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藥泉 남구만의 慶州贈泰天上人

한문역사 2025. 3. 31. 14:32

藥泉(약천) 南九萬선생시 慶州贈泰天上人(경주증태천상인)

慶州贈泰天上人(경주증태천상인)

                    -경주에서 태천 상인에게 보냄

                  藥泉(약천) 南九萬

我如流水無歸去 (아여류수무귀거)

나는 흐르는 물과 같아 돌아올 수 없지만

爾似浮雲任往還 (이사부운임왕환)

너는 뜬 구름과 같아서 오갈 수 있네

旅館相逢春欲暮 (여관상봉춘욕모)

너와 나 여관에서 만났건만 봄은 저물고

刺桐花落滿庭斑 (자동화락만정반)

뜰에는 엄나무꽃 떨어져 가득하네.

 

*爾=너 이.

*刺桐花(찌를자.오동나무동.꽃화)=음나무는 엄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의보감》, 《역어유해》, 《물명고》 등 옛 문헌에는 ‘엄나모’라고 기록되어 있고,

옥편과 국어사전에는 엄나무라고 표기한다.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엄나무가 모양새의 특징을 더 잘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식물표준목록에는 음나무가 올바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옛사람들은 오동나무 잎과 비슷한데 가시가 있다는 뜻으로 자동(刺桐)이라 했다.

다른 이름인 해동목(海桐木) 역시 오동나무 잎을 비유한 이름이다.

키 20미터, 줄기둘레가 두세 아름에 이를 수 있으며 자람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음나무 껍질은 해동피(海桐皮)라고 알려진 약재다.

《동의보감》에는 “허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과 마비되고 아픈 것을 낫게 한다.

적백이질, 중악과 곽란, 감닉, 옴, 버짐, 치통 및 눈에 피가 진 것 등을 낫게 하며 풍증을 없앤다”라고 했다.

 

원문출처=(大東詩選 卷5)

我如流水無歸去 爾似浮雲任往還 旅館相逢春欲暮 刺桐花落滿庭斑 

경주에서 태천 상인에게 주다 (慶州贈泰天上人)

나는 흐르는 물 같아 돌아갈 수 없는데 그대는 뜬구름 같아 마음대로 오고가네.

여관에서 서로 만나니 봄이 저물려는데 자동화가 떨어져 뜰에 가득히 아롱져 있네.


南九萬 (1629 ~ 1711. 朝鮮 後期 文臣. 領議政. 本貫 宜寧. 子 雲路, 號 藥泉. 諡號 文忠)

남구만(南九萬,1629,인조7∼1711,숙종37)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운로(雲路)이고 호는 약천(藥泉)이며 본관은 의령이고

결성(結城) 출신으로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1656년(효종7) 문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고, 이듬해 사서, 정언, 다음해 지평, 이조좌랑을 거쳐,

1659년 홍문록에 오르고 교리, 이조정랑이 되었다. 1661년(현종2) 헌납,

이듬해 양남 진휼어사, 수찬, 응교, 다음해 집의, 사간을 지내고,

1664년 동부승지, 대사간, 1667년 형조․병조참의,

이듬해 안변부사, 우승지, 1669년 이조참의, 대사성이 되었다.

이듬해 청주목사, 1671년 함경감사가 되고, 1674년(숙종 즉위) 이조․형조참판을 거쳐,

1678년(숙종4) 형조판서, 이듬해 한성좌윤을 지내고, 남인을 탄핵하다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도승지, 대제학, 1682년 병조판서로 소론의 영수가 되었으며,

1684년 우의정, 이듬해 사은사로 북경을 다녀와, 좌의정, 1687년 영의정에 올랐다.

1688년 경흥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694에 영의정, 1696년 영중추부사,

1699년 용인으로 낙향했다. 1701년 장희빈에게 가벼운 처벌을 주장하다가

이듬해 아산에 유배되어 곧 풀려났다.

 

이 시도 1662년 양남 진휼어사로 영남에 내려갔을 때 지은 칠언절구로 산(刪)운이다.

<약천집(藥泉集)>에는 제목 뒤에 병소서(幷小序)를 붙여 이렇게 썼다.

“태천스님이 경자년(1660)에 다시 나를 서울로 방문하였다. 이제 월성에 이르자,

스님이 또 울산의 원원사에서 방문해 왔으므로, 그의 간곡한 뜻에 감사하여 관아에서

문서를 처리하는 여가에 절구 한 수를 써서 주었다.

(南九萬, 藥泉集 卷1. 天師於庚子歲 再訪余於京中 今到月城 師又自蔚山遠願寺來訪

感其勤意 簿牒之餘 聊書一絶以贈.)” 이로보아 이 시는 경주의 관아에서 태천 스님에게

지어 준 것임을 알 수 있다. 기구는 자신의 처지다. 자신을 물에다 비유하여 한번 흐르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승구는 스님의 형편이다. 나의 처지에 비하여 스님은

구름처럼 매인 바 없이 마음대로 왕래한다고 했다. 대구법을 써서 스님과 벼슬아치의

다른 처지를 대조하였다. 전구는 서로 만남이다. 2년 전에 두 번째 만난 적이 있었던

태천 스님이 또 울산에서 찾아와 늦봄에 여관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결구는 뜰의 풍경이다.

늦봄에 피는 약용식물 자동화(刺桐花) 곧 엄나무 꽃이 뜰에 가득히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30년이 지나야 핀다는 엄나무 꽃으로 자신과 스님의 묵은 인연을 은근히 함축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