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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萬年松亭韻 만년송정운/송은 김광수 외 3편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한문역사 2014. 4. 19. 05:45

 

 

 

 

 

 

만년송시(萬年松亭韻)

 

<萬年松亭韻 >

 

一別俎徠問幾時 * 靑香細細來詩筆  일별조래문기시 * 청향세세래시필 

栽封蒼翠萬年姿 * 殘子紛紛落硯池  재봉창취만년자 * 잔자분분낙연지 

葉密幽禽啼自在 * 昻莊獨立村園裏  엽밀유금제자재 * 앙장독립촌원리 

苔斑鱗甲老尤奇 * 不許尋常俗士知  태반린갑노우기 * 불허심상속사지

 

 

묻노니 저래산 떠나온 지 몇해련고

만년송 푸른 그루 고이고이 심었노라

맑은 향 은은하게 시축(詩軸)에 풍겨오고

송화가루 날아서 벼루에 떨어진다

푸른 잎 무성한데 새소리 한가롭고

늙은 줄기 이끼끼니 인갑(鱗甲)인양 아롱진다

은사(隱士)의 동산에 우뚝 서있으니

심상한 저 속사(俗士)야 몰라준들 어떠리

 

 

靑苔一逕隔紅塵 * 車馬縱然嫌地僻  청태일경격홍진 * 차마종연혐지벽

幽興相尋日轉新 * 鶯花曾不厭家貧 유흥상심일전신 * 앵화증불염가빈

看山坐處凉生腋 * 自喜萬年松影裏 간산좌처량생액 * 자희만년송영리

高枕眠時翠滴巾 * 四時風景屬閑人 고침면시취적건 * 사시풍경속한인

 

이끼낀 오솔길이 홍진(紅塵)에 막혔으니

그윽한 흥()을 찾아 날로 기분 새로워라

후미져 으슥한곳 차마(車馬) 어이 오랴마는

집이 가난하다 앵화(鶯花)야 싫어하랴

산을 보고 앉았으니 어깨는 서늘하고

높은 베개 잠이드니 푸른 빛이 낯을 덮네

만년송(萬年松) 그늘속에 한가로운 이몸이라

아름다운 사시풍경(四時風景) 나홀로 기뻐하리

                                                        [송은 김광수(松隱 金光粹, 1468-1563) ]

 

 

 

 

 

울타리 주변 담장 모서리 오랜 세월 서 있으니

만세토록 푸른 자태 항상 보존하여라

잎 사이 스친 바람 비 뿌리는 소리 같고

가지 사이 달 그림자 정원에서 어긋나네

푸른 빛 성한 모양 쓸쓸함을 넘어서고

맑은 향기 아름답고 멀리 보면 더욱 좋네

오늘날의 고상한 성취 사람들은 모르지만

지금도 저 노송은 넉넉히 알고 있네

 

 

                                                     [남애 김상원(1598-1687)]

 

 

 

 

  산 속에 숨어 살며 풍진세상 멀리하고

공원 속에 늙은 솔 사시로 새롭구나

높은 가지 맺은 약속 진실로 정취 이루었고

전해오는 좋은 나무 어찌 청빈을 한할 손가

긴 낮 짙은 나무 그늘 안석을 침노하고

깊은 밤 차거운 이슬 옷과 갓을 적시누나!

오늘날 후손들의 가슴 속 느낌

이웃집 사람들과 서로 말하리라

 

                                                     

                                                                  [사오 김상기(1602-1670)]

 

 

 

 

후손들은 어느 곳에 꽃다움을 즐기는가

뜰 가의 외로운 솔 스스로 새롭도다

빽빽한 잎 늘 푸르러 서리에도 변함없고

늙은 가지 성글어서 달빝이 스며있네

맑은 넋이 빛을 입어 밝게 돌아오니

그 형태 적막하여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동지섣달 품은 회포 누가 알려나

공경스런 몇 마디 말로 사람을 깨우치네

 

 

                                                                           [옥계 김상유(1605-1678)]

 

 

 

 

                                                                                                                                 사진 : 고규홍

 

 

 

 

 

 

▲ 당당한 기품의 만취당과 어우러진 사촌리 향나무의 아름다운 자태.

 

●유성룡의 외조부, 벼슬 버리고 내려와 심어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심상치 않다고 할 만큼근사한 정취가 느껴지는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안동 김씨 만취당파의 집성촌인 이 마을의 랜드마크는 김사원(金士元) 선생이 살던 고택이다. 선생의 호를 그대로 따서 만취당(晩翠堂)이라 이름한 이 집의 대청마루에 앉아 내다보면 하늘 가장자리에 걸리는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바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07호인 의성 사촌리 향나무다.

