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불효자식 큰 절 올립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오지않는 우리 아버지.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체구도 작으시면서 우리 삼 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시려고 밤을 낮 삼아 일을 하셨습니다. 손은 두꺼비같이
딱딱하고 손발이 갈라지도록 몸을 아끼지 않으신 아버지셨습니다.
밥 세 끼 먹기도 힘든 시절 ,아버지께서 입으신 옷은 남이 주는
헌 옷이었지만 ,그래도 자식들 옷은 :꼭 : 새 옷을 사서 입혀
주셨습니다.동네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늦은 나이에 자식을 봐서
얼마나 좋았으면 80里 길을 걸어 미역을 사 오시냐:며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하셨답니다.그때 그 시절에는 차도 잘 다니지 않았지요.
할아버지가 어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지금은 제 고향인 김천 마을,
조씨 집성촌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씨 성을 가진 아버지는 조씨
집성촌에서 적응하기 위해 이웃과 다툼도 많으셨습니다.
정착해 잘 살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고생은
우리 말로 할 수 없고 그렇게 고생해 힘들게 얻은 아들이 저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어린 시절부터 저는 커서 성공하여
꼭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 어릴 적 소원은 아버지께 천 원짜리 한 자루를 갖다 드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제는 드리지 못하지만 ,: 아버지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걱정마세요.:아버지는 큰 아들 공부 많이 못 시켜서 고생한다
고 항상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 저는 고등학교,대학교,
대학원도 나왔으니 걱정 마세요, 미안해 마세요: 라고 말했죠.
사랑하는 아버지.우직하고 강직한 아버지에게 삶의 가치를 배우고
누구보다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제가 키도 작고 몸도 약하고,많이 못 배웠다고 장가를 가지
못할까 봐 항상 걱정하셨죠.그래도 친구중에 제일 빠르게 결혼도
했고, 멋진 배우자와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계실 적에 며느리 좋다고 그렇게나 동네방네 자랑하시던
모습이 어제 같습니다.어느 겨울 눈이 오던 날,대구에서 며느리가
온다고 눈 쌓인 길을 1km나 쓸어 주시던 아버지의 든든하고 멋진
모습이 추워지니 더욱더 그리워집니다. 경운기 사고를 내고 겁이
나서 떨고 있는 저를 찾아와서 :괜찮다: 며 어깨를 두드려 주신
언제나 내 편이던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야 알앗습니다. 힘들고 슬픈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우신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가슴 속 저미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어느듯 아버지가 떠나시고 철 없는 아들, 이제야 힘차게 아버지를
불러본답니다. 아버지! 아버지!
살아생전에 조금만 더 잘해 드렸드라면 ...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뭘 하겟습니까. 불효자식 용서해 주십시요.
불효자식은 이제야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울 아버지가 최고 멋있는
사람이란 것을. 부디 좋은 곳에서 아픔이 없고 편견이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십시요. 더 좋은 아들이 되도록 열심히 살겟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큰아들 올림
이태원씨의 아버지 故 이팔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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