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한 글 ,문장

嗚呼, 寡人思悼世子之子也. (서기 1776.음3.10. 정조즉위년)

한문역사 2017. 10. 5. 19:53

오호, 과인사도세자지자야.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1752ㅡ1800, 재위:1776ㅡ1800))가

할아버지인  영조(1694.9.20ㅡ1776.3.5.재위 52년. 83세)의

뒤를이어 왕위에 오르면서 즉위한 그날  신하들에게 내린

첫 윤음이  바로 이 한마디였었다.

조선 21대 왕 영조에게는 정성왕후(1692ㅡ1757)와

순왕후(1745ㅡ1805)왕비 2명과

정빈이씨(1694ㅡ1721)영빈이씨(1696ㅡ1764)

귀인조씨,후궁문씨 등 후궁4명이 있었다.

왕비에게서는  후사가 없었고 후궁에게서만 2남7녀를 두었다.

정빈이씨에게서 첫아들 효장세자가 났는데 (1719ㅡ 1728)

10세로 요절하고

영빈이씨가 둘째아들 사도세자를  낳는다 (1735.1.21ㅡ1762.윤 5.21)

영조는  즉시 왕자를  중전의 양자로 들이고 원자로 삼았으며

이듬해인 영조12년 (1736)3월15일 두살에 왕세자로 책봉한다.

이렇게 元子定號와 世子柵封 모두 조선역사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다.

세자는  10세때인 1744년  홍봉한의 딸 과 혼인한다 

그녀가 혜경궁홍씨이다(1735ㅡ1815)

세자는 혼인한지 6년만에 첫아들인 懿昭世孫(1750-1752)을 낳았는데.

세살에 요절한다.

그러나 같은해 둘째아들을 낳으니 이분이 곧 정조대왕이다(1752. 9.22)

1762년 임오년 음 5월13일에 화변이 일어난다.

윤5월 13일에 영조는 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가두었다.

세자는 9일만에 뒤주속에서 세상을 뜬다 (윤5월21일)

영조는 장례를 치르고(7월23일) 즉시 세손을 동궁에 책봉한다 (8월1일)

영조는 세손을 첫째아들인 효장세자의 후사로 입적시키고

사도세자를 추숭치말라고 엄명을 내린다.

이때 세손나이 11세 생부인 사도세자의 임오화변을  똑똑히 보았다.

14년뒤인 25세에 즉위하면서 신하들에게 내린 첫 윤음이

 :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