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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2015.8.17)

한문역사 2015. 8. 17. 18:49

엄마, 

삼복의  무더위도 이젠 지낫건만 아직까지도 대낮엔 무척이나  덥습니다.

올해  여든 넷 되신  울엄마(1932.음 6.4.),

열일곱에 , 여섯살 위이신 아버지와  결혼하시어

한국전쟁  나던  그해  섣달  열하룻날  누나를  낳으셨습니다.

 아마도 1950년 1월중순쯤 ,첫딸낳고  반년여 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아버지와 일가분들과 같이  대구 남문시장옆  백부님집으로 피난오시어

아버지께선 강제징집되어 군에 가신뒤  그리 멀지않은 남산학교에서 

1주간 기초훈련 받으시는 아버지  면회라도  할 요량으로 학교담을  넘어 

먼 발치에서  애간장을  다 태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엄마나이  겨우  열아홉살  이었습니다.

큰집에서  추석보내고 맏질녀(묘선누님, 1938년생 13살)와  함께 

누나업고 다사면 세천리 집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  전장터에  보내고  그해 가을, 겨울은  

나 어린 몸으로  어떻게  감당하며  보내셧나요?

천만다행으로  이듬해 봄  의병제대를  하여 무사히  귀향을  하신 

 아버지를  만났을때의  그  마음속  또한  어떠했었나요?

 

엄마, 

 스무한살 되던해 ,동짓달  스무날 , 그날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뜨락까지  눈이 쌓였었다고  하신 그날  새벽에 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엄마,  아버지께  한없는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저를 낳으시고  아래로  딸만  넷이나  낳으셨습니다 , 

 특히  넷째딸은 제가  열한살때라 그날 새벽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동짓달 초 이렛날 새벽 또 딸을  낳으셔서 서렀웠는지 울음을 우시는 

소리를 잠결에 저 들엇답니다.그러나 아버지생신이 동짓달 초아흐레,

아들이 스무날, 다섯째가 초 이레,삼부자녀가 한달에 있어 

 참 좋다 .라고  예전엔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그 옛날  시계 하나 없던  그시절 어떻게  새벽밥을  해 주셧나요? 

이  아들  대구까지  가는  등교시간에 늦지않게  밥해 주셨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하답니다. 

힘든  농사일에  지쳐  주무시다가도  새벽닭  울음소리를 들어시고 

시간을  맞추셧나요? 

엄마,  이 아들  대구에서  토요일만  되면 온다고  떡해 먹일려고

떡쌀갖고 방앗간가서 떡쌀갈아 집에와서 솥에다가   펴넣고  찌곤

하셨습니다 그때 동네사람들은  엄마께서  떡쌀 갈려가는걸 보고는  

 오늘이  또  토요일 인줄  아셨다고  했습니다.,

 

엄마, 

어려웠던 그 옛날 쌀이 귀하던 그 시절 여러집이 쌀을 모아서 떡을 하여 

 마당 멍석위에서 저울에  달아 똑같이 나눠서 집에  갖고와

꿀떡인양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때 그시절의 떡을  일러  모둠떡이라고  했었습니다

여러집의 쌀을  모아서 떡을  햇다고  이름을 붙엿답니다

 

엄마, 

 이 아들  대구있을때  추운겨울 추위에  떨세라 두툼한 목화솜 이불을 

해  주셧습니다. 또  동네에는  다니는 버스가 없던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  두분이서  강창고갯길, 신당고갯길을  오르시면서

곡식자루를  이고, 지고, 하여 가셔야  겨우  버스를  타곤  하였습니다.

 

엄마,

 엄마께선 목화솜으로 실絲을  뽑아주시고  풀을 먹여서 연실鳶絲을 

제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밤이면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떨어진 양말밑을  꿔매시고  하셨습니다 

 몇해전에  꿔매주신 양말은  신지않고  잘 넣어두고서

그 양말 볼때마다 엄마생각 할려구요.

아버지와  함께  두분께선  천성이 부지런하셔서 논,밭일을 잘 하신것을

저희 6남매들은  잘 압니다 .

아버지 돌아가신뒤  그 험한일을 손수 다 하실려고 하다가  힘에 너무 부쳐 

남에게  소작으로  주시고  힘에  알맞는  땅만을  손수  하셧습니다

지금도 집안팎  텃밭에는  온갖 채소들을   싱싱하게 수돗물만  주시며 

키우셔서 우리가족들  만이라도  무농약채소를  먹어야지  하셨습니다 

또 몇해전에 새하얀 모시적삼을 입을때  아내가 나이들어 보인다고 하니

곧장 떨감갖고 갈색으로 곱게 물들여 주신  적삼옷  지금도  여름이면 

엄마생각 하면서 저 잘 입고 있답니다

 

엄마, 

 이  아들이  지금까지  딸둘,아들하나 3남매  잘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고   지금 풍요롭게  잘  사는게  모두 엄마,  아버지 덕분이라 

언제나  생각하고  산답니다 

예전에는  어디로 가고파도  먹고살기 바쁘셔서 함께 여행을  못했는데

지금은 아들이  개인택시로 수없이 승객들을 실어나르건만

정작 울엄마는 마음껏 모시고 다니지 못한게 못내 아쉽고 후회스럽습니다 .

건강이 안좋아 멀리 차타고는 못 가시기때문예요.

이게 제일 걸림돌입니다.

막내딸을 음력 5월 14일 낳으시며 산후조리도 못하고 한창 보리타작

할때인지라 더더욱 몸이 상하셨습니다.몸푸신 다다음날 철없는 저는

타작한 보리를 한통가득 담아 엄마앞에 가져다놓곤 했었지요.

지금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답니다.참으로 죄송합니다.

엄마만  좋다하면  어디라도  모시고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픈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엄마, 

아버지  몫까지  더하여  이제 더 이상  아프지도  늙지도  마시고 

이  아들곁에서 오래오래  살아가시길  이 아들 두손모아 빌렵니다.

이 아들내외  자매들과 잘 해 드릴께요

엄마 돌아가신뒤 울지않으렵니다.

 

엄마, 

올 추석 지내고 10여일  있으면  그토록  바라던 증손자가  태어납니다 

 지금까지  외증손자 손녀는  셋을  두었지만 친증손은  못 보앗기에 

더 기쁠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때가서  기쁜소식  또  알릴까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또  존경합니다.  불초자식  쓰고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