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내부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속으로 들러붙기를 애걸한다는 뜻이니
이말은 임진왜란때 당시의 선조임금은 전쟁이 발발하자 의주로 도망간다 .
곧 자신과 비빈들만이 살겠다고 조선땅을 버리고 명나라에 빌붙어서
이나라의 신민들은 아예 의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 일가족들 만이라도 목숨을 부지 할려고
애걸할려는 것을 빗댄말이다.
그런데 이 비열한 조선왕은 이내 왜적과 싸우기로 마음을 또 바꾼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명이 조선왕이 압록강을 건너오면 요동의 빈 관아에
유폐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명에 빌붙어 비빈들을 거느리며 명의 한 제후로 살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선조는 내키지 않는 전쟁을 결심하게된다.
이때에 영의정 류성룡은 노비들이 왜적의 머리를 베어서 가져오면
양민으로 돌아올수 잇게하는 免賤法을 감행한다. (1593년)
이는 곧 수많은 조선의병을 일어나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러나 선조는 이같은 기대를 철저히 외면한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고 자리가 어느정도 보전되자 생각이 달라져
전쟁영웅 제거에 들어가 육지전투의 영웅, 의병장 김덕령 을 역적모의 햇다며
혹독하게 고문해 죽이고 다음엔 이순신도 대상인물.
선조는 : 이순신은 작은 적일지라도 잡는데 성실하지 않앗고 ..
.내가 늘 의심하엿다.(선조실록 선조 29년 .1596년 6월26일)
이때 이순신을 잡아와서 한달간 처절한 고문을 받던 이순신은
겨우 목숨만 건져 저 유명한 白衣從軍을 하게된다.
후임인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1597년 한산도와 칠천도에서 연거푸 대패하여
조선수군은 궤멸하고 그 자신도 전사한다.
선조는 할 수 없이 이 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나
왕은 스스로 조선수군은 끝낫다고 판단하고 수군해체령을 내리고
이순신을 육군에 발령하기까지한다
이때 저 유명한 微臣不死 尙有十二 라는 문장의 장계를 보내게 된다
곧 한달뒤 저 유명한 명랑대첩이라는 대승을 거둔다
이 대목을 읽어면 충무공의 나라사랑이 어땠는지
그저 고개가 절로 숙여질 뿐이다.
명랑해전은 1597년 음 9월16일(양력:10.25일)에 벌어졌는데
必死卽生, 必生卽死 란 말이 이때 나왔다고 한다.
참으로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하신 말씀이리라.
또 충무공의 마지막 해전은 노량해전으로
1598년 음 11월 18일 戌時(19시ㅡ21시)에 벌어져
이튿날 午時(11시ㅡ13시) 에 끝나는데
이 해전에서 왜군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시면서 남기신 유언이
그 유명한 :싸움이 시방 급하다, 나 죽엇다는 말 하지말라.
(戰方急 愼勿言我死 라는 글귀가 새겨진 큰 비석이
남해 바닷가에 우뚝 서 잇다 충무공의 전사와 함께
왜군의 본국 철수로 6년반이 넘는 그 전쟁은 끝이난다.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캠핑카 타고 전국일주 여행하는 어느부부 (0) | 2014.09.06 |
---|---|
서애와 학봉 (조선일보 만물상 에서 옮겨보다.) (0) | 2014.09.03 |
야구경기에서 1이닝에 삼진이 4개라 (0) | 2014.08.03 |
無書白碑 이야기 (0) | 2014.08.01 |
夫無煩惱是妻賢 (0) | 2014.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