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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일어나다.(1597.7.16)

한문역사 2014. 9. 8. 13:34

임진왜란은 1592년 음 4월13일 왜군이 전선 700척으로 부산진 앞바다에 있는 절영도 지금의 영도에 상륙하여 이틑날 14일에는  부산진을 점령하고  그 이튿날 15일에는 동래성을 점령하므로서 일어난 전쟁으로                     이해가 임진년이라 왜군이 일으킨 난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고

정유재란이란 1597년 음 7월 16일 정유년에 다시 쳐들어왔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인데

이날에는 160척의 전선과 조선수군 15000여명이 전멸하고 거제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 3도수군통제사 원균도 전사하면서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하고난 뒤라 이순신 장군께서 다시 3도수군통제사에 임명을 받고 그후 선조임금으로부터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세하여 싸우라는 명령을 받고나서 저 유명한  微臣不死 尙有十二  즉 :미천한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직 열 두척이 남아 잇습니다:.라는 장계를 선조에게 보내고 마지막 결전을 준비한다.

1598년 음 8월 18일  일본의 풍신수길의 죽음 에 이어 왜군은 철군을 개시한다.

이때 조선수군은 판옥선 12척과 경상우수사 가 1척을 끌고와서 모두 13척으로 왜군의133척을 맞아

1598년 음 9월16일에 진도앞바다 울돌목에서 싸움이 일어나 대첩을 거두었는데 이를 명랑대첩이라 부른다.

이때 그 유명한 必死卽生, 必生卽死 .곧 죽고자하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하면 반드시 죽는다 뜻의 결전구호 였다.

이때에 또 셋째아들 면(면)이 전사하고 앞서 이해 4월에는 또한 노모께서 별세하신다.

명랑대첩으로 제해권은 다시 조선수군으로 돌아왓고 1598년 음 11월 18일 노량해전이 벌어져 왜군의 남은

잔당을 모조리 소탕하던중 다음날 음 11월19일 그만 애석하게도 가슴에 총탄을 맞고 54세에 전사하면서 남기신 말씀이: 싸움이 시방 급하다. 내 죽었단 말 절대 하지마라 :

지금 남해 忠烈祠 입구에 우뚝선 비석에 戰方急愼勿言我死 가 새겨져있다.

왜군은 나머지 군사를 모두 도망치듯 달아나면서 조선 수군의 승리로 7년 전쟁은 마침내 끝을 내린다.

그후 이순신은 권율, 원균과 함께 3인 공동으로 선무1등공신에 책록되고

인조 21년(1643)에 忠武 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정조때에는 영의정에 추증되고 李忠武公全書 책이 발간된다.

참고로 여수,남해사이의 노량해전은 1598년 음 11월 18일 戌時(밤 7시ㅡ9시)에 일어나서

                                                  이튿날 음 11월19일 午時(낮 11시ㅡ13시)에 끝이난다.

 

 

 

 

 

 

 

 

 

 

 

 

 

 

 

 

 

 

 

 

 

 

 

 

 

 

 

 

 

 

 

 

 

 

 

 

 

 

 

 

 

 

 

 

 

 

 

 

 

 

 

 

 

 

 

 

 

 

 

 

 

 

 

 

 

 

 

 

 

 

 

 

 

 

 

 

 

 

 

 

 

 

 

 

 

 

 

1598년 음 9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