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한 글 ,문장

조선의 명필 양사언(1517ㅡ1584)과 그 부모사이에 있은 이야기

한문역사 2015. 12. 3. 21:13

함경도 지방고을 수령으로 산천유람을 하던 단정한 선비 楊希洙(本:淸州)는

말을 타고서 함경도 안변지방을 다니다가 우연히 농사꾼의 집에 들른다. 

 혼자 집을 지키던 열세살짜리  어여쁜  娘子가  뜻밖의 정갈한 솜씨로

식사대접을 하자  감탄한 양희수는 청. 홍 부채 두 자루를 주며

: 이 쥘부채를 너에게 채단( 혼례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주는 청.홍비단) 으로

주려는데 받겠느냐? 하고 농담을  건넨다.

 

2년뒤 소녀의 아비가 양희수를 찾아와 딸이 폐백을 받았으니

 정혼한것과 다름없다고 고집하며 양희수의 소실이 되기를 자청한다고 말한다. .

양희수의 小室로 들어 온 안변낭자는 슬기롭게 집안을 꾸려 나갔고

아들 둘  .士彦,士奇을 잇따라 낳으니

이 중 첫째가 조선의 4대 명필중  한명인  蓬萊  양사언이다.

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유명한 시조를  남기셨다.   

 안변 낭자는 양희수가 병으로 죽자 棺 앞에서 自決하면서

문중 어른과 전처소생인 첫째 士俊에게 嫡.庶 차별을 없애달라고 간청.

 사준(1546년), 사언(1546년)은 같은해에,

사기(1553년)는 7년 뒤에 문과급제하니

 세상 사람들은  양사언,양사기가  서자출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엿다.

 그 어머니는 宋環貞의 따님이시다.

또 금강산 만폭동 너럭바위 에  새겨진 八大字

 :蓬萊楓嶽. 元化洞天 :.글씨는   양사언의  필체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