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사 16수
어제 제가 다산의 강진 유배 시절에 홍임 모녀가 있었다고 말씀드렸지요?
임형택 교수가 인사동 문우서림 김영복 씨에게서 구한 '남당사(南塘詞)'
라는 한시 16수에 홍임 모녀에 대해 나온답니다.
임교수는 이 발굴한 자료를 조사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했는데,
논문에서 임교수는 이 시를 강진의 어느 양반이 홍임 모의 입장에서
썼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정민 교수는 이 설에 반대하며 다산의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즉 시에는 다산과 홍임 모 사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은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제3자인 강진의 양반이 이를 알고 썼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정교수는 그 외에도 몇 가지 논거를 말하지요.
정교수는 "반송장이 다 되어 폐인처럼 살아간다는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듣고 다산은 그 처참한 정경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못 이겨 이 시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다산이 시를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남당사중 몇 수의 시를 인용해보죠.
마찬가지로 정교수님의 번역글만 인용합니다.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냐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 말가.
딸이 자기를 찾으며 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아내가 반대한다지만, 딸만이라도
다시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 아니겠습니다.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사는 홍임 모에게서 홍임이를 데려온다면
홍임 모는 삶을 계속할 희망을 상실하는 것이겠군요.
베 짜기와 바느질은 관심이 하나 없고
일없이 등불 돋워 밤이 하마 깊었구나.
곧장 오경 이르러 닭 울음 그쳐서야
옷 입은 채 벽에 기대 혼자서 신음한다.
옷 입은 채 벽에 기대 혼자서 신음한다? 여자 분들이 이 시를
읽는다면 홍임 모를 이대로 두는 다산에 대해 분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산이 그 정도로 엄처시하에서 살았나?
절대의 문장에다 세상 드문 재주시니
천금 줘도 한 번 만남 오히려 어려우리.
갈가마귀 봉황 배필 원래 짝이 아니거니
천한 몸 과한 복이 재앙 될 줄 알았다오.
홍임 모에게는 다산초당에서의 짧은 행복 뒤에는
기나긴 괴로움과 한만 남았겠군요. 쯧..쯧...
얼룩 화장 떨군 비녀 남이 볼까 겁이 나니
웃다가 찡그림을 다만 홀로 안다네.
낭군 마음 그래도 다정함 있다 하면
반쪽 침상 이따금 꿈에라도 안 올는지.
홍임 모는 그래도 꿈속에서나마 다산을 만날 수 있을까 하네요.
이거 저도 슬슬 다산에게 화가 좀 나려고 하네요.
홍귤촌 서쪽에는 월출산이 솟았는데
산머리의 바위 흡사 오는 사람 기다리듯
이 몸 만 번 죽는대도 남은 한이 있으리니
원컨대 산머리의 한 조각 돌 될래요.
만 번 죽는대도 한이 남는다. 그래서 산머리의 한 조각 돌이 되겠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는데...
물론 이 시들은 다산이 홍임 모의 입장에서 쓴 시이긴 합니다만,
다산도 홍임 모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홍임 모의 입장에서
시를 썼겠지요.
이 시를 쓰면서 다산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쁜 놈이다. 나를 마음껏 욕해라. 나를 죽일 놈이라고
하여도 할 말이 없다' 등의 자책감 속에 이 시들을 썼겠지요.
다산이 처한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가 뿌린 씨인데
한 여자를, 아니지 딸까지 하여 두 여자를 그냥 내치다니...
홍임 모녀의 그 후의 소식은 알 길이 없지만,
제발 다산이 몰래 홍임 모녀를 돌봐주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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