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酒(음주)
♥陶淵明(도연명)
이 시는 도연명이 고향으로 돌아와 전원에 정착한 후12년 되는 해에 지은 것으로서 모두 20수가 있다. 시 전문에 병서(幷序)가 있다.
余閑居寡歡(여한거과환)
내가 조용히 살다보니 달리 기쁜 일도 없고
兼比夜已長(겸비야이장)
게다가 요즘 들어 밤도 길어졌는데
偶有名酒(우유명주)
우연히 귀한 술이 생겨
無夕不飮(무석불음)
저녁마다 빼 놓지 않고 마시게 되었다.
顧影獨盡(고영독진)
등불에 비친 내 그림자를 벗 삼아 마시다 보니
忽焉復醉(홀언부취)
혼자서 다 비우고 금방 취하곤 했다.
旣醉之後(기취지후)
취하고 나면
輒題數句自娛(업제수구자오)
왕왕 시 몇구를 지어보고 혼자서 흐뭇해 했다.
紙墨遂多(지목수다)
이렇게 짓다보니 여러 수가 되었지만
辭無銓次(사무전차)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聊命故人書之(료명고인서지)
친구보고 다시 정서해달라고 시켰다.
以爲歡笑爾(이위환소이)
이는 같이 기뻐하며 웃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其一
衰榮無定在(쇄영무정재)
영고성쇄는 정해져 있지 않고
彼此更共之(피차갱공지)
피차에 서로 함께 하는 것이라
邵生瓜田中(소생과전중)
소평(召平)①의 참외밭 가운데 있는 것이
寧似東陵時(녕사동릉시)
어찌 동릉후(東陵侯) 때 같기야 하겠는가?
寒署有代謝(한서유대사)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오고가듯이
人道每如玆(인도매여자)
사람의 도리도 언제나 같다.
達人解其會(달인해기회)
통달한 사람은 그 이치를 깨우쳐
逝將不復疑(서장부부의)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忽與一樽酒(홀여일준주)
문득 한 단지 술과 함께
日夕歡相持(일석환상지)
하루 밤을 즐거이 지낸다.
주석(注釋)
①소평(召平) :진한 교체기 때 진나라의 귀족이었으나 영락하여 장안의 교외에서 참외를 길러 생업으로 삼고 살았다. 그가 키운 참외는 맛이 있어 그의 작호 동릉후(東陵侯)를 따라 등릉과(瓜)라고 불리웠다. 사마천의 사기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여후(呂後)가 소하의 계책을 이용하여 회음후를 잡아 죽였다. 한단에 있던 고조가 회음후 한신(韓信)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파견하여 승상 소하(簫何)를 다시 상국에 임명하고, 그 공로를 치하하여 5천 호의 식읍을 더하여 주고, 이와 함께 명을 전하여 500명의 사졸과 1명의 도위를 정해 소하의 경호를 맡게 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소하에게 축하의 말을 올렸다. 그러나 유독 소평(召平)만은 찾아와 애도를 표했다. 소평이라는 사람은 원래 진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었다. 그러다가 진나라가 망하자 윤락하여 평민으로 떨어짐으로 해서 가난하게 살며 장안성 동쪽의 교외에 참외를 길러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키운 참외는 맛이 좋아 사람들은 그 참외를 ‘동릉과(東陵瓜)’라고 칭했다. 소평이 소하에게 말했다.
“ 화가 이윽고 승상의 몸에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는 햇볕에 그을리며 황야에서 노숙하며 밖에서 힘든 전쟁을 하고 있는데, 조정에 남아 전쟁으로 인한 험난한 고생도 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승상의 봉지를 늘려줄 뿐만 아니라 경호부대까지 붙여주니, 이것은 회음후의 반란으로 인하여 승상을 의심하게 된 결과입니다. 경호대를 설치하여 승상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승상을 믿고 은총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원컨대 식읍과 호위대의 설치를 사양하시고 가산을 모두 들어 황제에게 보내 그 군비로 사용하게 한다면 황제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 소하가 동릉후의 말을 따르자 고조가 과연 크게 기뻐했다.」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 6편에도 보인다.
