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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書白碑 이야기

한문역사 2014. 8. 1. 17:54

無書白碑라  글자하나 없는 비석이라 하니 바로 박 수량의 墓前白碑를 말한다.

박 수량 선생은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1491ㅡ1554)1513년에 진사되고

1514년에 별시 문과 乙科로 급제하여

그후 한성판윤, 호조판서등 40년간 높은 관직을 거쳣지만 64세로 별세 할때까지

집 하나 안 남기신 분으로 서울에서 고향 장성까지 운구 할려니 장례를 치룰

양식조차 없어 당시 대사헌 윤춘년의 상소로 조정에서 장례지원을 하여

고향땅에 가게 되었다. 명종임금은 이 소식을 듣고 감명받아

:박수량의 청백한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지 오래다.하고

서해에서 구한 하얀돌(白石)을 하사하면서

: 청백한 박수량의 묘비에 글을 새김은 생전의 청백을 그르칠 수도 잇으므로

비문없이 그대로 세우라:면서 그 비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 하게 하고

: 다만 그 맑은 덕을 표시하기 위해서 이름을 백비라 부르게 하라 :

 하엿다한다.집 하나 안남긴 박수량을 명종은 그후 99칸 집을 하사하고

靑白堂이라 이름지어 내려보냇는데 그만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지고

그후 장성군에서 그 터에 청백한옥을 지어 지금은 테마한옥마을로 조성

 韓屋체험을 하고잇다.

선생께선 유언으로 :묘를 크게 쓰지말고 비석도 세우지마라  :하여

자손들은 그 뜻을 따랏엇다.

그후 1805년 (순조5년)靑白守節의 貞, 愛民好與의 惠 를 따와서 貞惠라고

시호를 내리신다.감사원이 선정한 조선조 500년 청백리에 뽑힌 총 218명중

 3大 청백리로 박수량, 황희, 맹사성, 3인이 뽑혔다.

선생의 백비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 33ㅡ1에 잇으며

전남 기념물 제 198호로 지정되어잇다 .참고로 제가 갖고있는

조선조 역대 한성판윤(현,서울시장) 명부에 219대 한성판윤 박 수량 으로 쓰여잇다.

선생의 생가터에 지은 한옥집앞에는 貞惠公 莪谷 朴先生 遺墟 라고

새긴 돌이 조그만하게 서잇다.

박 수량 선생의 청백정신 새로와진다  우리모두 본 받을지어다. 具本勳 笑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