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인용문 2집

비 내리는 고모역

한문역사 2025. 3. 14. 07:27

비 내리는 고모령.

 

유   호 작사.

박시춘 작곡.

 

 

어머님의 손을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든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런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 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현인 선생님 부르다.

 

 

 

 

 

 

 

송도해수욕장 현인광장.

(출처) ... 현인 / 두산백과.

 

 

 

 

고모역(顧母驛)은 경부선의 철도역이다.

 

1925년에 영업을 시작했으며 2004년 7월 15일에 여객 취급이 중단되었고,

 2006년 11월 1일에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외부에 망을 설치하여 일반인도 접근할 수 없다.

 

고모역 앞으로는 수성2번만 운행되고 있다.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에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모역 선로 옆으로는  부산역 방향 경부고속철도 전용 선로가 나란히 있지만,

동대구역에 바로 고속 연결선이 있기 때문에 고모역은 분기역이 아니다.

 

  • 1925년 11월 1일: 영업 개시
  • 1935년 6월 5일: 보통역으로 승격
  • 149년 11월 12일: 역사전소로 소화물차를 임시역사로 사용
  • 1957년 9월 29일: 현재의 역사 준공
  • 1977년 5월 16일: 소화물 취급중지
  • 2003년 7월 29일: 전자연동장치 설치. 구내모양 변경
  • 2004년 7월 15일: 여객취급 중단
  • 2006년 11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현인이 부른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노래의 배경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 곳이 진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설을 비롯해 유래에 대해 여러 일화가 전한다.

 

발표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경상북도 경산군이었으며, 인근에는 경부선 철도역인 고모역이 있다.

가사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슬픈 내용으로 시작하여,

고모령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화자가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래 속의 고모령은 한 맺힌 이별의 장소로 그려지며 "눈물 어린 인생고개"로 은유되기도 한다.

 

이 곡은 "어머니의 존재를 녹여 당시 대중들의 가슴을 울"린 민중적인 노래였다는 해석이 있다.

스스로를 "망향초 신세"라 자조하면서 비통하게 향수를 달래는 내용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격동기의 시대 상황과 잘 어우러졌고, 이후 오랫동안 애창되었다.

1969년에는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에 방송 20돌을 맞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를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제〉와 〈찔레꽃〉에 이어

전체 순위 3위를 차지하여 꾸준한 인기를 입증했다.

2001년에는 노래의 무대인 고모령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앞면에는 노래의 가사가, 뒷면에는 이 노래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향한 영원한 사모곡(思母曲)으로 널리 애창되기를 바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위키백과에서.

 

 

 

 

 

 고모역의 낮달.


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 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강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럴듯하게
꾸며 주는 유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 문인수.

 

 

.

.

.

 

 

 

 

 

고모역 출입문 옆에 세워진 비. 

 

 

 

 

 

 

 

 

 

 

 

 

 

 

 

 

 

 

 

 

 

 

 

                              ... 박해수 짓고 류영희 쓰다.

 

 

 

 

                              박 시인이 대학 가요제 대상곡인 높은음자리가 부른

                              저 바다에 누워가 내 싯말이요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참 섭섭했다고 했다.

비 내리는 고모령.

 

유   호 작사.

박시춘 작곡.

 

 

어머님의 손을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든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런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 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현인 선생님 부르다.

 

 

 

 

 

 

 

송도해수욕장 현인광장.

(출처) ... 현인 / 두산백과.

 

 

 

 

고모역(顧母驛)은 경부선의 철도역이다.

 

1925년에 영업을 시작했으며 2004년 7월 15일에 여객 취급이 중단되었고,

 2006년 11월 1일에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외부에 망을 설치하여 일반인도 접근할 수 없다.

 

고모역 앞으로는 수성2번만 운행되고 있다.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에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모역 선로 옆으로는  부산역 방향 경부고속철도 전용 선로가 나란히 있지만,

동대구역에 바로 고속 연결선이 있기 때문에 고모역은 분기역이 아니다.

 

  • 1925년 11월 1일: 영업 개시
  • 1935년 6월 5일: 보통역으로 승격
  • 149년 11월 12일: 역사전소로 소화물차를 임시역사로 사용
  • 1957년 9월 29일: 현재의 역사 준공
  • 1977년 5월 16일: 소화물 취급중지
  • 2003년 7월 29일: 전자연동장치 설치. 구내모양 변경
  • 2004년 7월 15일: 여객취급 중단
  • 2006년 11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현인이 부른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노래의 배경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 곳이 진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설을 비롯해 유래에 대해 여러 일화가 전한다.

 

발표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경상북도 경산군이었으며, 인근에는 경부선 철도역인 고모역이 있다.

가사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슬픈 내용으로 시작하여,

고모령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화자가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래 속의 고모령은 한 맺힌 이별의 장소로 그려지며 "눈물 어린 인생고개"로 은유되기도 한다.

 

이 곡은 "어머니의 존재를 녹여 당시 대중들의 가슴을 울"린 민중적인 노래였다는 해석이 있다.