其二
積善云有報(적선운유보)
선한 일 많이 하면, 좋은 보답 있다지만
夷叔在西山(이숙재서산)
백이숙제는 서산에서 살다 죽었다.
善惡苟不應(선악구불응)
선과 악에 보응이 없다면야
何事空立言(하사입공언)
무엇 때문에 부질없이 그런 말로 고집했겠는가?
九十行帶索(구십행대삭)①
90살이 되어 새끼줄로 허리띠 매고 나다니는데
饑寒況當年(기한황당연)
굶주림과 추위 한창 때는 어떠했겠는가?
不賴固窮節(불뢰고공절)
곤궁 속에서도 꿋꿋이 절개에 힘입지 않는다면
百世當誰傳(백세당수전)
백대를 두고 누구에게 전하겠는가?
①구십행대색(九十行帶索): 춘추 때 영계기(榮啓期)의 일화다. 그는 사슴가죽을 몸에 걸치고 새끼줄 띠를 매고 태산 모퉁이에서 거문고를 타고 즐기고 있었다. 마침 수레를 타고 지나가던 공자가 물었다.
" 선생은 어찌 그리 즐거워하십니까?"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 즐겁고 말고! 나는 하늘이 낳은 만물 중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즐겁고, 둘째로는 사람 중에서도 높은 자리에 설 남자로 태었으니 즐겁고 셋째로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어려서 죽는 수가 있는데 나는 이렇게 나이 구십 살까지 살고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가난은 선비의 상태(常態)이고 죽음은 인생의 종착이다. 상(常)에 처하여 종착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其三
道喪向千載(도상향천재)
도가 없어진 지 천년이나 되는데
人人惜其情(인인석기정)
사람마다 자기의 정을 아깝게 여긴다.
有酒不肯飮(유주불긍음)
술이 있어도 마시려 들지 않고
但顧世間名(단고세간명)
다만 세상의 명성만을 돌아볼 따름이다
所以貴我身(소이귀아신)
내 몸 소중히 하는 까닭은
豈不在一生(기부재일생)
어찌 한 평생에 있지 않아서이겠는가?
一生復能幾(일생부능기)
한 평생이라고 해야 또 얼마나 가는가?
倏如流電驚(숙여유전경)
빠르기가 흐르는 번개의 번쩍임과 같다
鼎鼎百年內(정정백년내)①
서둘러대는 백년 동안에
持此欲何成(지차욕하성)
이것을 고집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가?
①정정(鼎鼎) : 명리를 쫓아 분주히 쫓아다니는 모습
其四
栖栖失群鳥(서서실군조)
황망하구나, 무리를 잃은 새는
日暮猶獨飛(일모유독비)
날 저물어도 홀로 날고 있다
徘徊無定止(배회무정지)
정해진 머물 곳 없어 배회하면서
夜夜聲轉悲(야야성전비)
밤마다 우는 소리 슬퍼져 간다.
厲響思淸遠(여향사청원)
드센 소리는 맑고 먼 세상 생각나게 하니
去來何所依(거래하소의)
오고가면서 의지할 곳 어디인가?
因値孤生松(인치고생송)
이윽고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 만나
歛翮遙來歸(검핵요래귀)
날개죽지 오므리고 멀리까지 돌아왔다.
勁風無榮木(경풍무영목)
세찬 바람에 무성한 나무 없는데
此蔭獨不衰(차음독불쇠)
이 그늘만은 유독 쇠(衰)하지 않는다.
託身已得所(탁신이득소)
몸 의탁하는 데, 이미 있을 곳 얻었으니
千載不相違(천재불상위)
천년이라도 떠나지 않으리라!
其五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오두막집 엮어 마을 변두리에 사니
而無車馬喧(이무차마훤)
수레 소리, 말울음 소리 들리지 않는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능히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땅도 절로 멀어지니.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한 송이를 꺾어들고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해질녁에 더욱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던 새들은 서로 모여 둥지로 돌아온다.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이 속에 인생의 참뜻이 들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말로 표현하고자 하나 할 말을 잊었다.