“내가 향나무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만큼 좋은 향나무는 그리 많지 않을걸요. 500살이나 된 나무가 젊은 나무 못지않게 싱싱한 데다 잘생기기도 했잖아요.”

나무 그늘에 기대어 자리 잡은 살림집에 사는 김재열(79) 노인은 가만히 선조의 얼이 담긴 나무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나무를 심고 애지중지 키운 사람은 김 노인의 방계 13대조인 조선시대 문인 김광수(金光粹, 1468~1563)다.

서애 유성룡의 외조부인 김광수는 연산군 때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살이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이 마을에서 시를 읊으며 평생을 보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그는 강가에 영귀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짓고 자연에 묻혀 안분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사촌리 향나무는 500년 전에 그가 손수 심은 여러 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오래전부터 선비들이 살던 사촌리는 여태까지 전통 가옥을 보존하고 덧붙여 몇 채의 초가를 복원해 옛 전통 선비마을의 분위기가 살아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옛날에는 아주 큰 마을이었지요. 한창 때 400가구가 넘게 살았는데 지금은 죄다 떠나고 고작 60가구만 남았어요. 천천히 돌아보면 알겠지만 옛 모습은 많이 남아 있어도 지금은 빈집 투성이예요.”

사촌리를 대표하는 만취당 역시 지금은 살림을 하지 않는 문화재로만 남았다. 살아있는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건 만취당의 기와가 도도하게 빚어낸 곡선에 맞닿은 채 당당한 기품으로 서 있는 사촌리 향나무다.

●모진 풍파 이겨내고 하늘로 치솟은 가지

사촌리 향나무는 키가 8m에 불과하고 나뭇가지도 사방으로 3m 정도 펼쳤을 뿐이다. 규모에서 결코 큰 나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옛 선비의 전통과 품격이 남아있는 마을 중심을 지키고 서 있는 나무의 기품은 여느 향나무를 훌쩍 뛰어넘는다.

나무를 스쳐 간 모진 풍파를 이겨낸 자취라도 되듯 나무는 몽실몽실 피어나는 뭉게구름처럼 올망졸망 덩어리를 이뤘다.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점잖게 뻗은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이룬 덩어리는 하늘로 솟구쳤고 저마다 끝 부분은 뾰족하게 마무리했다. 줄기 곳곳에는 가느다란 가지들을 정성껏 다듬어낸 흔적도 눈에 들어온다. 정원수로 잘 가꾸려 애쓴 옛 사람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광수가 살던 당시, 마을의 길가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소나무를 좋아한 그는 무시로 소나무 그늘을 찾았다. 더불어 그는 권세와 부귀를 좇지 않으며 소나무 그늘에 머무르는 은자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송은(松隱) 처사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새로 심고 키운 한 그루의 나무에는 ‘만년을 살아야 할 소나무’라는 뜻에서 만년송(萬年松)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가 심은 나무는 사실 향나무다. 자연에 묻혀 자연의 생명을 닮으며 살았던 그에게 향나무와 소나무를 구별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무처럼 제 본분에 만족하는 안빈낙도의 삶을 살고자 한 그에게 세상의 모든 나무는 하나로 연결된 생명이었을 뿐이다. 평생 자연을 벗했던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일생을 모범으로 삼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천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던 그의 가르침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연과 하나 되는 만물일체설의 삶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면 나뭇가지가 조금씩 부러지기도 하고 잎이  떨어져 내 집 지붕에 쌓이지요. 청소가 번거롭기야 하지만 그걸 불편하다고 할 수는 없죠. 그게 다 자랑스러운 선조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지요.”

선조들이 가꾸어 온 자연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그 정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 노인의 느릿한 말투에 사람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옛 선비의 자연주의 정신이 배어 있다. 선조의 정신을 올곧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후손들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이되 그 가운데 사람의 마음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양명학의 정신에 다가선 지혜를 닮은 생각이다.

노인의 지혜로운 말들이 사뿐히 내려앉은 나무 그늘에서는 무더기로 피어난 파란 빛깔의 제비꽃이 생명의 노래를 외장쳐 부른다. 나무와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사람의 맑은 마음을 따라 피어난 풀꽃이 빚어낸 선비마을의 늦은 봄 풍경이다.

글 사진 의성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출처 : 내고향 의성
글쓴이 : 솔방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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