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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오늘은 더 이른 신새벽에 앉았습니다.
가로등도 졸린 새벽 2시 59분,
페이스북에 작은 소망을 적었습니다.
"올 한해는 마스크만 벗을 수 있기를…."
중학시절, 멀고 먼 신작로 자전거 통학길 삼십 리.
지각을 면하려 작심(作心)하고 부릅뜬 꼭두새벽 4시.
초·중·고 4천380일을 몽땅 개근하고도
일흔이 되도록 든든한 밑천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는 "새벽 별을 헨 지 55년째"라 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페북을 '사찰'했습니다.
1년 전, 2년 전, 4년 전 '추억 보기'에도
여전히 새벽 3~4시에 여부없이 글이 올라왔습니다.
1일1사(思). 빼먹은 날을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새벽이, 매일 반성하고 성찰하고 계획하게 했습니다.
그때, 분필을 잡았던 아내와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땀흘리지 않은 돈은 거들떠보지도 맙시다"
오해도 많았지만 40년 직장을 홀가분하게 마쳤습니다.
거리낌도 숨길 것도 없는 지난날이었습니다.
첫 분양받은 이 아파트에서만 28년째. 집테크는
'쇠고랑 복부인'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친구들의 손주 자랑질에도 기죽지 않습니다.
'손녀 딸', '푸시업 40개' 는 꺼낼 필요도 없습니다.
식스팩 복근만으로도 신박하게 기선을 제압하니
'55년 새벽 운동'이 이리 고마울 데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 분에 넘게 많았습니다.
혼자 갖기 아까워 7년째 새벽 글로 나눈다 했습니다.
대구문인협회·수필가협회 등 5곳의 까페엔
'새벽 남자' 성병조(70)를 기다리는 팬이 꽤 늘었습니다.
'새벽바라기' 등 수필집 4권에 전국 표어 공모 5관왕.
'행복 수성' 편집위원 등 열 손가락도 부족한 직함….
모두 '3시간의 여유' 맑은 새벽이 준 선물이라 했습니다.
'새벽 4시', 그 작은 마음의 씨앗이 습관으로,
삶으로 자라 이렇게 많은 열매를 달았습니다.
새벽을 즐기는 그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새해 작심의 달. 모든게 마음 먹기 달렸습니다.
나는, 가족은, 일터에서는, 코로나19의 대한민국은
어떤 마음을, 무슨 씨앗을 준비하나요?
작심 55년. 그가 맞는 새벽이 아름다운 1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