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하구려(경상북도 기념물 제137호)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백하구려는 백인재 동측에서 남향을 하고 있으며
등을 북쪽 산자락에 기대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 왼편에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백하구려 안내문
이 집은 구한말(舊韓末)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애국계몽(愛國啓蒙) 및
조국 광복(光復) 운동에 몸바친 백하(白下) 김대락(金大洛, 1845~1914) 선생이
1885년에 건축한 가옥으로, 정면 8칸, 측면 5칸의 'ㅁ'자형 기와집으로
서쪽 4칸은 사랑채이고 동쪽 4칸은 중문간을 비롯한 아래채이다.
사랑채는 막돌로 쌓은 2단 기단 위에 서 있으며, 아랫단 기단은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백하구려 현판
김대락 선생은 1907년 이상룡(李相龍), 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근대적 민족교육을 위해
이곳 사랑채에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協同學校)를 설립하였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사랑채 4칸을 확장하여 임시교사(臨時校舍)로
사용하다가, 후일 가산서당(可山書堂)으로 옮겼다 한다.
김대락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독립운동 기지(基地) 마련을 위해
만주로 갔으며,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건립 때에는 고향에 있던
재산과 이집 사랑채까지 팔아 학교 건립 자금으로 제공하였다 한다.
당시 철거된 사랑채의 기단과 주춧돌 일부가 남아 있고, 현재의 사랑채 마루방 2칸은
1925년 문내(門內)의 제청(祭廳)을 옮겨다 지은 것이라 한다.
안채는 앞면이 개방된 3칸 대청을 중심으로 동쪽에 남북으로 긴 2칸 방이
놓여있고 그 앞으로 2칸 부엌이 앞채의 아랫방에 접하여 있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간소한 구조이지만 안채 대청
앞면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워 격을 높였다.
안채에서 나와 사랑채 왼편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안채 뒷편에는 작은 굴뚝이 있다.
사랑채 왼편 담장에 화려하게 피어있는
능소화가 그날은 웬지 쓸쓸해 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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