其六
行止千萬端(행지천만단)
사람마다 삶의 방식 다 다르건만
誰止非與是(수지비여시)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겠는가?
是非苟相形(시비구상형)
옳고 그름 마음대로 정하여 놓고
雷同共譽毁(뇌동공예훼)
부화뇌동 부축이고 헐뜯을 뿐이네
三季多此事(삼계다차사)
하은주 삼대 이후 더욱 심하나
達士似不爾(달사사불이)
통달한 선비만은 그렇지 않았다.
咄咄俗中愚(돌돌속중우)
가련한 세상의 어리석은 중생들아
且當從黃綺(차당종황기)
나는 모두 버리고 산으로 가련다!
其七
秋菊有佳色(추국유가색)
아름답게 핀 가을 국화
裛露掇其英(읍노철기영)
이슬에 젖은 꽃잎을 따서.
汎此忘憂物(범차망우물)
근심 잊게 하는 물건에 띄워
遠我遺世情(원아유세정)
내가 버린 세속의 정을 멀리 밀어낸다.
一觴雖獨進(일상수독진)
한 잔 술 비록 혼자서 마시나
杯盡壺自傾(배진호자경)
잔 비우면 술병 저절로 기운다.
日入群動息(일입군동식)
해가 지면 온갖 움직임 멎고
歸鳥趨林鳴(귀조추림명)
돌아가는 새들 숲을 향해 운다.
嘯傲東軒下(소오동헌하)
동쪽 창 밑에서 휘파람 불며 우쭐대니
聊復得此生(요부득차생)
부족한 중에도 또 삶을 얻는다.
其八
青松在東園(청송재동원)
푸른 소나무 동쪽 정원에 있고
衆草沒其姿(중초몰기자)
온갖 풀들은 모습을 감췄다.
凝霜殄異類(응상잔이류)
된서리가 다른 풀들 죽였는데도
卓然見高枝(탁연견고기)
우뚝 선 나무의 높은 가지 보이고
連林人不覺(연림인불각)
연닿은 수풀을 사람들 못 느끼는데
獨樹衆乃奇(독수중내기)
홀로 선 나무들 기묘하구나!
提壺撫寒柯(제호무한기)
술병 들어 차가운 가지에 걸어놓고
遠望時復爲(원망시부위)
멀리 바라보는 일 되풀이 한다.
吾生夢幻間(오생몽환간)
나는 꿈같은 환상 속에 사는데
何事紲塵羈(하사설진기)
무엇때문에 속세의 굴레에 매어 지내겠는가?
其九
清晨聞叩門(청신문고문)
새벽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倒裳往自開(도상왕자개)
옷 거꾸로 걸치고 나가서 손수 문열며
問子為誰歟(문자위수여)
누구신가요? 물었더니
田父有好懷(전부유호회)
마음씨 좋은 농부다.
壺漿遠見候(호장원견후)
한병 술 가지고 멀리까지 나를 찾아와
疑我與時乖(의아여시괴)
시간이 어긋나지 않았나 걱정한다.
襤縷茅簷下(남루모첨하)
초가집 처마 밑에 누더기 신세이니
未足爲高棲(미족위고서)
훌륭한 집에 산다고는 할 수 없고
一世皆尚同(일세개상동)
온 세상 모두 어울리길 숭상하니
願君汨其泥(원군골기니)
그대도 그 흙탕물을 휘젓도록 하구려!
深感父老言(심감부로언)
영감님 말씀 깊이 감사하나
稟氣寡所諧(품기과소해)
타고난 기질이 남과 화합하지 못하니
紆轡誠可學(우비성가학)
적당히 벼슬사는 일 비록 배울만 하지만
違己詎非迷(위기거비미)
자신을 어기는 것이 어찌 미혹됨이 아니겠습니까?
