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5 4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시: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아니, 그런 것들을 잊어버렸으리라.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신경 쓰지 않았으리라.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 더 많이 놀고,덜 초조해 했으리라.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데있음을 기억했으리라.울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또한 부모가 내게 최선을 다 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

님 (春園 李光洙 선생께서 靑潭 큰 스님께 드린 禪詩)

님에게   아까운   것이   없이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마음거기서 나는 아낌없이 주는 일 보시(布施)를   배웠노라. 님에게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마음거기서 나는 잘못없이 사는 일 지계(持戒)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마음거기서 나는 어려움을 찾는 일인욕(忍辱)을  배웠노라. 자나깨나 쉴 새 없이님을 그리워하고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거기서 나는 부지런히 힘쓰는  일정진(精進)을  배웠노라. 천하고 많은 사람이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거기서 나는 외곬에  오로지 하는 일선정(禪定)을  배웠노라.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기쁨도 슬픔도님과 내가 있음도 잊을때거기서 나는 슬기롭게 사는 일지혜(智慧)를  배웠노라. 아!  이제 ..

고향의 오월은 (金汝貞 님의 시)

파아란 강물이 굽이도는 내 고향 강언덕에오월은 보리밭 종달새 노래로 왔었지. 하이얀 모래밭이 굽이도는내고향 강언덕에 오월은사랑의 편지 물새 발자국으로 왔었지 파아란 보리밭이 일렁이는 내고향 강언덕에 오월은향긋한 아카시아 꽃내음으로 왔었지. 아지랭이 아른아른 꿈길로 온오월은내가슴속 보리밭 위에서 종달새로 노래했었지. 무지개 곱게곱게  꿈길로  온오월은내   추억속 모래밭에서 물새 발자국으로 사랑의 편지를 썼었지. 바람결   솔솔솔   꿈길로   온오월은내  핏줄속  강언덕에서풋풋한 아카시아 꽃내음을  날렸었지. 아!  오월은 언제나,지금도 ,내고향  강언덕에서 아지랭이로  피어올라무지개  다리를  건너 바람결로  오는구나!

빈 방 하나 있었으면

빈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아무도 몰래 나 혼자 들어가서안으로 문 꼭꼭 걸어 잠근 후 고래고래 고함 실컷 지르다가입에 담지 못할 욕(辱)도 하다가그래도 성이 안차면바람벽 사방에 맘껏 낙서를 하다가전후좌우를 거울로 도배한 후내 나신(裸身)조용히 관조(觀照) 할 수 있는 그런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빈 방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벼락이 떨어져도 전혀 들리지 않으며 외풍(外風) 한 점 들어올 수 없는 그런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빈 방 하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언제든지 맘대로 웃거나 울 수 있고 듣고 부르고 싶은 노래 얼마든지 즐기며내 속의 소리 불러내둘 만의 밀담(密談)을  몇날 며칠  나누다가뼈마디 어스러지도록   사랑도 하다가... (날뫼문화 2011. 21쪽.대구 중리동에서 이 상 렬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