나고 산서에 장수난다는데

彼 丈 夫 兮 我 丈 夫

저들이 대장부면 나 또한 대장부가 아니냐

용천검 <제주 민요>

찾던 검을 쑥 빼고 보니 난데 없는 용천의 검이라

에헤라야 데야 에헤라야 데헤라야 방애 방애로다

명년 이월 춘삼월 나면 다시 피는 꽃이로구나

에헤라야 데야 에헤라야 데헤라야 방애 방애로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서러워마라.

에헤라야 데야 에헤라야 데헤라야 방애 방애로다

가면 가고 말면 말지 초신을 신고서 시집을 가나

에헤라야 데야 에헤라야 데헤라야 방애 방애로다

가는 님 허릴 뒤담쑥 안고 가지를 말라고 낙루를 한다.

에헤라야 데야 에헤라야 데헤라야 방애 방애로다

물밀어라 돛달아라 제주 앞바다 달맞이 가자

에헤라야 데야 에헤라야 데헤라야 방애 방애로다

가져온 곳 : http://cafe.daum.net/hyunboo00/RFYq/99

용천검은 6.25때 사라졌다고 하는데..

전쟁 중에 미군이 약탈을 했거나

모든것이 그러했듯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가져갔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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