且共歡此飲(차공환차음)
잠시 저와 함께 이 술이나 즐기십시다!
吾駕不可回(오가불가회)
내 가는 길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其十
在昔曾遠遊(재석증원유)
예전에 먼 길 가 본적이 있었는데
直至東海隅(직지동해우)①
곧바로 동해 끝까지 이르렀었다.
道路迥且長(도로형차장)
길은 아득하고 또 멀었는데
風波阻中塗(풍파조중도)
바람과 물결이 길을 막았었다.
此行誰使然(차행수사연)
누가 이 길을 가게 만들었는가?
似爲飢所驅(사위기소구)
굶주림이 나를 가게 한 것 같다.
傾身營一飽(경신영일포)
힘을 다해 한바탕의 배부름 얻으려 들면
少許便有餘(소허변유여)
조금만 마음을 허락해도 남음이 있다.
恐此非名計(공차비명계)
아마도 그것이 좋은 계획 아닌 듯해서
息駕歸閒居(식가귀한거)
가던 길 멈추고 돌아와 한가히 산다.
① 직지동해우(直至東海隅) : 동진(東晋) 안륭(安隆) 4년 서기 400년, 봄과 여름이 바뀌는 계절에 도연명은 환현(桓玄)의 참군(參軍)이 되어 경도(京都)로 출사했다. 그때 보국장군(輔國將軍) 유뢰지(劉牢之)가 조정의 명을 받들어 절강(浙江)과 회계(會稽) 일대에서 일어난 손은(孫恩)의 농민기의군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할 때 종군했다. 유뢰지의 대군이 절강을 건너 진군해오자 손은은 두려워하여 바다를 건너 경구(京口)로 들어가 숨었다. 경구는 지금의 강소성 진강시(鎭江市)다. 유뢰지의 대군이 산음(山陰)에 주둔하자 손은은 다시 울주(鬱洲)로 달아났다. 울주는 해주(海州)의 운태산(雲台山)으로 즉 구현(朐縣)이다. 지금의 강소성 연운항시(連雲港市)다. 도연명이 유뢰지의 군대에 종군하여 손은의 뒤를 추격하여 연운항까지 행군했음을 추억한 것이다.
其十一
顏生稱爲仁(안생칭위인)
안회는 어질다고 일컬어졌고
榮公言有道(영공언유도)
영계기(榮啓期)는 도 있다고 말하지마는
屢空不獲年(누공불획년)
끼니 자주 걸러 오래 살지 못했고
長饑至於老(장기지어노)
내내 굶주리면서 노년에 이르렀다.
雖留身後名(수류신후명)
비록 죽은 후의 명성을 남기는 하였으나
一生亦枯槁(일생역고고)
살아 생전에는 역시 비쩍 말라 지냈다
死去何所知(사거하소지)
죽고나면 무엇을 알랴?
稱心固爲好(칭심고위호)
원래 좋은 것은 마음 먹은대로 사는 삶이다.
客養千金軀(객양천금구)
어떤 이는 천금 가는 몸 기르다가
臨化消其寶(임화소기보)
죽는 마당에 그 보배 다 없어지고
裸葬何必惡(나장하필오)
벌거숭이로 장사지낸들 싫어할 것 있겠는가?
人當解意表(인당해의표)
사람들은 마땅히 그 뜻을 알아야 한다.
其十二
長公曾一仕(장공증일사)
장장공(張長公)①은 일찍이 한 번 출사했으나
壯節忽失時(장절홀실시)
장년에 갑자기 때를 잃고서는
杜門不復出(두문불부출)
문을 닫고는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고
終身與世辭(종신여세사)
죽을 때까지 세상과 인연을 끊어 버렸다.
仲理歸大澤(중리귀대택)
양중리(楊仲理)가 대택(大澤)으로 돌아오자
高風始在茲(고풍시재자)
고상한 기풍이 그곳에서 생겨났다
一往便當已(일왕변당이)
한번 나갔으면 마땅히 그만두어 버릴 일이지
何為復狐疑(하위부호의)
무엇 때문에 다시 의심하는가?
