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七支刀

한문역사 2025. 3. 31. 14:17

칠지도는 4세기경 백제가 일본 왕에게 보낸 철로 만든 검이다.

검의 양 옆으로 6개의 가지가 뻗어 있어 칠지도라고 부른다.

현재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 중이다

. 74.9cm의 양옆으로 모두 6개의 가지가 뻗은 철제 칼 표면(앞면)에

35자, 이면(뒷면)에 27자 등 총 63자의 금상감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명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근초고왕이 일본 왕세자 응신왕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철제 검 표면에 명문을 새긴 점 등 백제의 뛰어난 철제 기술을 반영하고

있는 문화재다.

백제가 일본으로 보낸 칠지도

칠지도(七枝刀)는 4세기경 백제에서 왜국으로 보낸 철로 만든 검이다.

명칭은 도(刀)지만 검이 맞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도는 외날에 곡선이며

자루가 긴 반면, 검은 양날에 직선이며 자루가 짧은 병기를 일컫는다.

현재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 중이다.

74.9cm의 양옆으로 모두 6개의 가지가 뻗은 철제 칼 표면(앞면)에 35자,

이면(뒷면)에 27자 등 총 63자의 금상감 명문이 새겨져 있다. 

 

칠지도를 둘러싼 임나일본부설 갈등

칠지도(사진출처:국립부여박물관)

 

명문(銘文)의 해석을 둘러싸고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서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해석 문제는 광개토왕릉비와 더불어 임나일본부설의 실재 여부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칠지도 제작자와 목적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먼저 백제왕이 왜왕에게 바친 것이라는 설,

둘째,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했다는 설,

셋째, 동진왕이 백제를 통해 왜왕에게 하사했다는 설,

넷째, 대등한 관계에서 백제왕이 왜왕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설 등이 있다.

이중 첫 번째 설은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일본서기』 신공기(神功記)에는 “신공황후가 왜국을 섭정한지 52년 가을

9월 정묘 삭 십일에 백제에 갔던 천웅장언(千熊長彦)이 왜국으로 귀국했다.

이때 백제왕은 백제 사신에게 칠지도 일구(一口)와 칠자경(七子鏡)

일면(一面) 등을 보내 황태후에게 헌상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국내 기록에는 칠지도와 관계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앞뒤 명문으로 보아 근초고왕이 응신왕에게 보낸 것 

칠지도(사진출처:국립부여박물관)

 

칠지도 표면에 상감된 명문의 내용은

“泰[和] 四年 十一月十六日 丙午 正陽 造百鍊鐵七支刀 [出]辟百兵 宜 供供侯王□□□□作”

으로 태[화] 4년 11월 16일 병오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중국 연호에 태화(泰和), 태화(太和), 태초(太初) 등이

있기 때문에 동진(東晉)의 태화(太和)로 추정하여 태화 4년으로 보고 있다.

태화 4년은 백제 근초고왕 24년(369)로, 이때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후면의 명문은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 爲倭王旨 造 傳示後世”으로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귀하게 성음(聖音)으로 태어났다.

그런 까닭에 왜왕 지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칠지도는 근초고왕 24년(왜 신공황후 52년)에 백제에서

제작되어 왜국 왕세자인 응신왕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인다.

 

 

곡나철산의 철을 원료로, 백련강 기술로 만들어진 칼

『일본서기』  신공황후기에는 칠지도를 만들기 위해 경기도 광주의 서북으로

7일 걸리는 곡나철산(谷那鐵山)에서 철을 가져왔다고 했다. 기록에는 이외에도

백제와 왜(倭) 간에 곡나철산의 철 공급을 위한 맹약(盟約)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다.

이를 통해 고대에는 철이 군사,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으며,

칠지도의 형태가 일반적인 검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의례용으로 제작됐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작방법 역시 명문에 의하면 백련강으로 만들어졌는데, 백련강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부터 사용된 기술로 탄소와 불순물이 많은 괴련철을 수 없이 두들겨 내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백제는 수준 높은 제철과 가공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칠지도 표면에 명문을 새기기 위한 기술 역시 뛰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금속 표면을 파내어 문양이나 명문을 표현하는 기술을 상감(象嵌)이라고 하며,

홈 내부에 다른 재료를 채워 넣은 것을 입사(入絲)라고 한다.

부가정보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중 하나로서, 경내에는 신의 사자(使者)로 알려진

아름다운 닭이 방목되고 있다. 천황이 일본을 평정하던 시기에 쓰였던 전설의 검

"후쯔노미타마노쯔루기(布都御魂剣)"가 잠들어 있다고 하는 장소를 모시면서

오랫동안 본전을 가지지 않았다. 1874년 발굴 조사 통해 칠지도가 발굴되었다.

현재는 칠지도를 보관하고 있는 곳을 본전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