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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愍公 林慶業 장군의 秋蓮刀, 龍泉劍에 새겨진 銘文(월간조선 2016.6월호)

한문역사 2017. 10. 8. 16:24

秋蓮刀銘文

時呼時否在來(시호시래부재래):시절이여, 때가오면 다시 오지 않나니

一生一死都在筵(일생일사도재연); 한번나고 한번죽는게 모두여기 있노라.

平生丈夫報國心(평생장부보국심); 대장부 한평생 나라위한 마음뿐이니

三尺秋蓮磨十年(삼척추련마십년); 석자 추련검을 십년동안 갈아왔노라.

 

龍泉劍銘文

三尺龍泉萬卷書(삼척용천만권서); 석자되는 용천검에 만권이나 되는 책이로다

皇天生我意何如(황천생아의하여); 황천이 나를 냈으니 그 뜻이 무엇인가

山東宰相山西將(산동재상산서장); 산 동쪽에 재상나고 산 서쪽에 장수난다

彼丈夫兮我丈夫(피장부혜아장부); 저들이 장부라면 나 또한 장부로다.

 

충민공  임경업장군(1594ㅡ1646.음 6.20)   1618년 광해군 10년에 25세에 무과급제

1623년  이괄  난을 평정후 1등공신  1646년 53세에 만고역적  김자점의  역모죄로 원통하게 杖殺되다.

1697년 숙종23년에 이르러 복권되고 시호(忠愍)가 내려진다

 

만고역적 김자점은  효종즉위년(1649) 이듬해에 영의정에서 파직되고(1650)유배후  역모를 꾀한 아들과함께 四肢切斷  斬首刑인 陵遲處斬 極刑에 처해진다  김자점은  사육신사건의 밀고자인 안동인 김질 金瓆의 고손자이다  변절자 김질은 영의정 정창손의 사위요 ,후에 좌의정에 이른다.

1726년 영조때 충북 충주에 충렬사건립

1791년 정조때 임금이 지어보낸 글을 새긴 御製達川忠烈祠碑가 세워지다.

그 옆에는 부인 이씨에게 내려진 정려비가 함께 서 잇다.

부인 이씨는  임경업장군이 명나라진영에서 청군에게 포로로 잡혀 가다가 탈출  명나라 군영으로 잠입하니

조선에 있던 부인을 심양으로 끌고가니  이때 부인 왈: 우리주인은 大明의 충신이요 나는 그 주인의 아내다

오랑캐의 옥중에서 욕을보며 남편의 충절을 욕보일수는없다 :하고는 만주땅 심양에서 自決을  하엿엇다

이에 나라에서는 그 부인에게 旌閭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