去去當奚道(거거당해도)
가버려라 가버려 또 무엇을 말하려는가
世俗久相欺(세속구상기)
세속에선 오래도록 서로 속여 왔으니
擺落悠悠談(파락유유담)
쓸데 없은 말 집어치우고
請從余所之(청종여소지)
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소
①장장공(張長公) : 한나라 때 이름난 간관인 장석지(張釋之)의 장남에 자가 장공(長公)이고 이름이 장지(張摯)라고 있었다. 사기(史記),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에 「장석지의 아들 장지(張摯)는 장관직이 대부(大夫)까지 올랐다가 후에 면직되었다. 그는 당세의 권세가들이나 명망가들에 의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신토록 관직에는 나가지 않고 은거하여 생을 보냈다.」라는 기사가 있다.
대체적으로 관리의 자제들은 쉽게 관리로 출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라는 높은 벼슬에 오른 장지가 사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관리들 세계에서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 장공이 한 번 출사하더니 전성기 때 갑자기 시기를 잃었다.”라고 했다. 장절(壯節)은 장년의 시절을 뜻하고 실시(失時)는 세상과 뜻이 맞지 않음을 말한다. 즉 장공의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스스로 깨닫기를 자신은 시세에 영합하는 성격이 되지 못함으로 그 즉시 사직하고 다시는 관직에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其十三
有客常同止(유객상동지)
어떤 사람들 일찍이 함께 살면서
取捨邈異境(취사막이경)
하는 일이 전연 딴판 이었다
一士長獨醉(일사장독취)
한 사람은 늘 홀로 술에 취해 있었고
一夫終年醒(일부종년성)
한 사나이는 일년 내내 술 깨어 있었다
醒醉還相笑(성취환상소)
술 깬 사람과 취한 사람 또 서로 웃었고
發言各不領(발언각불령)
말을 하면 서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規規一何愚(규규일하우)
경계하는 어리석음을 꾸짖는 일과 같고
兀傲差若穎(올오차약영)
홀로 우쭐한 건 약간 잘난 것 같다
寄言酣中客(기언감중객)
얼큰히 취해 있는 객에게 말을 전하거니와
日沒燭當炳(일몰촉당병)
해가 지면 촛불을 밝히시구려!
其十四
故人賞我趣(고인상아취)
옛 사람들 나를 반기어
挈壺相與至(설호상여지)
술병 들고 무리 지어 찾아와
班荊坐松下(반형좌송하)
소나무 아래에 자리 까니
數斟已復醉(수짐이부취)
몇 잔의 술에 이내 취했다.
父老雜亂言(부노잡난언)
마을 사람들 어지러이 떠들고
觴酌失行次(상작실행차)
술 따름의 순서도 잊어버렸다.
不覺知有我(불각지유아)
내가 있음조차 알지 못하는데
安知物爲貴(안지물위귀)
어찌 명리 귀한 줄을 알겠는가?
悠悠迷所留(유유미소유)
한가로이 마시고 즐기노라니
酒中有深味(주중유심미)
술 속에 깊은 뜻이 있구나
其十五
貧居乏人工(빈거핍인공)
가난한 생활이라 사람 품 모자라서
灌木荒余宅(관목황여택)
관목이 내 집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班班有翔鳥(반반유상조)
또렷또렷이 나는 새 있는데도
寂寂無行跡(적적무행적)
잠잠하고 지나가는 자취 없다
宇宙一何悠(우주일하유)
우주는 어찌하여 그토록 끝이 없는가?
