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방

최영장군에 대한 이야기

한문역사 2014. 6. 8. 19:38

고려의 마지막 장군이신 최영장군 (1316ㅡ1388)아버지 최원직 으로부터

평생의 좌우명으로 듣고 실천하신 見金如石  즉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50여년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때 음악시간에 배우고 노래부른 기억이 새삼 난다.

"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르신 어버이 뜻을 받들어 ,

한평생 나라위해 바치셨으니, 그이름 유명하다 최영장군  ;

내 기억을 더듬어 한번  불러본다.

1388년 요동정벌 하러갈때 8도 도통사가 되어 좌도도통사엔 조민수 장군을

우도도통사엔 이성계 장군을 삼아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도착하여

요동벌을 치러 보냈더니 그만 이성계 일파의 위화도회군으로 인하여 

역적으로 몰려 일흔셋에 참형을 당하신 고려의 마지막 장군이시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대자산 기슭에 경기도기념물 23호로 지정관리되고 잇다.

장군의 측실소생녀가 우왕의 둘째비 영비이다

 장군의 죽음과함께 우왕과 영비도 강화도로 유배되엇고

이듬해 11월 다시 강릉으로 함께 이배되엇다가

12월 우왕이 살해되자 10여일간 곡기를 끊고 밤낮으로 곡을 하다가

 죽엇다고 전한다 여기에 장군의 묘비문을 옮겨 본다

."高麗盡忠奮義 佐命安社功臣 判密直事 大將軍  門下侍中 贊成事 六道都巡察使

鐵原府院君 諡 武愍 東州崔公 諱 瑩 之墓,   三韓國大夫人 文化柳씨 祔左  

한가지 더 쓴다.조선조 세종때 황희정승과 함께 명재상이신 맹사성 대감은

최영장군의 손녀사위 되신다

최영장군과 맹사성의 조부 孟裕는 절친한 사이로 맹유의 손자 사성을

손녀사위로 삼았다고 합니다.

또 하나 장군께서 돌아가시기전 하신말씀 " 내 평생에 단 한순간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엇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것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엇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

 라면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앗다는 장군

이후에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뒤 얼마후에 억울한 죽음을

 伸怨 해 주엇다고 합니다

또 장군의 묘에 풀이 자라지않는 묘라서 오랬동안 묘 이름을

적분(赤墳) 이라고 불럿다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잔디를 덮엇는지

어땐는지 풀이 자라고 잇습니다

일흔셋에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본훈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