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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漢詩 이론 : 近體詩의 形式

한문역사 2015. 3. 19. 22:08

 

漢詩 이론 : 近體詩의 形式

 

중국어에 사성이 있는 것을 착안하여 사성(四聲)의 안배에 의해 시문의 성조(聲調)를

조정하는 것이 제,량 무렵부터 강구되었다. 특히 양의 심약(沈約)은 팔병설(八病說)을

내세워 오언시를 지을 때 성률면에서 피해야만 하는 8가지는 아래와 같다.

 

평두(平頭)

한 연 가운데 상구(上句)의 첫 2자와 아랫 구의 2자가 같은 성조가

되는 것.

상미(上尾)

오언에서 상구의 끝 자와 하구(下句)의 끝 자가 같은 성조 가 되는 것.

즉 제5자와 제10자가 같은 성조가 되는 것

학슬(鶴膝)

첫째 구의 끝자(다섯번째 글자)와 세번째 구의 끝자(15 번째 글자)가

같은 성조가 되는 것.

봉요(蜂腰)

5언구의 두번째 글자와 다섯번째 글자가 같은 성조가 되는 것.

대운(大韻)

오언시 열번째 글자에 압운할 때, 다른 아홉자 가운데 같은 성조를

사용하는 것.

소운(小韻)

운각인 글자를 제외하고, 아홉자 가운데 다른 동운(同韻) 의 자를

2개 사용하는 것.

정뉴(正紐)

한 구 가운데 이성동음(異聲同音)을 사용하는 것.

방뉴(旁紐)

한 구 가운데 쌍성(雙聲)을 이루는 글자를 사용하는 것.(그러나 연속해서 쌍성을 이루는 것은 무방하나, 글자를 띠어서

쌍성을 이루는 것을 금한다)

 

 

이상의 팔병설은 처음 사용할 때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당에 들어와 고정되기 시작

하여 진자앙,두심언,심전기,송지문에 이르러 평측의 법칙이 확립되었다.

시의 형식은 오언율시에 있어서 측기(仄起)(두번째 글자가 仄字로 된 것)를 정격(正格)

으로 하는데, 그 평측의 형식은 아래와 같다.

   

 

五言律詩 仄起(正格)

 

五言律詩 平起(偏格)

首聯

頷聯

頸聯

尾聯

首聯

頷聯

頸聯

尾聯

杜甫의 旅夜書懷  (平聲尤韻)

王維의 酬張少府 (平聲侵韻)

 

七言律詩 平起(正格)

 

七言律詩 仄起(偏格)

首聯

頷聯

頸聯

尾聯

首聯

頷聯

頸聯

尾聯

杜甫의 詠懷古跡(其三)  (平聲元韻)

(이 경우도 첫째구를 압운하지 않으면

○○●●○○●이 된다)

杜甫의 登高 (平聲灰韻)

(이 경우도 첫째구를 압운하지 않으면 ●●○○○●●이 된다 )

 

 

이러한 형식의 평측은 '二四不同' 과 '二六對'가 되는 것과 두 번째 구 두 번째 자의

평측을 다음 연의 첫 째구 두 번째 자와 중복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粘法)

 

오언의 세 번째 자에 따라 아래에 운을 따르지 않을 때에는 평운(平韻)을, 따를 때에는

측운(仄韻)으로 하는 것이 상례이다. 오언은 위 2자와 아래 3자, 칠언은 위 2 2 와 아래

3으로 끊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아래 세 글자의 첫 번째 글자와 구의 끝자가 서로

반대가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반드시 이러한 법칙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도식에 따르지 않는 것을 요체(拗體)라고 말하는데, 시인에 따라서는 이러한

요체를 즐겨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율시에 있어서는 대우(對偶)가 가장 중요한데, 가운데 2연(함련(聯)과 경련(頸聯), 또는

전련(前聯)과 후련(後聯)이라고도 말한다)에 반드시 대우를 사용한다.

(단, 수련(首聯)에 대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배율은 이러한 대우를 몇 연 중복해

가는 형식을 취한다.

