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한 글 ,문장

長壽비결(조선일보 만물상칸)

한문역사 2015. 1. 2. 20:40

국립민속박물관 3전시실에 가면

농암 이현보(1467-1555)의 가족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인 농암의 초상화(보물 872호) 와

영천이씨 문집 서화 (보물 1202호) 를 모아놓앗다.

초상화 속 일흔살 농암은 입술붉고 볼 발그레한 홍안이다.

 농암은 여든아홉(89)까지 살았다. 고조부(84세) 증조부(76) 조부(84)

외조부(93) 부친(98) 모친(85)에 농암까지 여든아홉이라

모두 장수했다. 이당시 평균수명이 서른 다섯(35) 이던 시대에

 집안 7대가 적어도 여든 안팎 수명을 누렷다.

분천獻宴圖에도 눈길이 멈춘다. 농암이 낙동강 지류 분천변에 愛日堂을 짓고

부모위해 베푼 잔치를 그렷다.

愛日은 하루를 아껴 효도한다 는 뜻이다.

농암은 일흔이 넘도록 부모앞에서 때때옷입고 춤췄다.

잔치엔 동네노인은 물론 여자, 천민도 불러 대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엔 선조임금의 글씨 積善이 있다.

농암의 베푸는 마음을 기려 써 보낸 御筆이다.

농암집안 장수는 타고낫겠지만 대를 이은 德行과 孝道, 德도 클 것이다.

지금도 안동 농암종택은 노부모 모시고 오는 가족의 아침밥값을 받지 않는다.

여섯인문학자가 쓴 :노년의 풍경: 이 주말 조선일보 책 면에 실렷다.

자료를 두루 뒤져 옛노인의 삶과 지혜를 모앗다. 

 이 책에도 농암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낙향하자 임금이 끓임없이 관직 내리고 간언을 청햇다.

농암은 꿈쩍하지 않고 산과 강을 즐기며 어부가를 읊었다.

:근심 걱정 없으니 어부생활이 최고로다.

노년을 자기 뜻대로 산 그를 퇴계선생은 농암을 가리켜 늙은신선

,老仙이라 고 햇다. 

한림대 김용선 교수는 고려묘비와 문헌을 조사해

고려사람 평균수명을 마흔(40) 으로 짐작한다.

고려왕은 마흔두살(42) 승려는 일흔에 이르럿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는 (1206-1289) 여든넷(84) 이다  

잘 먹고 편히 욕망따라 사는게 장수에 이롭지 않다는 얘기다. 

조선시대도 왕 평균수명은 마흔여섯(46) 인 반면

 청백리는 예순여덟(68) 내시는 일흔(70) 이라는 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