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氏杏壇이란 :孟씨가 사는 은행나무 壇이 있는 집:이란 뜻이다.
忠臣家門에서 不事二君 이라 疑問 안 풀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에 있는 맹씨행단은 우리나라
살림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옛집이다. 이 古宅은 고려 말 충신
최영(1316~1388) 장군의 살림집이다 .고불 맹사성(1360~1438)이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라는 인연때문에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고려시대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民家로는 유일한 건물이다.
고불의 집안은 개성 두문동 72賢에 든 조부를 비롯해 아버지까지
고려조에서 고관을 지낸 충신가문이다.고불도 고려 우왕 12년
(1386년) 문과 殿試에서 1등장원급제 後 정8품직인 춘추관 검열을 시작
으로 조선이 개국할 때까지 벼슬살이를 했다.易姓혁명을 거부한
父祖의 뜻을 받아 그도 조선 개국과 함께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부터 그는 불사이군이라는
충절을 버리고 다시 관직에 나가 49년 동안 여러 요직을 거쳐 정승
까지 지내고 일흔아홉(79세) 天壽를 누렸다.
淸白吏로 이름이 높으며 검소한 생활로 명성을 떨쳤다. 그로 인해
남긴 逸話가 지금까지 후세에 膾炙되고 있다
그는 국문학사에 빛나는 :江湖四時歌:를 남기는 문필가로도 우뚝섰다
참고로 우리 능성구씨 족보 券一에 보면 5세조 技의 2남 1녀 中
그 1녀의 夫君이 바로 孟裕 이고 子.希道. 孫. 思誠 .左相이라 쓰여 있다.
孟裕-孟希道-孟思誠; 맹유의 부인이고, 희도의 어머니이며
思誠의 조모님이 우리 綾城具氏이시다.
최영(1316~1388)장군은 고려 우왕14년(1388) 팔도도통사가 되어
요동지역을 정벌하러 갈때 좌,우군도통사로 조민수(?~1390)와
이성계를 두었는데 이성계(1335~1408)가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여
요즘말로 항명을 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최영은 실권을 빼앗기고
체포된 뒤 처형된다 ,최영장군을 생각하면 見金如石 이란 넉 자가
생각이 난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해라:라는 뜻이다.
우리 초교 때 60여년 전 음악책에 나오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르신 어버이 뜻을 받들어
한 평생 나라위해 받치셨으니
그 이름 유명하다 최영장군 .:
이란 .童謠를 조용히 한 번 불러본다.
圖形壁上一等功臣 과 盡忠奮義佐命一等功臣,
또 安社功臣에 책록이 되었다.
장군의 딸이 우왕의 妃(寧妃)가 되니 우왕은 장군의 사위가 된다
4년 뒤인1392년 새 왕조를 세운 조선 태조 이성계는 태조 6년에
옛 상관이었던 최영에게 武愍 이란 시호를 내린다. 斬首되기 前
죽을때 남기신 말씀이: 내가 죄가 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요
죄가 없다면 무덤에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하였는데 과연 장군의
무덤위엔 풀이 나지않아 이 무덤을 赤墳(적분)이라 전해온다.
무덤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山 70-2 번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다.(1975.9.5 )
夫人 文化柳氏와 合葬墓이다.
'그외 인용문 2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의 선물 (1) | 2025.04.07 |
---|---|
팔순 맞은 어머니 (0) | 2025.04.06 |
잉꼬부부로 사는 법(25-4-6) (0) | 2025.04.06 |
顚倒夢想(25-4-6. 07:30) (0) | 2025.04.06 |
新,是日也放聲大哭(25-4-6) (0) | 2025.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