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되면
선교장과 강릉 일대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은
봄을 시샘하는 폭설(暴雪)이다.
어떤 때는 어깨까지 차오도록 내려서
깊은 눈 속을 헤엄치듯 다니기도 한다.
안채 뒷산 무성한 대나무가 폭설에 눌려 지붕을 덮으면
행여나 용마루 기왓장이 무너져 흘러내릴까 싶어
장대를 높이 휘두르며 눈을 털어내기 바쁘다.
밤새 내린 폭설에 마당과 앞뜰 벌판은
솜이불을 덮은 듯 온통 새하얀 눈 세상으로 변해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그 모습에
몸과 마음도 환하게 맑아져 간다.
눈 내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워
밤새도록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야속하기도 했다.
눈이 오면 아이들과 강아지가 제일 좋아라하지만
내 마음 역시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흰 눈으로 덮인 마당길에서
:찹쌀떡이나 메밀묵사~려:하는 처량한 그 목소리
누벼 입은 국방색 점퍼에 검은 교모(校帽)
손뜨개질한 목도리로 목과 귀를 꽁꽁 싸맨 고학생(苦學生)은
시내에서 팔다 남은 찹쌀떡을 모두 팔아 치우기 위해
십리가 넘는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와
선교장 앞마당을 오가며 소리친다.
제일 먼저 큰집 대문이 열리고
선교장 대소가의 모든 문이 하나 둘 열리기 시작한다.
어느새 떡 짐을 비우는 고학생의 발길,과 손길이 분주해진다.
다시 선교장의 대문은 모두 닫히고
홀로 남은 고학생은 발길을 돌려 시내로 향한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폭설이 시작되는 선교장의 이맘때면
측은해 보인던 고학생의 뒷모습이 마음에 와 닿는다
(25.1. 30) 본훈 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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