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書白碑라 글자하나 없는 비석이라 하니 바로 박 수량의 墓前白碑를 말한다.
박 수량 선생은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1491ㅡ1554)1513년에 진사되고
1514년에 별시 문과 乙科로 급제하여
그후 한성판윤, 호조판서등 40년간 높은 관직을 거쳣지만 64세로 별세 할때까지
집 하나 안 남기신 분으로 서울에서 고향 장성까지 운구 할려니 장례를 치룰
양식조차 없어 당시 대사헌 윤춘년의 상소로 조정에서 장례지원을 하여
고향땅에 가게 되었다. 명종임금은 이 소식을 듣고 감명받아
:박수량의 청백한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지 오래다.하고
서해에서 구한 하얀돌(白石)을 하사하면서
: 청백한 박수량의 묘비에 글을 새김은 생전의 청백을 그르칠 수도 잇으므로
비문없이 그대로 세우라:면서 그 비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 하게 하고
: 다만 그 맑은 덕을 표시하기 위해서 이름을 백비라 부르게 하라 :
하엿다한다.집 하나 안남긴 박수량을 명종은 그후 99칸 집을 하사하고
靑白堂이라 이름지어 내려보냇는데 그만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지고
그후 장성군에서 그 터에 청백한옥을 지어 지금은 테마한옥마을로 조성
韓屋체험을 하고잇다.
선생께선 유언으로 :묘를 크게 쓰지말고 비석도 세우지마라 :하여
자손들은 그 뜻을 따랏엇다.
그후 1805년 (순조5년)靑白守節의 貞, 愛民好與의 惠 를 따와서 貞惠라고
시호를 내리신다.감사원이 선정한 조선조 500년 청백리에 뽑힌 총 218명중
3大 청백리로 박수량, 황희, 맹사성, 3인이 뽑혔다.
선생의 백비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 33ㅡ1에 잇으며
전남 기념물 제 198호로 지정되어잇다 .참고로 제가 갖고있는
조선조 역대 한성판윤(현,서울시장) 명부에 219대 한성판윤 박 수량 으로 쓰여잇다.
선생의 생가터에 지은 한옥집앞에는 貞惠公 莪谷 朴先生 遺墟 라고
새긴 돌이 조그만하게 서잇다.
박 수량 선생의 청백정신 새로와진다 우리모두 본 받을지어다. 具本勳 笑抄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내부(乞內附)파동이라.대구매일신문 칼럼을 읽고나서 한마디.. (0) | 2014.08.13 |
---|---|
야구경기에서 1이닝에 삼진이 4개라 (0) | 2014.08.03 |
夫無煩惱是妻賢 (0) | 2014.08.01 |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인데. (0) | 2014.08.01 |
남편나무 (0) | 2014.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