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왜란때 포로로 끌려간 조인인들을
송환해 오기 위하여 1604년 왕의 國書를 갖고 영의정 직을 제수받아
일본으로 간 사명당(1544~1610)과 德川幕府 도꾸까와 이에야스(1543~1616)
간에 주고 받은 시 랍니다.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송환해 옵니다.
:도꾸까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물음시:
石上難生草(석상난생초):
돌 위에서는 풀이 나기 어렵고
房中難起雲(방중난기운):
방 안에서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려운데
汝爾何山鳥(여이하산조):
너는 어느산에 사는 새이기에
來參鳳凰群(내참봉황군):
봉황의 무리에 와서 끼어들려고 하느냐.
四溟堂(1544~1610)의 對答詩
我本靑山鶴(아본청산학):
내 본래 청산에 사는 학인데
常遊五色雲(상유오색운):
늘 오색 구름속에서 놀았다오.
一朝雲霧盡(일조운무진):
하루 아침에 구름,안개가 없어져
誤落野鷄群(오락야계군):
잘못하여 들닭무리속에 떨어졌다오 -끝-
경남 밀양 표충사에 서 있는 사명당 碑文엔
사명당의 切親 (許筬, 許篈)의 아우되는 許筠이 지었는데
비문중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三日公行(삼일공행):(公:영의정 직)
3일여간 영의정 직을 행 한것은
不逆君命(불역군명):
임금(선조)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고
夜半歸山(야반귀산):
밤중에 산으로 돌아온 것은
不負師訓 (불부사훈):
스승(서산대사)의 가르침을 질 수가 없었노라.
이런 이야기가 비문에 쓰여 있습니다.
위에 나오는 허성은 임란직전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 온
正使 黃允吉, 副使 金誠一, 書狀官 許筬
3인 중의 그 許筬 이십니다.
허균(1569~1618)은 문과 重試에 1등 장원급제를 합니다.
순한글소설인 洪吉童傳을 짓습니다.
광해군때 천하에 奸臣 이이첨의 모함으로 역모혐의 大逆罪로
陵遲處斬 刑을 받아 돌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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