爲善被禍吾所甘心이라
"착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내 마음에 달게 여기는 바" 라는 말씀.
이는 萬古忠臣 嚴興道의 말씀으로 그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본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올때 영월부의 호장으로 있었던
관리로써 지극히 인간적인 의로써 단종을 모셨다.
그러다가 1457년 10월 24일 의금부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받고 17세의 어린나이로 단종이 숨을 거두었을때
조정에서는 동강에 던져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3족(본가 외가 처가)을 멸한다는 추상같은 어명속에서도
세아들과 단종 시신을 수습해 영월 엄씨 선산인
동을지산에 아무도 몰래 장례를 치르고
이사실을 계룡산 동학사에 있는 생육신 김시습에게 알린후
세상을 피해 행방을 감추었다.
그의 아들셋도 영월을 떠나 몸을 숨겼는데
큰아들은 문경시 산북면 내화리로 ,둘째아들은 산양면 위만리로 ,
막내는 울산으로 흩어지며 이런 이유로 영월엄씨들이
지금 문경지역에 많이 세거하게 된 연유이다.
엄흥도는 200여년이 지난 1668년에 송시열의 상소로 복관되어
그의 자손들이 등용될 수 있게 되었고 영조때 정려문이 세워지고
공조참판에 추증되고 고종때 공조판서에 추증이 되었다.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으로 단종의 시신을 장사지내려 할때
주위 사람들이 후환을 두려워해서 간곡히 말렸으나
:착한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으리다 : 라는 말을
남기셨단다. 지금도 충의각 외에 영월 창절사 ,
단종릉인 장릉 경내의 충신각 , 문경 의산서원 ,
문경 산양면 위만리의 충절사, 에서
충의공의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제향을 올리고 있으시다.
(문경문화 제94호 2012년 6월발행 80,81쪽에서 구 본 훈 옮겨적다.)
애석하게도 충의공의 생몰년대가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는다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버이 親 과 종기 癌자를 파자(破字)해보면 (0) | 2013.08.31 |
---|---|
東家食 西家宿 이야기 (0) | 2013.08.24 |
근축부모회갑 (0) | 2013.08.02 |
후편 4 (0) | 2013.07.31 |
후편3 (0) | 2013.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