人生少至百(인생소지백)
사람 사는 건 백 살이 별로 없는데
歲月相催逼(세월상최핍)
세월이 무섭게 몰아세우니
鬢邊早已白(빈변조이백)
귀밑머리는 일찌감치 세어 버렸다
若不委窮達(약불위궁달)
곤궁과 영달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면
素抱深可惜(소포심가석)
본래 품었던 생각이 참으로 가석하구나
其十六
少年罕人事(소년한인사)
어려서부터 세상과 어울리지 않고
遊好在六經(유호재육경)
육경을 벗하고 즐기는 사이에
行行向不惑(행행향불혹)
세월이 흘러 이미 불혹이지만
淹留遂無成(엄류수무성)
머무르고 기다리다 이룬 것은 하나 없고
竟抱固窮節(경포고궁절)
끝내 굴하지 않는 절개만을 품은 채
飢寒飽所更(기한포소경)
굶주림과 추위만 지겹도록 겪었다.
弊廬交悲風(폐려교비풍)
쓰러져가는 오두막엔 슬픈 바람 드나들고
荒草沒前庭(황초몰전정)
거친 잡초는 앞뜰을 덮었다.
披褐守長夜(피갈수장야)
삼베옷 한 벌 걸치고 지새우는 긴긴 밤
晨鷄不肯鳴(신계불긍명)
새벽닭마저 울려하지 않는데
孟公不在玆(맹공부재자)
선비를 알아주는 맹공도 없으니
終以翳吾情(종이예오정)
내 가슴은 끝내 어둡기만 하여라.
其十七
幽蘭生前庭(유란생전정)
앞뜰에 돋아난 그윽한 난초
含薰待清風(함훈대청풍)
향기 머금고 청풍을 기다리다가
清風脫然至(청풍탈연지)
청풍이 갑자기 불어오니
見別蕭艾中(견별소애중)
맑은 쑥대 틈에서 구별이 된다
行行失故路(행행실고로)
가고 또 가는 틈에 본래의 길 잃었지만
任道或能通(임도혹능통)
정도를 따르면 혹 통할 수 있으리
覺悟當念還(각오당염환)
되돌아갈 일 생각하며 깨달은 것은
鳥盡廢良弓(조진폐양궁)
나는 새 없어지면 활은 버려야 함이다.
其十八
子雲性嗜酒(자운성기주)
양자운(揚子雲)①은 천성으로 술을 즐겼으나
家貧無由得(가빈무유득)
가난해서 술을 살 수 없었다.
時賴好事人(시뢰호사인)
때로는 글 좋아하는 사람 덕분에
載醪袪所惑(재료거소혹)
들고 온 막걸리로 미혹을 풀곤 했다
觴來為之盡(상래위지진)
술잔 돌아오면 쭉 들이켜 버리고
是諮無不塞(시자무불색)
물으면 막히지 않고 대답해 주었지만
有時不肯言(유시불긍언)
때로는 말하려 듣지 않았으니
豈不在伐國(기불재벌국)
어찌 나라를 정벌하는 일 때문에 그러지 않았겠는가?
仁者用其心(인자용기심)
어진 이가 마음을 바로쓰기만 하면
何嘗失顯默(하상실현묵)
어찌 드러내고 숨는 일을 잘못할 수 있겠는가?
①양자운(楊子雲) : 전한의 사상가로 자운은 양웅(楊雄)의 자다. 기원전 53년에 태어나서 기원후 18년에 죽었다. 성도(成都) 출생으로 말을 더듬었으나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부(賦)를 공부해 글 짓는데 능했다. 또 이소(離騷)를 읽을 때마다 감격하여 반이소(反離騷)를 지은 후에 그 글을 민산(岷山)에서 강물에 던져 굴원을 조상(弔喪)했다. 한성제(漢成帝) 때 장안에 들어왔다가 부름을 받아 부를 바치고 랑(朗)이 되었다. 애제(哀帝), 평제(平帝)를 거쳐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조정에서도 대부로 지냈기 때문에 절조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 주역을 본따 태현경(太玄經)을 논어를 본따 법언(法言)을, 이아(爾雅)를 본따 방언(方言)을 지었다. 뒤에 왕망에게 의심을 받고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교서각(校書閣)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으나 심한 상처를 받아 그로 인해 죽었다.
其十九
疇昔苦長饑(주석고장기)
지난 날 오랜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投耒去學仕(투뢰거학사)
쟁기를 내던지고 벼슬살이를 나갔다.