 

율시의 평측 법칙이 5,7언 4구의 절구(絶句)에도 사용되었다. 절구는 율시를 반으로

절단한 것으로 말하는 설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으로, 실은 한, 위, 육조의 소악부

(小樂府)(민간에서 노래되던 짧은 시형의 노래)에서 생겨난 것이다.

 

처음에는 민간 가요로 출발하여 왕왕 수수께끼의 문사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南朝

의 <子夜歌>,<讀曲歌>와 같은 염정적인 가요도 모두 4구의 단시로 되어 있었다.

 

당에 들어와 심전기와 송지문 이전에 초당사걸이 많은 절구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가령 왕발의 <蜀中九日>시는 그 대표적인 작품인데, 다만 왕발의 절구는 4구 모두

대구를 사용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초당까지는 아직 고시,율시,절구의 구별이 명확

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성당의 시인들은 절구를 지을 때 대구를 사용하지 않고 산체(散體)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절구의 평측은 율시의 전반구와 차이가 없었다.

 

오언절구 仄起(정격) 平韻

 

오언절구 平起(편격)

滿

(平聲尤韻) 王之煥의 登觀鵲樓

(平聲虞韻) 高適의 田家春望

 

5언 절구에는 측운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 때에는 세번째 구의 끝에

평성을 사용한다.

 

 

칠언절구 平起(정격)

 

칠언절구 仄起(편격)

○○

(平聲尤韻) 王昌齡의 閨怨

(平聲虞韻) 王昌齡의 芙蓉樓送辛漸

 

절구에 있어서도 '二四不同'(두번째 자와 네번째 자의 평측이 달라야 한다),

'二六對'(두번째 자와 여섯번째 자의 평측이 반대가 되어야 한다),

 

'孤平'(仄字의 사이에 平字가 한 개 끼이게 되는 것),'下三連'(아래 세 글자가 모두 평운

내지는 측운이 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압운에 있어서 율시나 절구 모두 5언의 첫번 째 글자는 압운하지 않으나 칠언의 경우는

첫구도 압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운서(韻書)의 편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수(隋)의 육법언(陸法言)이 먼저

절운(切韻)을 편찬하였는데, 당 천보 말년에 손면()이 당운(唐韻)을 편찬하면서 완전히

육운(陸韻)에 의거하였다. 송에 이르러 당운을 수정한 광운(廣韻)이 편찬되었지만 같은

206운으로 분류하고 있다.

 

송의 경우(景祐) 년간에 예부운략(禮部韻略)이 출간되어 고운(古韻)의 통용을 논하였고,

금대(金代)에 평수(平水)의 왕문욱(王文郁)이 그 통용을 합쳐서 107부로 정리하였고,

남송(南宋)의 류연(劉淵)이 이것을 계승하여 임자예부운략(壬子禮部韻略)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하는 평수운(平水韻)이다.

 

원대(元代)에 이르러 음시부(陰時夫)가

평수운(平水韻)을 다시 운부군옥백육운(韻府群玉百六韻)이라는 이름으로 고치니 이것이

후일 시운(詩韻)의 모범이 되었다.(당에는 206운의 통용을 허용하였다)

 

이상과 같이 하여 율시와 절구의 근체 형식이 확립되었다. 율시와 장율은 원래 궁정

문학으로 생겨난 것이고, 절구는 민간가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어떤 때에는 시인이

민간 가요의 곡에 맞추어 시를 짓고, 어떤 때에는 시인이 지은 절구가 민간의 곡에

맞추어 노래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율시와 절구는 그 발생의 기반이 다른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근체의 성률에 구속되는 것을 피하고, 자유스러운 표현을 추구한

시인들도 있었다. 근체의 형식에 따르지 않는 것을 고시(古詩)라고 말한다.

이백과 같은 사람은 오히려 이러한 고시의 창작을 통하여 놀랄만한 재주를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겠다.

 

이 고시의 평측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율법(律法)을 따르지 않고 근체의

법에서 벗어난 것으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근체(近體) 성립 이전의 한, 위, 초당의 시는 물론 금일의 시 가운데 근체의

법칙에 따르지 않는 시는 모두 고시라고 부를 수 있겠다.

출처 : 漢詩 속으로
글쓴이 : 雪中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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