스스로를 "망향초 신세"라 자조하면서 비통하게 향수를 달래는 내용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격동기의 시대 상황과 잘 어우러졌고, 이후 오랫동안 애창되었다.

1969년에는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에 방송 20돌을 맞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를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제〉와 〈찔레꽃〉에 이어

전체 순위 3위를 차지하여 꾸준한 인기를 입증했다.

2001년에는 노래의 무대인 고모령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앞면에는 노래의 가사가, 뒷면에는 이 노래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향한 영원한 사모곡(思母曲)으로 널리 애창되기를 바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위키백과에서.

 

 

 

 

 

 고모역의 낮달.


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 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강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럴듯하게
꾸며 주는 유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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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역 출입문 옆에 세워진 비. 

 

 

 

 

 

 

 

 

 

 

 

 

 

 

 

 

 

 

 

 

 

 

 

                              ... 박해수 짓고 류영희 쓰다.

 

 

 

 

                              박 시인이 대학 가요제 대상곡인 높은음자리가 부른

                              저 바다에 누워가 내 싯말이요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참 섭섭했다고 했다.

비 내리는 고모령.

 

유   호 작사.

박시춘 작곡.

 

 

어머님의 손을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든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런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 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현인 선생님 부르다.

 

 

 

 

 

 

 

송도해수욕장 현인광장.

(출처) ... 현인 / 두산백과.

 

 

 

 

고모역(顧母驛)은 경부선의 철도역이다.

 

1925년에 영업을 시작했으며 2004년 7월 15일에 여객 취급이 중단되었고,

 2006년 11월 1일에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외부에 망을 설치하여 일반인도 접근할 수 없다.

 

고모역 앞으로는 수성2번만 운행되고 있다.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에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모역 선로 옆으로는  부산역 방향 경부고속철도 전용 선로가 나란히 있지만,

동대구역에 바로 고속 연결선이 있기 때문에 고모역은 분기역이 아니다.

 

  • 1925년 11월 1일: 영업 개시
  • 1935년 6월 5일: 보통역으로 승격
  • 149년 11월 12일: 역사전소로 소화물차를 임시역사로 사용
  • 1957년 9월 29일: 현재의 역사 준공
  • 1977년 5월 16일: 소화물 취급중지
  • 2003년 7월 29일: 전자연동장치 설치. 구내모양 변경
  • 2004년 7월 15일: 여객취급 중단
  • 2006년 11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현인이 부른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노래의 배경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 곳이 진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설을 비롯해 유래에 대해 여러 일화가 전한다.

 

발표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경상북도 경산군이었으며, 인근에는 경부선 철도역인 고모역이 있다.

가사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슬픈 내용으로 시작하여,

고모령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화자가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래 속의 고모령은 한 맺힌 이별의 장소로 그려지며 "눈물 어린 인생고개"로 은유되기도 한다.

 

이 곡은 "어머니의 존재를 녹여 당시 대중들의 가슴을 울"린 민중적인 노래였다는 해석이 있다.

스스로를 "망향초 신세"라 자조하면서 비통하게 향수를 달래는 내용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격동기의 시대 상황과 잘 어우러졌고, 이후 오랫동안 애창되었다.

1969년에는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에 방송 20돌을 맞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를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제〉와 〈찔레꽃〉에 이어

전체 순위 3위를 차지하여 꾸준한 인기를 입증했다.

2001년에는 노래의 무대인 고모령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앞면에는 노래의 가사가, 뒷면에는 이 노래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향한 영원한 사모곡(思母曲)으로 널리 애창되기를 바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위키백과에서.

 

 

 

 

 

 고모역의 낮달.


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 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강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럴듯하게
꾸며 주는 유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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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역 출입문 옆에 세워진 비. 

 

 

 

 

 

 

 

 

 

 

 

 

 

 

 

 

 

 

 

 

 

 

 

                              ... 박해수 짓고 류영희 쓰다.

 

 

 

 

                              박 시인이 대학 가요제 대상곡인 높은음자리가 부른

                              저 바다에 누워가 내 싯말이요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참 섭섭했다고 했다.

비 내리는 고모령.

 

유   호 작사.

박시춘 작곡.

 

 

어머님의 손을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든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런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 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현인 선생님 부르다.

 

 

 

 

 

 

 

송도해수욕장 현인광장.

(출처) ... 현인 / 두산백과.

 

 

 

 

고모역(顧母驛)은 경부선의 철도역이다.

 

1925년에 영업을 시작했으며 2004년 7월 15일에 여객 취급이 중단되었고,

 2006년 11월 1일에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외부에 망을 설치하여 일반인도 접근할 수 없다.

 

고모역 앞으로는 수성2번만 운행되고 있다.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에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모역 선로 옆으로는  부산역 방향 경부고속철도 전용 선로가 나란히 있지만,

동대구역에 바로 고속 연결선이 있기 때문에 고모역은 분기역이 아니다.

