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몽유도원도 서문 박팽년유고

한문역사 2025. 2. 26. 19:45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서문 - 박팽년/朴先生遺稿

일에는 백대(百代)를 흘러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진실로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감동시킬 만한 기괴(奇怪)한 사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토록

오랜 후대에까지 전해질 수 있겠는가. 세상에 전해 오는 도원(桃源)에 대한

옛 이야기를 시가(詩歌)로 전파된 것이 매우 많은데, 나는 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직접 보고 듣지 못하고 이와 같이 시가의 내용만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 온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해당(匪懈堂.안평대군)이 직접 지은 

꿈에 도원에서 놀았던 것을 기록한 글[夢遊桃源記]을 보여 주었는데,

그가 노닐었던 자취가 대단히 광범위하고 문장이 오묘하였다.

깊은 골짜기로부터 흘러내리는 냇물의 모습이며 여기저기 만발한

복숭아꽃의 자태는 예로부터 전해 오는 시가의 내용과 다름이 없었는데,

나도 함께 노니는 대열에 있었으니, 그 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옷깃을 여미고 감탄하기를 “이런 일도 다 있었구나. 정말 기이한 일이다.”

라고 하였다.

동진(東晉)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이며, 도화원(桃花源)이 있었다는

무릉(武陵)은 우리나라와의 거리가 만여 리나 된다. 이처럼 만 리가 넘는

바다 밖의 나라에서 그것도 수천 년 전에 다시 찾지 못하고 말았던 그곳을

찾아가 당시의 경치를 구경하였으니, 더욱 기괴한 일이 아닌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정신으로 만나면 꿈이 되고 육신으로 접하면 현실이 된다.

낮에 생각한 것을 밤에 꿈을 꾸는 것은, 정신과 육신이 함께 만난 경우이다.”

하였으니, 대저 육신이 비록 외부의 사물과 접촉하더라도 안으로 주장하는

정신이 없으면 역시 육신의 접촉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우리의 정신은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도 자립할 수 있고 사물을 기다리지

않고도 존재하여 느낌에 따라 통하고 빠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신속하여

말이나 문자로써 표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어찌 깨어 있을 때

겪은 것만이 참으로 옳고 꿈속에 겪은 것은 참으로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한바탕 꿈속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어찌 옛사람의 경치 구경은 현실이고, 지금의 경치 구경을 꿈이라 하여

옛사람만이 기괴함을 독차지하고 지금 사람은 도리어 그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구분은 옛사람도 어렵게 여겼던 일인데,

내가 어찌 감히 그 사이에 이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에 대한 글을 읽고

그 일을 상상하여 내가 평소 멀리 유람하고자 한 회포를 풀었으니,

그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비해당이 구경했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거기에 사실을 기록한 뒤, 문사(文士)들에게 시를 지어 주기를 청하면서,

나도 따라가서 놀았던 대열에 있었다는 이유로 서문을 쓰도록 명하니,

내가 감히 문장이 졸렬하다는 것으로 사양하지 못하고 우선 이와 같이 쓰는 바이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1447년(세종 29) 그린

산수화로서 현재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에 소장되어 있다. 안견의 후원자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꿈 속에 도원(桃源)을 방문한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했다.

도원은 곧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말한 것으로, 도잠(陶潛.도연명)의 도화원기

(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漁父)가

일찍이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이 찬란한 선경(仙境)을

만나 그곳에 들어가서, 일찍이 선대(先代)에 진(秦) 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들어왔다가

대대로 그곳에 살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일 후에 그곳을 떠나서

배를 얻어 타고 다시 수일 전에 갔던 길을 되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안평대군과 더불어 찬문(讚文)을 남긴 인물은 신숙주,이개,하연,송처관,김담,고득종,

강석덕, 정인지,박연,김종서,이적,최항,박팽년,윤자운,이예,이현로,서거정,성삼문,

김수온,만우,최수등으로 모두 안평대군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몽유도원도」그림과 이들의 시문(詩文)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구현했고

조선 초기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