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의당 한시모음

[스크랩] 진안(鎭安)으로 이사하고

한문역사 2015. 4. 4. 17:01

 

진안(鎭安)으로 이사하고

 

가난한 시골 선비의 출세가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농사를 짓고자 했지만 농사지을 땅이 없었다. 본래부터 가진 것이 없었던 터에 과거준비 때문에 더욱 생활이 어렵게 되어 그들은 고향을 떠나 진안으로 거처를 옮긴다. 남원에서도 농촌 생활이었지만 남편의 과거준비 때문에 농촌의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정신적 속박에서 벗어나 여유있는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농촌의 한가한 풍경을 노래한 여러 편의 시는 이때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제목도 긴, '남편이 산양에서 밭 몇 이랑을 사서 힘써 갈고 김매니 내 농사노래 몇 편을 지어 노래부른다(夫子於山陽買田數頃 勤力稼穡 妾作農謳數篇以歌之八首).

 

日已午日煮(일이오일자) : 한낮이 지나니 햇볕이 찌는 듯 해 

我背汗適土(아배한적토) : 내 등에서 흐르는 땀 땅을 적시네 

細討薏長畝(세토의장묘) : 잡초를 골라 뽑아 긴 이랑을 매고나니

少姑大姑饗(소고대고향) : 아가씨 시어머니 참을 내오네 

麥黍甘羹滑(맥서감갱활) : 보리밥 기장밥에 국은 맛있어 

流匙矮粒任(류시왜립임) : 숟가락에 밥을 떠서 배를 불리네 

撑鼓腹且歌(탱고복우가) : 부른 배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飽食在謹苦(포식재근고) : 배불리 먹자면 힘써서 일해야 하는 법이네

 

진안으로 이주한 뒤 생활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전과 다름없이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집안살림과 농사일, 자녀 돌보는 일에 있어서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삼의당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녀의 나이 55세가 되던 1823년이었다. 삼의당(金三宜堂)은 남원이 낳은 여류시인으로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사대부가의 여인도 아니요,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기녀도 아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전원의 풍치를 생애를 통해 260여편의 품격높은 한시와 산문으로 남겼다.

 

삼의당 김씨의 생애와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그녀의 문집인 삼의당 김부인 유고(三宜堂 金夫人 遺稿)이다. 이것은 원래 삼의당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삼의당 자신에 의해 필사되어 전해오던 것을 삼의당이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지난 1930년에 광주에서 <삼의당 김부인 유고(三宜堂 金夫人 遺稿)>가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삼의당 김부인 유고(三宜堂 金夫人 遺稿)는 순한문으로 된 2권 1책 30쪽 분량이다.  

출처 : 漢詩 속으로
글쓴이 : 巨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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