 

  • 1925년 11월 1일: 영업 개시
  • 1935년 6월 5일: 보통역으로 승격
  • 149년 11월 12일: 역사전소로 소화물차를 임시역사로 사용
  • 1957년 9월 29일: 현재의 역사 준공
  • 1977년 5월 16일: 소화물 취급중지
  • 2003년 7월 29일: 전자연동장치 설치. 구내모양 변경
  • 2004년 7월 15일: 여객취급 중단
  • 2006년 11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현인이 부른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노래의 배경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 곳이 진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설을 비롯해 유래에 대해 여러 일화가 전한다.

 

발표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경상북도 경산군이었으며, 인근에는 경부선 철도역인 고모역이 있다.

가사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슬픈 내용으로 시작하여,

고모령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화자가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래 속의 고모령은 한 맺힌 이별의 장소로 그려지며 "눈물 어린 인생고개"로 은유되기도 한다.

 

이 곡은 "어머니의 존재를 녹여 당시 대중들의 가슴을 울"린 민중적인 노래였다는 해석이 있다.

스스로를 "망향초 신세"라 자조하면서 비통하게 향수를 달래는 내용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격동기의 시대 상황과 잘 어우러졌고, 이후 오랫동안 애창되었다.

1969년에는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에 방송 20돌을 맞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를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제〉와 〈찔레꽃〉에 이어

전체 순위 3위를 차지하여 꾸준한 인기를 입증했다.

2001년에는 노래의 무대인 고모령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앞면에는 노래의 가사가, 뒷면에는 이 노래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향한 영원한 사모곡(思母曲)으로 널리 애창되기를 바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위키백과에서.

 

 

 

 

 

 고모역의 낮달.


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 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강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럴듯하게
꾸며 주는 유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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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역 출입문 옆에 세워진 비. 

 

 

 

 

 

 

 

 

 

 

 

 

 

 

 

 

 

 

 

 

 

 

 

                              ... 박해수 짓고 류영희 쓰다.

 

 

 

 

                              박 시인이 대학 가요제 대상곡인 높은음자리가 부른

                              저 바다에 누워가 내 싯말이요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참 섭섭했다고 했다.

비 내리는 고모령.

 

유   호 작사.

박시춘 작곡.

 

 

어머님의 손을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든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런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 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현인 선생님 부르다.

 

 

 

 

 

 

 

송도해수욕장 현인광장.

(출처) ... 현인 / 두산백과.

 

 

 

 

고모역(顧母驛)은 경부선의 철도역이다.

 

1925년에 영업을 시작했으며 2004년 7월 15일에 여객 취급이 중단되었고,

 2006년 11월 1일에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외부에 망을 설치하여 일반인도 접근할 수 없다.

 

고모역 앞으로는 수성2번만 운행되고 있다.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에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모역 선로 옆으로는  부산역 방향 경부고속철도 전용 선로가 나란히 있지만,

동대구역에 바로 고속 연결선이 있기 때문에 고모역은 분기역이 아니다.

 

  • 1925년 11월 1일: 영업 개시
  • 1935년 6월 5일: 보통역으로 승격
  • 149년 11월 12일: 역사전소로 소화물차를 임시역사로 사용
  • 1957년 9월 29일: 현재의 역사 준공
  • 1977년 5월 16일: 소화물 취급중지
  • 2003년 7월 29일: 전자연동장치 설치. 구내모양 변경
  • 2004년 7월 15일: 여객취급 중단
  • 2006년 11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현인이 부른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노래의 배경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 곳이 진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설을 비롯해 유래에 대해 여러 일화가 전한다.

 

발표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경상북도 경산군이었으며, 인근에는 경부선 철도역인 고모역이 있다.

가사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슬픈 내용으로 시작하여,

고모령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화자가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래 속의 고모령은 한 맺힌 이별의 장소로 그려지며 "눈물 어린 인생고개"로 은유되기도 한다.

 

이 곡은 "어머니의 존재를 녹여 당시 대중들의 가슴을 울"린 민중적인 노래였다는 해석이 있다.

스스로를 "망향초 신세"라 자조하면서 비통하게 향수를 달래는 내용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격동기의 시대 상황과 잘 어우러졌고, 이후 오랫동안 애창되었다.

1969년에는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에 방송 20돌을 맞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를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제〉와 〈찔레꽃〉에 이어

전체 순위 3위를 차지하여 꾸준한 인기를 입증했다.

2001년에는 노래의 무대인 고모령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앞면에는 노래의 가사가, 뒷면에는 이 노래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향한 영원한 사모곡(思母曲)으로 널리 애창되기를 바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위키백과에서.

 

 

 

 

 

 고모역의 낮달.


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 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강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럴듯하게
꾸며 주는 유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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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역 출입문 옆에 세워진 비. 

 

 

 

 

 

 

 

 

 

 

 

 

 

 

 

 

 

 

 

 

 

 

 

                              ... 박해수 짓고 류영희 쓰다.

 

 

 

 

                              박 시인이 대학 가요제 대상곡인 높은음자리가 부른

                              저 바다에 누워가 내 싯말이요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참 섭섭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