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임 모녀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담다
다산초당 살림 도운 여성 만나
50중반 늘그막에 얻은 딸 위해
‘새 한마리’ 매조도 따로 그려
홍임모녀 마재까지 따라왔다가
쫓겨나 다산초당 돌아간 사연
남당사 16수에 고스란히 실려
- 수정 2019-10-19 20:29
- 등록 2016-10-15 13:10
다산이 남긴 또다른 매조도
다산 정약용의 매조도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매화나무 가지에 새가 두 마리 앉아 있는 것이며,
다른 하나엔 한 마리만 있다.
이에 앞의 것을 매화쌍조도, 뒤의 것을 매화독조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집간 딸을 위해 그린 매화쌍조도는 오래전부터 유명하고,
사위인 윤씨 집안에서 고려대 박물관으로 넘어간 작품의 유통 경로도 분명하다
. 그러나 개인이 갖고 있는 매화독조도는 2009년 6월 서울 공화랑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매화쌍조도와 구도가 비슷하고, 크기는 똑같다.
“묵은 가지 다 썩어 그루터기 되려더니 古枝衰朽欲成?
푸른 가지 뻗더니만 꽃을 활짝 피웠구나 擢出靑梢也放花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 깃의 어린 새 何處飛來彩翎雀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리 應留一隻落天涯”
쓸쓸한 내용의 시는 다산이 강진에서 얻은 늦둥이 딸 홍임을
代入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묵은 가지(늙은 몸)에 꽃(사랑)이 피더니,
예상 못한 어린 새(홍임)가 날아왔다.
내가 떠나면 그 애는 홀로 남아서 떠돌 텐데.’
어린 딸의 앞날을 생각하는 애잔한 마음이 읽힌다.
여러 기록 등을 종합하면 다산초당에 가사를 돕는 여인이 들어온 것은
1812년을 전후해서였다. 강진 남당포 출신이었다.
홍임이를 잘 챙겨달라는 다산의 편지가 강진의 윤씨 집안에 전해져 오다가
분실됐다는 증언도 있다.
다산은 매화쌍조도를 만든 지(1813년 7월14일) 한달여 만에
매화독조도를 그렸다. “가경 계유년 8월19일,
자하산방에서 써서 혜초 밭에 씨뿌리는 늙은이에게 주려 하노라”라고
방제를 적었다. 채마밭을 뜻하는 혜초밭(蕙圃) 늙은이는 다산 자신을 가리킨다.
자신이 간직했다가 홍임이가 성장한 뒤에 주려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산은 이 그림을 1822년 친구인 이인행에게 줬다.
홍임 사망 등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던 것 같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이 매조도가 이인행에게 넘어간 경과,
현재의 소장자인 전경우씨 부인이 이인행 집안의 종녀(宗女)인 점,
여러 대에 걸친 전씨네와 이씨네의 인연이 깊은 점을 확인했다.
이런 점으로 미뤄 매화독조도도 다산의 작품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
홍임 모녀의 사연은 1999년에 세상에 처음 공개된 ‘남당사’(南塘詞)에
더 자세히 기록돼 있다. 다른 사람의 글씨이긴 하지만,
남당사에는 ‘정다산 지음’(丁茶山著)이라고 적혀 있다.
이 시는 다산의 ‘아언각비’ 등 여러 잡동사니를 필사해 놓은 표제도 없는
책자에 실려 있었다.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느냐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 말인가”(넷째 수)
정씨 집(마재의 다산 자택)에서 모녀가 쫓겨나서 강진으로 내려간 일,
고향인 남당으로 가지 않고 다산이 거처했던 초당에 머물며 님을
그리워한 일, 딸이라도 소내(마재)에 데려갔으면 하는 어미의 심정 등이
16수 한시에 절절하게 묘사돼 있다.
서울 인사동 문우서림 김영복 사장이 건네준 남당사를 처음으로 분석한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산으로서는 감추고 싶은 얘기인데 자신이 쓸 리가 없다.
사연을 아는 강진의 어떤 사람이 1820년대쯤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 교수는 정반대의 견해다. 정 교수는 저서 ‘삶을 바꾼 만남’에서
“이런 식으로 상대의 감정에 가탁하는 문학 전통은 예전부터 있었다”며
“다산만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본인이 직접 홍임 모녀에 대한 미안한 심정에서
지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은 좀더 많은 자료가 나와야 확인되겠지만,
다산의 ‘또다른 사랑’이 파생한 예술작품임은 틀림없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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