將養不得節(장양부득절)
가족들 부양하느라 내몸 지키기 어려웠고
凍餒固纏己(동뇌고전기)
춥고 배고픔은 여전히 속박했다.
是時向立年(시시향입년)
그때가 내 나이 삼십이였으니
志意多所恥(지의다소치)
마음속에는 부끄러움 많았다.
遂盡介然分(수진개연분)
드디어는 내 고고한 분수 다 드러나
拂衣歸田里(불의귀전리)
옷을 털고 전원으로 돌아와
冉冉星氣流(염염성기류)
그지없이 흐르는 별기운 쫓았더니
亭亭復一紀(정정부일기)
어느덧 또다시 12년 세월이 지났다.
世路廓悠悠(세로곽유유)
세상 길은 넓고 한없이 멀어서
楊朱所以止(양주소이지)
때문에 양주①는 가는 길을 멈췄음이라
雖無揮金事(수무휘금사)
비록 돈 뿌리는 일은 없기는 하지만
濁酒聊可恃(탁주요가시)
탁주만큼은 그래도 믿을만 하다!
①양주(楊朱) ; 전국 시대 초기 위(魏)나라 사람. 자는 자거(子居)라고 한다. 양생(楊生) 또는 양자(楊子), 양자거(楊子居)로도 불린다. 묵자(墨子)보다 나중이고, 맹자(孟子)보다는 앞선다. 생애는 명확하지 않아 겨우 『장자(莊子)』와 『열자(列子)』에 언행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맹자가 “양주와 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다.”면서 이단성(異端性)을 지적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 이 학파는 대단히 융성했던 것 같다.묵자의 겸애(兼愛)와 상현(尙賢)을 반대하고 “자신을 중시하고(重己)”, “목숨을 귀하게 여길 것(貴生)”을 주장했다. 자기 혼자만이 쾌락하면 모든 게 좋다는 위아설(爲我說), 즉 이기적인 쾌락설을 주장하고, 자연주의를 옹호했다. 사물에 형체가 얽매이지 말 것과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가 이롭더라도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저술은 전하지 않고 주장이 『맹자』나 『장자』,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여씨춘추(呂氏春秋)』 등에서 산견된다.
其二十
羲農去我久(희농거아구)
복희와 신농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아득하고
舉世少復真(거세소복진)
온 세상 진실함이 적다.
汲汲魯中叟(급급노중수)
마음 급했던 노나라의 늙은이는
彌縫使其淳(미봉사기순)
미봉으로 그 순박함을 부렸다.
鳳鳥雖不至(봉조수부지)
봉황새는 비록 오지 않았지만
禮樂暫得新(예낙잠득신)
예악은 잠시 새로워져
洙泗輟微響(수사철미향)
수수와 사수지간에 펴졌던 오묘한 말들 멎었다.
漂流逮狂秦(표류체광진)
세월은 흘러 광기 띤 진(秦)나라에 이르더니
詩書復何罪(시서복하죄)
시서(詩書)는 또 무슨 죄가 있다고
一朝成灰塵(일조성회진)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나?
區區諸老翁(구구제노옹)
자질구레한 여러 늙은이들은
爲事誠殷勤(위사성은근)
진실로 은근하게 일 이루었다.
如何絕世下(여하절세하)
어찌하여 동떨어진 지금 세상엔
六籍無一親(육적무일친)
육경을 가까이 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가?
終日馳車走(종일치거주)
종일토록 수레를 달리게 하면서도
不見所問津(부견소문진)
나루터 묻는 이는 보이지가 않는다.
若復不快飲(약부불쾌음)
만약에 통쾌하게 마시지 않는다면
空負頭上巾(공부두상건)
머리 위의 두건은 부질없는 일이겠지!
但恨多謬誤(단한다류오)
다만 술 취해 실수가 많은 것이 한스럽지만
君當恕醉人(군당서취인)
그대는 취한 이 사람 용서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