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의 웅대함과 해와 달의 밝음을 본 떠서 그릴지라도
황제의 위대하신 공덕은 족히 그 만분의일도 방불하게 하지 못 하겠음으로
삼가 그 대략을 기록하고 새겨 말한다.
하늘이 서리와 이슬을 내리심이여,
만물을 죽이기도 하시고 生育도 하시다.
오직 황제만이 이를 본 받아
위엄과 은덕을 아울러 펴도다.
황제가 동방으로 정벌하시니 그 군사가 십만이라
위세가 뇌성벽력처럼 천지를 진동하니
군사가 범처럼 용맹하고 맹수처럼 날쌔어라
西蕃의 窮髮과 北落이 창을잡고 앞에 달리니
그 위세 더욱 찬란하구나
지극히 인자하신 황제께서 은혜로운 말씀을 내리시니
열 줄의 조서가 밝으시어 이미 엄숙하고 온화하기 그지 없어라
처음에는 미혹하여 알지 못해서 스스로 재앙을 불럿구나
황제의 밝은 가르침 마치 자다가 깨어난 듯
우리 임금이 공손히 복종하여
臣民을 이끌고 귀순하도다.
위엄이 두려워서가 아닐세
오직 덕에 의지함이라
황제가 착하게 여기어
은택이 흡족하고 예우가 융숭하도다.
和한 안색과 기쁜 웃음으로 兵戈병과를 거두시엇네
무엇을 예물로 주셨는가
輕馬와 輕구를 주셨도다.
도성의 士女들이 모두 노래하며
황제의 은덕을 칭송하네
우리 임금이 돌아옴은 황제의 은덕이라
황제가 回軍하여 우리 백성을 살리도다.
우리의 蕩殘탕잔함을 불쌍히 여기시어 농사를 권하시니
국토는 옛날과 같이되고 조정이 새로워졌네
마른뼈에 다시 살이붙고 얼어붙은 풀뿌리에 다시 봄이 오도다
한강가에 우뚝 선 비석에 아로새긴
황제의 아름다운 공덕
三韓삼한에 영원토록 빛나리라...
가선대부 예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臣 여 이 징 봉교 전
자헌대부 한성부판윤 臣 오 준 봉 교 서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知 성균관사 臣 이경석 봉교 찬
숭덕4년(1639)12월초8일 立
대청황제공덕비라 395cm의 높이와 140cm의 폭으로
이수와 귀부를 갖춘 이 거대한 비석은 비각속에 잇다
예문관 대제학, 이 경 석이 짓고 ,한성판윤 오 준이 본문을 쓰고,
예조참판 여이징이 大淸皇帝功德碑 전자를 썼다 .
비의 왼쪽엔 몽골문자로 쓰고 오른쪽엔 여진문자로 쓰고 비석 뒤쪽엔 한문으로 쓰여진
우리나라에서 세나라 문자로 쓰여진 유일한 비석 치욕의 비석이 바로 이 비석이다
삼전도비라고도 하는 대청황제공덕비 몹시도 씁쓸하다
여이징(1588ㅡ1656)은 인조(1595ㅡ1649)의 손윗동서로
청주한씨 서평부원군 문익공 한준겸(1557ㅡ1627)의 둘째와 셋째사위이다
또한 전체비문에는 주홍색칠을 하고 황제글짜는 금칠을 하게한 이 비석
참으로 目不忍見之碑 렷다. 구 본훈 添言
치욕의 병자호란 즉 병자년(1636)에 일어난 오랑캐의 난리 라는
뜻의 이 호란 후유증으로 당시 적에게 끌려간 조선의 여성들이
고향땅으로 다시 돌아오매 이들을 일러 還鄕女(환향녀:回鄕女:회향년)가
큰辱이 되었고 그녀들이 돌아와서 낳은 아이들을
호로자식(胡奴子息: 오랑캐 노비의 자식) 등의 욕으로 변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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